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어느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최근 두 분의 독자들께서 본보에 전화를 걸어와 “한인회장과 사이가 안 좋으십니까?” 하고 물어 오셨습니다.
한 분은 평소에 저희 신문에 관심을 갖고 여러모로 코멘트도 해 주시고 조언도 해 주시는 분인데요, 이 분은 “지난 번 신문에 보니 한인회 삼일절 행사를 하면서 <코리아위클리>에 광고를 안 하고 타 신문에만 한 것을 보았다”면서 “한인회장과 사이가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삼일절 기념행사 후에 있은 ‘회칙개정’에 관한 기사를 읽고 “식사를 종종 하시는 거 같은데 한인회장님과 틀어지셨습니까?” 하고 물어 오셨습니다.
이 분은 이번에 한인회의 회칙개정을 위한 총회가 ‘회장 임기'의 출발점을 조정한다며 엉뚱하게 ‘회계연도 조항’을 변경한 '헛다리 짚기' 총회라고 기자가 표현한 것에 대해서 "백번 옳은 지적이다"면서도 "언론사에 책임이 있다"고 다그치셨습니다. 말씀인즉, 그간 언론사가 한인회 행사 등에 너무 '추켜주기' 기사를 남발했다는 것이고, 그때문에 “스포일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분 독자들의 질문과 질책에 좀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뜨끔한 느낌을 갖기도 했습니다만 반사적으로 “하하하, 사이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라고 즉답을 드렸습니다.
오늘 '취중진담'에서는 이 두분의 독자들께 왜 제가 그런 답을 드렸는지에 대해 좀더 소상히 적을까 합니다. 저의 그 답은 평상시 저희가 신문일을 하면서 늘 가지려는 태도였고, 언젠가는 이를 좀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웃는 낯에 침뱉으랴"?
종종 지역 단체장님들 가운데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문도 인간이 만드는 만큼 종종 약을 치면 그래도 그만한 댓가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기자와 식사도 하고, '거마비'를 찔러 주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글쎄요, 미국식 표현으로 '낫미'입니다. 저를 포함한 저희 신문의 기자들은 기사와 관련하여 거마비를 거절하여 왔고, 지역 단체장들과도 개인적으로 식사를 하는 일 조차도 매우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오래 전에 껄끄러운 기사를 내보낸 덕택에 “식사 좀 하자”는 단체장의 간청에 어쩔수 없이 종종 응하기는 했지만, 그 조차도 ‘이번에는 당신이, 다음 번에는 내가’ 이런 식으로 식사비를 부담했었습니다.
아직 검증이 안된 한인회장의 경우에는 처음 3개월 정도는 아예 개인적인 식사 자리 조차도 갖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 애써왔습니다. 시간이 한 참 흐른 후에는 자연스레 식사를 나누기도 하지만, 이 역시 '그때뿐'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불과 한달 전에 바로 제 앞에서 웃음으로 눈을 맞추며 맥주잔을 주고 받던 한인회장이 체포된 것을 상세히 보도했더니 어느 연세드신 독자께서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그렇게 매몰차게 긁어대냐"고 따지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 때문에 한인회장님들이 ‘뭐 밥도 사주고 광고도 내주고 그랬는데 별무효과더라’고 했다는 얘길 종종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받아먹은 것에 대해서는 저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입니다."
자, 제가 이렇게 '먹는 문제'를 길게 쓰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단체장님들이 ‘설마 웃는 낯에 침뱉으랴’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잘 대해주었고, 행사들도 제법 잘 해왔는데, 어느날 안면 싹 바꾸더라’는 비난을 받는 것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기자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한마디로 기자가 취재원과 관련하여 가져야 하는 대 원칙은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않는 '불가원 불가근'의 원칙임을 이번 기회에 재삼 명토박아 두렵니다. 지역에서 누군가 코드가 맞아 좀 친해지고 싶어도 '혹 저 친구가 사고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참 비인간적이고 비참(?)하기까지 한 직업이 기자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요, 사실상 이런 원칙을 말대로 신념대로 지키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뭐 거의 마주칠 일이 없어서 정들 틈이 없는 유명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급 인사들을 기사로 긁어대는 일이야 부담이 덜 가는 일이겠지만, 지역에서 늘 만나야 하는 단체장들에게 이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제발 '회칙준수'와 '재정보고'만 제대로 해주십시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저희 나름대로 어떤 ‘선’을 만들어서 지역 단체장님들을 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새로 취임하는 한인회장님들이나 평통 회장님들, 심지어는 새로 오시는 교회 목사님들에게 조차 제가 사정하다시피 해서 부탁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뭐 저 좋자고 하는 일이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마지노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회칙 제대로 지키고, 재정보고만 말썽없이 해 주시면, 벌이는 행사에 대해선 왠만하면 박수를 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남자 단체장님들인 경우, ‘스캔들 조심’도 거론하곤 합니다.)
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단체장님들이 듣기에 따라서는 좀 자존심 상하는 말이기도 하겠으나, 그간의 예로 보아서 이 두어 가지만 문제가 없으면 한인사회가 떠들석할 일이 별로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갈길이 바쁘기도 하고 한인회와 관련해서는 기대수준을 좀 낮추어 잡는 것이 피차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인회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한인회장 못해먹겠다'며 나자빠지거나, 새 한인회장을 뽑을 때 쯤이면 아예 입후보자가 없는 경우를 종종 봐 왔기 때문입니다.
회칙과 재정문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특히 선거와 관련한) 회칙 준수는 그 단체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공금은 공개가 대 원칙(public money, public notice) ’이라는 입장때문입니다. 한인사회의 어떤 단체든 늘 이 두가지가 문제가 되어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는 늘 ‘명문화된 규정’과 ‘상식’을 먼저 들추는 것이 기본입니다. 단체가 하는 행사는 잘 할 수도 있고, 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칙 규정을 어긴다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두고두고 후대의 거울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기자는 옛날로 말하면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입니다.
자, 이제 '취중진담'을 마치려 합니다. 대부분의 한인회가 회장을 모집할 때 즐겨쓰는 구절이 있습니다. 회장 입후보자의 자격 :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특히 여기서 '학식'이란 '학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존중하고 규정을 잘 이해하고 지키는 능력'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정상행로를 걷지 않고 '꼼수'를 쓰는 지도자는 그런 면에서 ‘무식한' 지도자라 할 것입니다.
제발 만인이 합의한 회칙 규정을 잘 지켜주시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질 공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공개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특히 요즘 일부 한인 단체의 공금 사용과 관련하여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마전'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리되면 누가 흔쾌히 기부를 하려고 들겠습니까.
저희 기자들이 현재의 한인회와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칙 규정을 준수하고 수입 지출을 제대로 공개해 주신다면 사이가 안 좋을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