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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데리러 오거든

 

이항아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까똑~

새벽녘에 노모를 모시고사는 한국의 남동생으로 부터 카톡이 전송되었다. 시간대로 보면 일상적 안부는 아님에 틀림이 없다. 휴대폰 미리 보기에 “어머니가 어제 그만 뒤로 넘어지셔서…”로 시작되는 글귀가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분명 큰일은 아닐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명을 달리하셨다면 벨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화면을 때리듯 터치했다.

 

내년이면 90세가 되는 어머니는 아직도 에너지가 넘치신다. 돌아온 싱글 남동생의 치다꺼리에 매일 장보기와 주방 일을 거를 수 없거니와 그것이 건강의 끈을 잡아야하는 당당한 이유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온전한 본인의 치아를 유지하고 다리는 퇴행성관절염으로 갈아 끼운 인공관절 덕에 처녀다리처럼 쪽 뻗었다. 지팡이도 아직은… 이라며 사절이다. 90을 바라보는 연세에 ‘아직은’ 이라니 마음은 세상 끝날 까지 청년임이 분명하다. 그런 어머니가 뒤로 넘어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고 동생은 직장에서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가상의 부고와 장례식을 구상하며 달음박질 했다고 한다. 동생을 보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건만”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넘어진 장소는 어머니가 자주 가는 단골 옷가게인데,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고 한다. 그곳은 반짝거리는 스팽글이나 비즈가 박힌 노인 패션을 주도하며 외상도 가능한 반 경로당 수준의 양품점이라고 한다. CT 촬영결과 커다란 혹이 난 머리에는 다행히 이상이 없으나 물체가 똑바로 보이지 않는 일시적 시각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근 거리에 사는 자식들이 모여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이구동성으로 ‘그만하길 다행’이라 했다.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없는 나는 영상 통화를 하며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저승사자의 그림자라도 비칠까 본능의 촉각을 세우면서. 생기 없는 눈빛과 검버섯만이 화면을 채웠다. 뜬금없이 모인 형제간의 화기애애한 교류가 오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와 영상속의 얼굴들이 어제 만난 듯 익숙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비로소 숨어있던 그리움이 솟구친다. 남자 형제들만 넷인 나는 평소 그들과 개별적인 연락 없이 지낸다. 그저 어머니와의 통화 때 안부를 전해 듣는 정도이다. 천 리, 만 리도 순간 다다를 수 있는 통신수단을 온종일 손에 쥐고도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양,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유물처럼 쓰다듬으며 살고 있다. 나는 뼛속까지 외로운 해외 동포이다. 그래 이제 자주 연락 하리라 결심하지만 나의 손가락이 차일피일 미룰 것이 뻔하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타인에 가까운 기억속의 형제로 남을 것이 작심보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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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자 낙상의 실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옷 가게에서 어떤 이와의 언쟁 끝에 몸싸움을 벌였고 밀려서 뒤로 넘어진 거라고 했다. 상대는 70대 할머니라고 한다. 아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은 진상을 감추고 아들의 취조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분노한 동생은 젊은 할머니를 고발하겠다고 했다. 순간 하늘에서 “아서라 네 엄마는 내가 잘안다”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과거의 기억 하나를 소급 했다. 예전에 아버지는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혼잣말 비슷한 하소연을 했다. “무슨 여편네가 목청이 기차 화통처럼 크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햄릿 같은 아버지와 돈키호테 같은 어머니의 만남은 불협화음이 잦았다. 지나친 우울과 지나친 활발은 일상에 있어서 결코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시대적 여성상인 현모양처의 본분을 지키고자, 타고난 여장부의 기질을 삭이며 각고의 노력을 하던 어머니는 끊임없이 지적하는 아버지에게 말대꾸 한번 하지 않고 복종했다. 그러다 그 울분이 차곡차곡 쌓이면 밖에서 얻어 걸리는 누군가와 대판 싸우곤 했던 모양이다. 그것은 화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자생적 처방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머니가 어미닭의 뒤를 종종거리며 따르는 병아리 같던 우리에게는 한없이 온화하고 헌신적이었다. 병약한 아버지를 닦달 하지 않고 발과 부리로 그악스럽게 모이를 물어다 우리들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나는 동생에게 “어머니한테 싸움의 자초지종을 취조하듯 묻지 말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지금 형제들 중 아버지의 기질을 가장 많이 닮은 남동생과 살고 있다. 아버지는 임종직전 고작 약관인 셋째 아들인 그를 지목하며 ‘어머니를 잘 모시라’고 유언했다. 아버지의 예지가 그가 혼자 될 것을 미리 본 것일까? 까다로운 동생은 어머니의 천수를 위하여 웰빙을 관리하며 잔소리와 주의가 많다. 식생활 조절이나 날씨에 따른 외출 등을 총괄한다. 기름진 음식 제한과 폭염 혹한 눈 비 오는 날은 외출 금지를 촉구하는 효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와 통화 할 때면 아버지를 똑 닮은 동생의 잔소리 때문에 지겹다고 했다. 살만큼 살았으니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도 역시 살갑지는 않다. “그만한 아들 없다”고 일축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울화가 차곡차곡 쌓였던 것일까. 엄마가 한방 터뜨렸다. 그것도 70대 젊은 노인과. 나는 아직도 싸울 성질과 근력이 있는 어머니가 자식인양 대견하고 안심이 된다. 새벽녘에 날아든 카톡 속보.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어미닭이 되어 드려야할 반포보은의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 이었나보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사이로,

“9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일이 많아서 못 간다고 전해라~” 노래 가사를 흥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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