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뉴스코리아) 최윤주 편집국장 =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 시인이 쓴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중 일부다.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민낯이 왜 하필이면 수백명 어린 아이들의 목숨줄을 끊고 흉악한 얼굴을 드러내는지, 간장이 녹아 내리는듯한 아픔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숨쉬는 것 조차 고통스럽다.
공포의 순간에도 구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천진난만했다.
“마지막 말은 남기고 죽어야 될 것 같은데”라며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농담조로 남겨놓은 한마디. “우리 ○○○씨, 아들이 고합니다. 이번 일로 죽을 수 있을 거 같으니, 엄마 아빠 사랑해요.” “××야, 너만은 제발 수학여행 가지 마라. 오빠처럼 되기 싫으면.”
설마 하며 남겼을 아이들의 목소리는 결국 갈갈이 찢겨져 처참해진 부모 품에 유언이 되어 돌아왔다. 엄습해 오는 죽음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채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구조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살아있는 자들의 숨통을 쥐어짜며 온 나라를 통곡케 하고 있다.
비참한 수준의 국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능한 정부는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상식적인 대처 조차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처음부터 ‘책임’의 문제였다.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윗선의 보장이나 결재없이 구조당국이 자발적으로 움직일만한 시스템이 대한민국에는 없다.
구조에 필요한 상상 이상의 경비와 제반여건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아이들은 암흑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모든 자금과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서 구조활동을 벌여라.” 국가 통치자의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도 현장 책임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과, 자본의 이윤을 지켜주는 권력과, 권력의 종이 된 언론과, 국민의 존엄성 따위는 개의치 않는 정권이 저지른 대참사, 대학살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문제 앞에서, 차디찬 암흑의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아이들을 눈 앞에 둔 학부모의 피끓는 절규와 전 국민의 분노는 한없이 미약하기만 했다. 그래서 슬프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책임져야 한다. 청해진 해운 유병원 일가, 해양경찰과 민간잠수업체 언딘, 더 나아가 학살에 가까운 대참사를 일으킨 국가권력까지 이번 세월호 참사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27일(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지금 대통령께서는 헌법을 위반하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자신을 고3 여학생이라고 소개한 소녀는 헌법 제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비롯한 다섯개 조항을 나열하며 “지금 대통령께서는 명백히 헌법들을 위반하셨습니다”라고 적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목숨을 걸고’ 이 글을 남긴다”는 말로 시작된 소녀의 글은 “책임을 지신다고 말씀까지 하셨으면 그 책임은 꼭 지셔야 할 것입니다”로 끝이 난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주장을 말하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수몰당해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나라, 내 자식이 죽어가는 마당에 국가의 위로를 받기는 커녕 국가기관에 맞서 싸워야 하는 나라.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일찍이 맹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 보다 무섭다고 했다. 호랑이는 한 목숨을 해칠 뿐이나 가혹한 정치는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또 다시 숨이 막혀 온다. 숨쉬기 조차 미안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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