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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나는 4년간 군대생활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기를 공군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내겐 대학생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에 사회라는 곳을 깊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소위 때에는 출납공무원이라는 걸 했다. 당시는 봉급을 현금으로 나누어주던 시기였다. 봉급날이 되면 헌병 차의 칸보이를 받으며 은행으로 갔다. 총을 든 헌병들이 현금수송을 보호했다. 큰 자루에 든 현금을 병들이 날랐고, 나는 마지막으로 오천만 원 정도 신권이 든 007가방을 들고 은행을 나섰다. 부대에 오면 그 돈을 일일이 부대별로 나누어 각 부대의 행정계장에게 나누어주었다. 거기서 신권은 권력이었다. 각 부대의 장에게 지급하는 봉급은 신권으로 드리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위나 대위였던 각 부대의 행정계장들은 소위였던 내게 반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 당시 국민카드라는 오늘날 신용카드의 효시가 처음 생기던 시절이었다. 나는 하사관 이상의 부대원들의 국민카드를 발급해주며 은행으로부터 극진한 접대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은행원들과 친해졌고, 은행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중위로 진급한 후에는 구매과장이 되었다. 부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일을 했다. 수의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입찰이라는 과정을 통했다. 먼저 입찰공고를 하려면 시내에 있는 충남기업사를 들러 보안점검필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충남기업사는 당시 보안부대의 명칭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곳 방위들은 군복을 입고 근무를 할 때에도 장교를 보아도 경례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방위병부터 장교들까지 아예 계급장을 달지 않았다. 그들은 계급을 초월한 부대 아닌 부대였다.

내가 근무하는 부대 안에도 보안부대가 있었다. 내겐 늘 보안대 상사가 붙어 있었다. 나를 감시하는 것이다. 내가 퇴근 후 어딜 가면 그 사진을 찍어오는 수가 있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자신들이 다 알고 있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 사무실에서 그들에게 돈을 주었던 것으로 안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대전이었다. 대전에 큰 술집이 개업을 하면 내게 초청장이 온다. 술집의 소개와 함께 한 번은 무조건 공짜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 내 전임자는 대전의 한 아파트를 샀다는 후문이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전임자가 요즘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는 목사들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년을 근무한 후 서울 대방동 공군본부로 오게 되었다. 구매담당 장교를 하게 되었다. 여긴 이전 자리보다 더 힘이 있었다. 나는 아무런 빽도 없는 내가 어떻게 그 자리로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한 대령으로부터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각 부대의 구매담당 위관 장교들 가운데 돈을 가장 안 밝히는 사람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돈을 안 밝히는 나를 그 자리에 발령을 냈다는 것이다. 정말 어깨가 으쓱해지는 소식이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남대문 시장의 작은 점포에서부터 대기업의 회장(실제는 화장을 대리하는 임원)까지 거래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정말 사회의 구석구석을 알게 되었다. 부대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품은 없다. 많은 것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나, 별도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공군본부 주변에 교통신호 표지판들을 설치하는 일이 있었다. 교통표지판은 경찰들의 몫이다. 만났던 업자들은 모두 경찰들을 상대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일을 통해 나는 경찰들의 구매업무를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노골적이고 철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근무하는 공군만이 아니라 경찰도 다른 공무원들(이 경우도 별도의 기회가 있었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고 말을 하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나를 꼰대 취급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이 사라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더 깊이 감추어지거나 위험부담이 커진 만큼 액수가 커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검사들의 술접대 기사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한 지인이 구속되었을 때 담당 변호사의 조언으로 판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돈은 변호사가 전달했고 그것을 정말 전달했는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 굳이 경찰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들을 똥파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권이나 권력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 술과 여자는 양념이다.

내가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꼰대인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의 모습을 LH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들은 땅투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업무기밀과 권력을 팔아 상식이하의 행동들을 당연한 것으로 하고 있다. 술대접은 기본이고 매달 돈을 받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그들에게 제공한 향응은 향응 이상의 이익 창출이 가능하기에 제공되었다. 내 생각이 틀렸는가.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적폐라고 말한다. 어떤 정치가는 이번 적폐는 문재인 정권의 적폐라는 말도 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사람의 머리가 의심스럽다. 이런 적폐는 문재인 정권의 적폐도 아니고 이명박근혜 적폐도 아니다. 그것은 문명 자체의 적폐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순기능을 상기할 수 있다. 유럽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기독교 문화가 그래도 그 정도의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이것이 그냥 내 생각과 판단일까. 그렇지 않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기독교일지언정 사회에 아무 영향력조차 없지는 않았다. 더불어 사는 사회, 합리적인 사회,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적폐가 줄어든 사회, 등등에는 기독교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적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이클 샌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책 제목이 정확한지 가물가물하다)이 기억난다. 적폐는 사라지지 않고 돈의 보호 속에 숨는다. 합법적으로 적폐가 사회 안에 자리하게 된다. 법으로는 적폐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모든 적폐보다 더 심각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구제불능이다. 그것을 믿지 못하겠거든 미국을 공부해보시라. 그들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다. 오래 전 솔제니친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자기를 숭배하는 사회이며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미국에서는 적폐가 합법의 가면을 쓰고 사회 속에 당당히 군림한다.(아!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사모한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미국의 기독교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적폐청산은 사회 스스로 이뤄낼 수 없는 사회의 일부이며 속성 그 자체다.

그 사명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군인이나 법관의 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그들의 직무가 복음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초기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우리 시대에 다시 되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고지식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적폐를 존중하면서 적폐를 줄여가고 적폐의 부당함을 드러내 고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 자신이 적폐의 일부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소금과 빛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의 적폐를 드러내고 고발하고 줄여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십자가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세상의 저항이다. 적폐청산은 가장 근본적인 그리스도인 고유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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