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호주 스타일
어느 날 한인복지회를 시작했던 이 선생이 찾아와서 한인복지회가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복지회를 맡아달라고 호소를 했다. 당시 나로서는 매주 5일 동안 택시운전을 하는 있는 턱에 막중한 책임을 맡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인 사회 내 유일한 한인 복지단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여성의 공간'을 통해서 함께 교류해온 스텔라 김 회장과 유순영 사무장을 설득해서 함께 복지회의 살림을 맡았다.
복지회는 시드니 각 지역에 흩어진 사무실에서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실무자들이 있고 운영위원은 무급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자원봉사와는 개념이 다른 명예직인데, 호주에서 명예직은 막강한 권한과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자원봉사는 단순한 일을 하지만 명예직 자원봉사는 오히려 책임이 큰 일을 맡게 되어 있다. 명예직에는 엄격한 도덕성, 즉 떡을 만지면서도 손에 떡고물을 묻히지 않아야 하는 청렴성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헌신적 자세가 필요하다.
호주 사람들은 무보수 명예직으로도 자기가 맡은 책임과 의무를 잘 수행할 줄 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국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모를 일이 많아서 잘 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사회운동과 자원해서 하는 단체 생활을 해왔지만 돈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이라고는 항상 돈이 없어서 문제였을 뿐이었는데, 복지회는 있는 돈이 문제였다. 즉, 예산을 제공한 정부 규정에 맞게 정확하게 쓰고, 또 그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을 잘 못 쓰면 당장 다음 해의 예산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돈이 제대로 사용돼서 모자라도 안 되고 남아도 안 되는 것이다. 남는 일이야 없지만, 돈을 규모 없이 쓴 결과, 예산이 부족해져서 빚을 얻어 충당해야 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 선생이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까다로운 호주의 법을 지키면서도 얼마나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규정은 지켜야하지만, 적당히 현실에 맞추어 요령 있게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복지회가 많이 확장 되어서 30 만불 예산에 5 곳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풀타임 직원 2 명, 파트타임 직원이 5명이나 되었다. 지금은 정부정책이 바뀌어 소규모로 축소가 되었으나 당시는 한 마디로 한인복지회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호주의 복지 프로그램은 철저히 공개입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말은 한국 사람만이 한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한국 사람을 위하여 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인들이나 호주인들이 예산을 따내서 한국인을 고용해서 한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사례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우리에게 차려진 밥상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하는 셈이다.
복지회를 운영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탈북자들의 문제이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뱃심 좋게 실제로는 다른 나라인 북한까지도 영토로, 북한 주민까지도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한 주민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살 수 있지만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서 제 3국으로 간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자신들의 생명을 얽어매는 올가미로 작용을 한다.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을 거치지 않고 호주로 온 탈북자라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서 복지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배를 타고 호주로 밀항을 해서 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 그들은 한국 국적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여권을 찢어버리고 여권이 없는 상태로 들어온다. 그러나 호주 정부 입장은 ‘탈북자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보호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난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인복지회는 영주권자들을 위한 봉사기관이어서 불법체류자나 탈북자들은 서비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왔을 때 호주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도와 줄 곳이 없기 때문에 상담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북한을 탈출해서 돌고 돌아 호주로 오기까지 그들은 체포, 구타, 살해, 굶주림, 겁탈의 위협 속에서 때로는 한 끼의 식사, 하루 밤 잠자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한계를 넘나들어야 했었다. 그런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용이나 체면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처지이다.
따라서 그들의 케이스를 맡으면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그러나 호주 정부에서 주는 예산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들은 제한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교민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실무자들에게 탈북난민 문제는 취급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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