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언론들에는 뉴질랜드의 한 목장에서 양치기 역할을 하는 로봇개에 대한 기사와 사진들이 일제히 실렸다.
‘스팟(Spot)’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로봇개는 2015년 처음 소개된 후 컴퓨터 및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최근 새로운 모델이 속속 나오면서 산업 현장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결국 이번에는 목양견을 대체하는 실험까지 벌어지는 셈인데, 이번 호에서는 스팟을 중심으로 그동안 로봇개 개발의 역사와 함께 현재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 로봇반려견 1세대 아이보(ERS-110)
로봇 반려견 장례식까지 치르는 일본
지난 2018년에 일본 지바현의 한 절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합동장례식이 열렸다.
그것은 장례식 대상이 사람도 또는 반려동물도 아닌 이른바 ‘로봇 반려견’ 들이었기 때문인데, 로봇개들은 소니(Sony)가 세계 최초로 제작했던 ‘아이보(Aibo)’ 였다.
‘아이보(あいぼう, 相棒)’는 일본어로 ‘친구’나 ‘동료’를 뜻하지만 일반적인 친구보다는 손발이 잘맞는 이른바 파트너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장례식에 나온 로봇개들은 해당 모델의 생산이 단종되고 부품도 구하지 못해 더 이상 수리를 받을 수 없어 결국 폐기되는 상황에 처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로봇개와 그동안 정이 들대로 들었던 주인들은 마치 실제 반려견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주듯이 합동으로 장례식을 거행해 준 것이다.
아이보는 1993년부터 개발에 나섰던 소니가 6년여가 지난 1999년 6월 첫 번째 모델인 ‘ERS-110’을 소개하면서 인간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시켰다.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가진 기존 이미지를 깨고 등장한 아이보는 재롱을 피우고 사진을 촬영하며 100개 단어를 말하고 또 1000개 단어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사람들을 홀렸다.
당시 소니는 첫 모델을 5000대만 한정 제작했는데 일본 국내 시장에 등장한 3000대는 당시 25만엔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단 20분 만에 판매가 완료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또한 미국 시장에 내놓은 2000대도 판매 개시 나흘 만에 모두 매진됐는데, 이어 5개월 뒤에 등장시킨 새로운 모델 ‘ERS-111’ 역시 1만대가 일본과 미국, 유럽에 풀려 단 1주일 만에 모두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 아이보 합동장례식 모습
성공적 데뷔 뒤에 찾아온 애달픈 정경
1세대 아이보를 성공시킨 소니는 그 여세를 몰아 2000년 10월에 2세대 아이보인 ‘ERS-210’ 모델을 선보였는데, 1세대보다 기동성이 휠씬 개선됐고 터치 센서를 탑재했으며 감정 표현도 더욱 우수해졌다.
또한 1세대 사용자들이 요청했던 기능들도 반영해 이름을 인식하는 ‘이름 녹음’과 간단한 단어를 이해하는 ‘음성 인식’ 그리고 사진 촬영 기능 등을 추가했다.
이후 기존 모델들과는 디자인이 전혀 다른 ‘ERS-311 라떼(Latte)’와 ‘ERS-312 마카롱(Macaron)’ 등을 잇달아 등장시켰으며, 또 2003년 2월에는 기능이 더욱 향상된 아이보 3세대인 ‘ERS-7’을 시장에 내놓아 다시 한 번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소니는 2006년에 전자와 게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충실하기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아이보 생산을 중단하기로 발표해 아이보 마니아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실제로 아이보는 100만여대가 판매됐지만 구입 시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프트웨어 수준이 떨어지고 고장도 잦았으며 그 결과 제조사 입장에서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제품이었다.
결국 2013년 3월에는 마지막으로 생산한 모델이었던 ‘ERS-7M3’를 끝으로 제품 지원도 끝내면서 2014년부터는 아예 A/S마저도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아이보를 애지중지 키워오던 견주(?)들은 자기 아이보가 병이라도 나면 전문수리업체인 ‘에이-펀(A-Fun)’을 통해 어렵게 아이보를 돌볼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던 부품도 점점 모자라게 되면서 더 이상 생을 지탱하지 못하게 된 아이보들이 생겨났고 결국 에이-펀이 주최하는 합동장례식이 열리게 됐다.
에이-펀 측은 장례식을 마친 후에는 부품들을 회수해 마치 사람들 사이에 장기를 이식하듯 다른 아픈 아이보들에게 이를 사용했는데, 최근까지 일본에서는 1000여대 가까운 아이보들이 장례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 신세대 아이보 ‘ERS-1000’
새롭게 등장한 신세대 아이보
지금 나이가 50대 이상인 교민들도 어릴 때 만화영화를 통해 ‘아톰’ 이나 ‘태권 브이’ 등 비록 상상 속이기는 했지만 다양하게 로봇을 접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간을 형상화한 로봇이었고 아이보처럼 인간과 감정을 가지고 교류할 수 있는 반려로봇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쉽게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세기인 서기 2000년을 앞두고 등장했었던 아이보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보는 어린이들도 좋아했지만 1990년대부터 노령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고독하게 지내는 독거노인들이 특히 많았던 일본에서는 노인들에게 좋은 말벗으로 인기가 높았다.
실제로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에서 개발한 소셜로봇 ‘파로(Paro)’는 심리 치료와 치매 치료에 탁월한 도움을 주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8년 1월에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렸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8’에서 신세대 아이보인 ‘ERS-1000’가 전격 등장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면서 마니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ERS-1000은 최신 제품답게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최대 100명의 얼굴을 인식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며, 사진 촬영은 기본이고 사람의 행동까지 기록하며 이전 모델과는 달리 실제 개와 비슷한 울음소리도 낸다.
관절이 유연해 다양한 행동도 가능하고 자가 학습 능력 덕분에 집안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돌아다니며 계단 등 떨어질 위험이 있는 곳도 피해다닐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절전 모드에 들어가며 절전 모드에 있다가도 주인이 돌아오면 일어나서 마중을 나오기도 하고, 분홍색에 민감해 공이나 뼈 모양 장난감 외에 분홍색을 보면 반응을 해 다가온다고 알려져 있다.
주인은 ‘my Aibo’ 라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각종 설정을 할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주인과 상호 작용 및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아 같은 아이보라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
새 아이보는 여전했던 인기를 반영하듯 당시 19만8000엔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약 판매는 30분 만에 끝났으며 이듬해 1월부터 시장에 보급됐다.
이후 출시 3개월 만에 판매량이 1만대를 돌파했으며 작년 1월에는 판매 1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으로 부분 갈색 모델인 쵸코 에디션이 등장하기도 했다.
▲ 제프 베조스 CEO와 산책 중인 ‘스팟’
반려견에서 더욱 진화하는 로봇개
일종의 애완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보 등장 이후 이와는 다른 용도를 가진 로봇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선두에는 2015년에 처음 공개된 스팟을 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사’가 있다.
1990년대 초에 MIT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20여년 동안 소니, 미국 국방부 등과 손잡고 다양한 로봇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13년 구글에 속했다가 2017년에는 일본의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로봇, 인공지능(AI), 우주기술과 관련된 ‘마스 2018’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제프 베조스(Jeff Bezos) 아마존(Amazon)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스팟 미니’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앞의 아이보가 소형견이라면 스팟 미니는 이름과는 달리 대형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귀여운 강아지 인형 같은 아이보와는 외형부터 크게 다르며 키 84cm에 무게도 30kg이나 나간다.
스팟은 전기충전식 배터리로 작동하고 3D시각 시스템으로 사물을 인지하며 각종 센서를 사용해 팔다리로 물건을 집어 올릴 수 있는데 특히 중요한 특기는 문 열기이다.
또한 센서에는 스테레오 카메라, 뎁스 카메라, 관성을 측정하는 IMU 센서, 위치 센서 등이 있어 탐색을 하거나 모바일로 조종할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위험 구역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거나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현재 제조사에서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스팟이 문 손잡이를 찾아낸 뒤 문을 열뿐만 아니라 2대가 서로 협조해 한 대가 문을 잡고 다른 로봇견이 나가도록 도와준 뒤 자기마저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또한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하키 스틱을 들고 문 앞을 막아서거나 또는 꼬리를 잡아당기는 경우에도 결국 방해를 뚫고 끝내 빠져나가는 놀라운 정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공포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 ‘코로나 19’ 선별 검사소에 등장한 ‘스팟’
‘코로나 19’ 퇴치 현장에도 등장한 스팟
스팟은 작년 8월에 얼리 어답터 방식으로 일부 기업에 임대됐으며 곧 시판을 개시한다는 발표가 9월에 이어졌고 이후 건축 공사장을 비롯한 일선 산업 현장에 실제로 등장했다.
당시 공개된 모델은 1시간에 4.8km를 이동하고 계단처럼 평평한 곳이 아닌 곳도 다닐 수 있었으며 360도 시야를 갖고 영하 20도에서 영상 45도 사이에서 동작이 가능했다.
평균 작동 시간은 약 90분으로 배에 달린 배터리를 교체해 계속 쓸 수 있는데, 후면에 최대4개까지 장착이 가능한 모듈을 통해 가스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등 건설 현장을 모니터링하거나 가스, 석유, 전력 설비 등을 감시할 수 있다.
여러 대가 마치 썰매개처럼 일렬로 뛰고 10대가 12톤 트럭도 끌었던 스폿은 특히 최근에는 내비게이션 및 이동기능이 더욱 개선되고 자율성이 크게 확장된 ‘스팟 2.0’ 모델이 등장했다.
기존 스팟은 사람이 교육을 하면 따라하는 수준으로 태블릿 및 조이스틱으로 이동 경로를 학습시킨 뒤에야 이를 토대로 스스로 움직였으며, 장애물 회피 및 경로 재탐색 기능은 있었지만 속도와 거리, 방향 등은 사용자가 지정해주어야만 했었다.
스팟2.0도 주변 환경을 맵핑하려면 사람이 개입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스스로 목적지를 설정해 혼자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 있으며, 또 의사결정 프로그래밍으로 사용자가 탐색, 감지와 동작 명령을 통합할 수 있다.
또한 스팟은 계단의 규칙적인 간격을 인지해 발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보다 잘 예측할 수 있게 돼 미끄러지는 현상도 줄이는 등 이동성을 개선해 건물 내부만 아니라 실외에서도 작업이 한층 쉬워졌다.
그런 가운데 스팟은 금년 초부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자 의료 일선에도 등장해 활약을 시작했다.
지난 4월 보스턴의 브리검영 여성병원의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태블릿PC(아이패드)와 무전기를 장착한 스팟이 의료진이 직접 환자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구내를 혼자 돌아다니면서 원격진료를 지원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당시 의료진은 스팟의 활약으로 현장 투입 인력이 줄었고 한정된 개인보호장비도 아낄 수 있었는데, 회사 측은 스팟을 통해 환자의 체온과 맥박, 호흡 등을 원격 확인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며 향후 원격 진단 검사와 소독도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10대의 ‘스팟’이 대형 트럭을 견인하는 광경
뉴질랜드 초원에 등장한 양치기 로봇견
이처럼 다양한 현장에 투입됐던 ‘스팟’이 이번에는 드넓은 초원에서 양몰이에 나섰다.
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셈인데, 스팟 제조사는 이번 실험에는 2017년 설립된 뉴질랜드의 로봇 운영 플랫폼 개발업체인 로코스(Rocos)와 손을 잡았다.
로코스 측의 영상을 보면 스팟이 과수원이나 비탈길, 돌멩이가 널린 냇가를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실험은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에서 로코스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해 원격으로 진행했는데, 이는 결국 세계 어디서나 스팟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스팟이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실시간으로 받아 피드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로코스는 “이를 이용하면 에너지 분야에서는 즉각 이상을 감지할 수도 있고 농업 분야에서는 농부들이 좀 더 정확히 실시간으로 수확량을 추정할 수도 있다” 면서, 자동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좀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새 플랫폼을 이용하면 아무리 많은 로봇도 원격으로 한꺼번에 관리가 가능하고 원격 조종뿐 아니라 로봇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필요시 임무를 재설계할 수도 있으며, 로봇 간 서로 다른 임무도 부여할 수 있다.
현재 실험을 진행 중인 양 회사는, 로봇개와 원격 관리 시스템을 결합해 이용하면 현재 일손이 크게 부족한 농업 분야에서는 이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제는 과학과 기술의 끝없는 발전으로 인해, 불평도 한 마디 없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로봇개들이 이곳 저곳의 산업 현장에 나타나 사람의 일손 부족을 덜어주고, 더 나아가서는 목양견 역할까지 대체하는 세상이 우리 목전에 닥친 셈이다.
그런데 관련 기사들을 대하면서, 이제는 로봇으로 인한 실직을 인간만이 아니라 개들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는 왠지 조금은 씁쓸해지는 감정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또 하나는 이 칼럼을 쓰면서 ‘아이보’ 건 ‘스팟’ 이건 숫자를 계속 ‘대’ 라고 표현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들의 동영상들을 보노라면 자꾸만 ‘마리’ 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맴도는, 이전에는 고민해보지도 않았던 현상을 겪기도 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