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RNZ에 자극적인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English language-only sign at cafe taken down’으로, 번역하자면 ‘카페의 영어만 사용하라는 사인 내려지다’가 되겠다. 문제가 된 이 사인의 카페는 오클랜드에서 Mt.Eden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Circus Circus다. 이 카페에서는 이전에 주방 종업원들에게 영어 사용을 권장하는 사인을 아래 사진과 같이 카페 주방 쪽에 게시했다. 번역하자면 ‘여러분의 직장 동료를 존중해서 항상 영어를 사용하기 바랍니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 문제가 된 사인
내가 이 기사를 본 첫 느낌은 이 사인이 왜 문제가 되지? 였다. 아무튼 이 사인은 매니저에 의하면 ‘그들의 동료를 이해하지 못하는 몇 직원들의 컴플레인’을 받고 치워졌다고 하는데 RNZ에서 기사화가 된 것은 기사 속 컴플레인을 제기한 사람이 RNZ에 알려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추정한다.
이 기사를 본 적이 있는 분은 이 해프닝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카페 매니저는 이 사인 게시 동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직원들은 휴식 시간이나 일과 후 자신의 모국어로 대화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동료와 함께 일할 때는 영어사용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직장 동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 네팔 출신 매니저 Nixon Sherchan. Photo: RNZ / Liu Chen
내가 보기엔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다. 더구나 이 제안을 한 매니저는 파케하가 아니다. 본인도 네팔 출신 소수민족 이민자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연상할 수 있는 파케하의 거만함, 갑질 혹은 인종차별과는 거리를 두고 생각할 부분이다.
이 해프닝을 기사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실명 제보자는 이 사인에 쇼크를 받았으며 다중언어를 권장하는 다른 식당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겠다고 말하면서 “가게 매니저는 다른 나라에서 와 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그들의 언어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코멘트를 읽는 순간, 이 즉흥적 오지랍 참견주의자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코멘트는 균형 잡인 숙고 없이 마치 인권과 온정주의를 동원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논리가 정당화되고 상대방을 어렵지 않게 악마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감마저 느끼게 한다. 과연 이 사람의 주장처럼 모든 사람이 모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명제가 이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모국어 사용은 인권?
12년 전인 2008년, Human Rights Commission(HRC: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직장 내 영어 사용 의무화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자. Human Right Act 1983 에 근거한 인권위원회의 해석은 비교적 간단하다. 고용주는 피고용인의 ‘ethnic origin’을 근거로 어떤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고 인권법에서 규정하기 때문에 언어는 ethnicity의 한 부분이므로 당연히 피고용인은 언어 때문에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 원칙이 직장 내 어느 상황에서도 피고용인이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기령 직장 내 Health and Safety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단일 언어(반드시 영어가 아니더라도)의 사용 필요성이 인정되며 더 나아가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직장 내 Harmony 혹은 직장 문화(culture)에 필요하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모든 피고용인에게 단일 언어 사용을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요구(혹은 권장?)할 수 있다. 물론 업무 중간의 휴식 시간에는 다른 나라 출신의 동료가 같은 휴식 공간에 있어도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피고용인들이 그 언어를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위 Circus Circus의 매니저가 잘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기본권으로 인식한다.
영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종업원이 업무 수행 도중 자신의 모국어를 이용해서 같은 나라 출신의 동료 종업원에게 의사소통하는 것마저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종업원이 영어 소통능력은 채용 시 고용주가 검증한 것이므로 이에 관한 책임과 부담도 당연히 고용주가 지므로 피고용인은 이럴 경우 고용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고용주가 영어능력이 부족한 이 피고용인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를 짊어질 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계약을 인권과 잘못 매치시켜서는 안 된다. 인권법에서 피고용인이 ethnic origin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고 이를 회사 직원 채용 공고에 신청자 자격 요건에 영어가 능숙해야 한다는 조항이 인권법에 위배된다고 시비를 걸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 경우 언어는 ethnicity의 한 부분이 아니라 노동자 skill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가 이곳 태생 신청자보다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부족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출중한 다른 스킬이 자신에게 있다 치더라도 채용 시 신청자 영어 조건을 인권 위반 혹은 위헌 사항이라고 문제 삼기는 힘들다.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 이런 법리적 해석을 떠나 굳이 근무 시간 내 같은 국가 출신 직장 동료에게 모국어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위 카페 주방 환경의 경우 내 상상에는 가령 ‘이 주문 요리 좀 먼저 해줄 수 있어?’ 혹은 ‘가스 불이 너무 약해. 어떻게 하면 좋지?’ 같은 간단 문답 정도가 아닐까? 설마 그 환경에서 지난밤 뭐하며 놀았느냐 같은 잡담에 모국어가 필요하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인에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기사에서 당당히 자신의 풀네임을 밝힌 사람은 Louisa Tipene Opetaia라는 사람이다. 이런 제보를 할 때는 흔히 익명으로 하거나 First name만 공표하는 것이 관행인데 이 사람은 예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홍보하듯이 밝혔기에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이벤트 중개, 마오리 문화 소개와 더불어 홍보가 그녀의 여러 직업 중 하나다. 마오리인 그녀는 구체적으로 그 사인에 대한 반대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에 유감스럽게도 추정해 볼 수밖에 없는데 마오리 어가 존중받아야 하듯이 다른 소수민족 언어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원칙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은 그녀의 인식 수준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에도 주장했지만, ethnic relations는 감성적 사해 만민주의나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인권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며 대드는 사람에게 업무의 생산성과 직장 동료 간 조화는 상대적으로 약한 목소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게 된다. 하지만 그 침묵은 불만을 억누른 침묵이지 불만 해소에 따른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인을 내린 네팔 출신의 매니저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고 있을까? I don’t think so. Never!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의 피고용인에 대한 노동 착취는 항상 경계 시 되어야 하며 이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하지만 직장 내, 특히 위 카페처럼 저임금 노동환경, 에서 고용주가 영어를 쓰라고 권장하는 것은 노동착취와는 관계가 멀다. 피고용인에게 직장 내에서 영어를 사용하라는 권유가 고용주에게 부당한 초과수익을 안겨다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이는 사회주의적 가치와도 배치된다. 그렇지 않아도 뉴질랜드 서비스업은 직업의 불안정성, 웍비자 소지자의 높은 비율,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국적 등으로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조 결성 등에 어려움을 겪는 산업이다. 따라서 이들의 결속(solidarity)이 다른 업종보다 그리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데 이처럼 자신들의 ethnicity에 집착하여 같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다른 노동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 모국어 사용을 고집한다면 다른 국가 출신의 직장 동료가 공동 투쟁의 필요가 생겼을 때 과연 연대하고 싶을까?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의 의미와 전망(下)’에서 언급했듯이 20세기 초 하와이의 노동자들이 세계 각국 출신으로 구성되었음에도 성공적인 노조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 노동자가 자기의 ethnicity와 인종의 다름보다 계급의 동질성이 더 본질적이라는 인식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보다 지금의 서비스업 노동자의 연대 환경은 훨씬 열악한데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나라 출신끼리 모국어를 사용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본가와 고용주의 노동 착취를 위해 알아서 분열하겠다는 행동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김 무인
한국에서 태어나고 사회초년생활을 한 후 뉴질랜드로 이민, 소수민족 이민자로서 다인종 다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 관심이 많다. (http://blog.daum.net/jasminkiwi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