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유라시아는 우리 선조들의 활동무대였다.”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한인일보 발행인)
며칠전, 모 기업의 업무협약식에 다녀왔다. 한-카 양국 기업대표들이 협약서를 교환하는 것으로 이 행사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특강이 이어졌다. 김석동 장관은 이번 업무협약식의 한 축인 한국측 회사의 고문의 자격으로 이번 출장에 동행하셨던 것이었다. 김 전 장관은 우리나라의 금융정책 분야의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한편으론 ‘유라시아 기마군단에 대한 연구’로 이 분야의 연구자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꽤 유명한 분이다.
이날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라는 제목의 특강을 하였다. ‘세계를 향한 끝나지 않은 도전’이라는 부제를 단 이 특강은 이 땅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주 필요한 특강이었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는 역경과 고난의 나라였으나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면서 “그 성장의 원천을 바로 한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DNA’, 즉 강인하고 성실하며 세계를 무대로 승부를 걸 줄 아는 대담한 승부사 기질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하였다. 최초의 초원의 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유목 제목, 흉노, 돌궐, 그리고 징기스칸 제국 그리고 그의 후손이 세운 티무르제국까지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개괄하면서 이 주장을 펼쳐나갔다.
끝으로 그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2020년에 캐나다를 제치고 10위에 진입한 후 2030년엔 프랑스를 제치면서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필자는 행사 후 김 전장관과 담소를 나누며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와 우리 민족사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카자흐스탄 학자들의 의견을 빌려서 설명하였고 또 기회가 되면 이런 내용들을 정리해서 틈틈히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보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아래 내용은 그날 필자가 내뱉은 말의 실천이기도 한 반면 평소 관심을 가졌던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한 연재 계획의 일환이다.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연재를 할려고 하지만 혹시 한 주씩 건너뛰는 일이 생기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해주시길 미리 구한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를 기존의 자료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겠다.
카자흐스탄은 북으로 러시아와, 남으로 아랄해를 통해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그리고 천산산맥을 경계로 끼르끼즈스탄과, 동으로 중국과,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접경하고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은 모두 14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카작흐인들은 전통적인 유목민족으로서 중국서부의 신장주와 카자흐공화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 공화국은 카스피해와 천산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거대한 초원지대가 남쪽으로는 반 사막성의 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8세기 무렵 현 카자흐스탄 영토에는 터키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13세기 징기스칸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던 몽고인의 후예이다.
13세기 징기스칸이 통치한 킵챠크 한(汗)국에 예속된 이들은 15세기에 이르러 카자흐 민족을 형성했다. 역사 연구에 따르면 카자흐 한(汗)국은 1465년 자니벡과 케레이 술탄이 세웠다. 그래서 작년에 카자흐스탄에서는 건국 550주년 행사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던 것이다.
카자흐 민족이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형성되게 된 것은 18세기에 호전적인 중가르 족과 싸움을 벌이면서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카자흐 민족 가운데 일부 세력은 1732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완전 통합은 1860연대 중엽에 완성되었다. 카자흐스탄에 소비에트 권력이 수립된 때는 1918년 3월이다. 1920년 8월에는 국가 중앙 기관 결정에 따라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 창설에 관한 포고령이 서명 되었고, 1936년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 또는 '독립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사랑하며 관대한 성품을 가진 민족이다.
카작스탄 지역은 카자흐족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어 오다 18세게 중반이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카작스탄 북부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게 되었다.
15-16세기에 카작인들이 러시아 중앙부에서 남방 변경지대로 이주해 형성한 '농민군사공동체'를 카작인이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지배하에 있던 카작스탄는 러시아 혁명후 1920년 러시아 공화국내 키르기즈 자치 공화국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1925년 거대한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을 분리할 목적으로 행해진 중앙 아시아의 국경정리 결과 카작스탄 공화국으로 개명되었다. 1930년대에 카작스탄는 소련연방의 가장 커다란 수용소로 되었다. 2차 대전중 스탈린에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많은 소수민족들이 이 지역으로 강제이주 되었고, 그 결과 카작스탄는 여러민족이 뒤섞인 인구특성을 가지고 있다. 카작스탄은 1936년 12월 5일 카작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 소련의 일원이 되었고, 구 소련 붕괴 과정에서 1991년 12월 10일 국명을 카작스탄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2월 16일 독립을 선포하였으며 12월 12일 CIS창설 협정에 조인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