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호주판 자연인
시드니에서 350km 떨어진 거리에 60만평의 넓은 땅에서 살고 있는 지인을 방문했다. 그러나 땅은 넓지만 전기도 수도도 집도 없는 땅이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항상 궁금했는데 이번에 큰마음을 먹고 왕복 8시간 거리를 다녀왔다.
지인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자연인’의 주인공들처럼 잘 적응해서 임시거처를 마련해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지인을 오랫동안 알아왔기 때문에 그가 왜, 어떻게 현재의 상태로 살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나름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날 나와 함께 가서 처음으로 지인을 만난 사람들은 그런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지인은 내 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한국보다 몇 배는 더 정밀하게 짜인 시스템 밖에서 가능한대로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허가 없이 정식 집이 아닌 온실처럼 집을 지어서 사는 일 같은 일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나름의 내공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누구나 땅을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땅이 좁은 나라에서는 한 치의 땅 때문에도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호주처럼 땅이 넓은 나라에서는 쓸모없는 땅이거나 개발을 위해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땅이라면 별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느 교단 인사를 만났을 때 종교나 자선 단체에 땅을 기증하려면 유지비용 까지 더해서 기증을 할 때만 받지 단순히 땅만 기증한다면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땅이 넓으면 불편한 문제도 많다. 예를 들면 목장을 하려고 해도 넓은 땅에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인도 소를 몇 마리를 키웠는데, 지 혼자 근처에 있는 비행장까지 가버린 소를 다시 데려 오느라고 힘들었다고 했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관리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인은 싼 값에 넓은 땅을 사기는 했지만 개발을 할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여건만 갖추고 생존의 수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훈련이 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왕복 8시간 거리를 자동차로 달려, 시드니에서 350km 떨어진 지역에서 60만평의 넓은 땅에서 살고 있는 지인을 방문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땅에서 그야말로 ‘자연인’으로 잘 살고 있는 지인이 직접 지은 집. (사진: 작가 제공)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시간과 물질은 생산성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현재 지인의 땅에서는 생산성이 전혀 없다. 생산이 없을 때는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인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인의 땅 가운데 나의 관심을 강하게 끌었던 것은 15,000평 규모의 호수였다. 이 호수는 땅의 경계를 따라 흐르고 있는 강에서 들어온 물이 고인 것이다. 그런데 잡목이 우거져 있어서 호수까지 접근이 불가능해서, 지인은 나무를 자르면서 호수로 가는 길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즉 강이 바다가 가깝기 때문에 호수의 물도 바닷물로 차 있는 그런 호수였는데, 태고 이래로 인간이 접근 하지 않았기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사는 소도시 옆에 있는 호수이긴 하지만 개인의 땅 안에 있는데다가가 돈이 될 만한 그 어떤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인이 길을 내고 있는 원인도 호수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 호수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인간의 에고(ego)를 생각나게 했다. 세계와 접촉하며 살면서 정작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에고의 본질인 것이다. 호수가 강물이 흘러들어 오고 나가면서 존재하듯이, 에고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만 세계와 교류하면서 형성 된다. 우리는 호수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듯이 에고에 대해서도 모른다. 지인이 체인 톱으로 나무를 한 구루씩 잘라가면서 호수를 향해서 길을 내듯이, 나의 에고 속에 있는 자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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