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총리 야체뉴크가 포로셴코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12일 결국 사퇴했습니다. 야체뉴크는 지난 2014년 친러파인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현 포로셴코 대통령과 연정을 구성한 인민전선의 당대표입니다. 야체뉴크와 포로센코 두 과두세력은 지난 2년동안 누가 우크라이나를 더 빨리 망칠 수 있는지 경쟁을 벌였습니다. 야체뉴크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주도하였고 부패한 초콜릿 재벌 포로센코는 우크라이나를 부패에 물들이고 나라 경제를 절단 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토적 실효지배를 상실하였습니다. 도네츠크 국제공항의 참혹한 시가전은 마치 스탈린그라드의 전투를 연상시킵니다. 우크라이나의 정규 군대는 붕괴되었고 극우 민병대인 프라빗 섹트로(Пра́вий се́ктор)가 전투에 나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Пра́вий се́ктор는 공공연히 반유대주의, 히틀러를 추종하며 러시아와의 결사항전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패배보다 경제는 더욱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2015년 우크라이나 경제는 무려 마이너스 12% 성장을 기록하였습니다. 국가는 이미 부도상태입니다. IMF는 내부 규정을 어겨가며 170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하였으나 우크라이나에 만연된 부패와 기업의 불명확한 지배구조로 자금 집행에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 포로셴코조차 조세회피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을 이용한 정황이 들어나면서 공공자금이 부패한 정치인의 배만 불러주고 있습니다. 동부지역의 내전은 수천 명의 사망자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대규모 기근과 아사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식량창고인 우크라이나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자 프란체스코 교황이 직접 지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하면서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더 이상 러시아와의 갈등없이 부유한 EU와의 통합이 우크라이나 경제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렇지만 연립정부 내에서 야체뉴크와 포르센코는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여기에다 2014년 러시아 축출의 행동대장이었던 유로마이단의 극우세력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하며 다시 키예프 독립광장을 점거하고 갈등을 고조시켰습니다. 한마디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우크라이나 판 리바이어던이 출현한 것이지요.
우크라이나 정치의 특징은 분열입니다. 12세기 이후 한번도 제대로 국가를 형성해본적도, 강력한 리더십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2007넌 유센코 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의 특징은 기존 제도를 통한 정치적 갈등 조정이 실패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혁명 이후에도 유센코와 프로센코는 정치적 분열 때문에 혁명정권의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치가 이렇게 분열된 이유는 실질적으로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의 경험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키예프 루스 이후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독립을 갖지 못한 우크라이나는 킵차크 칸국, 오스만 투르크, 제정 러시아, 소련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민족의 원류인 코작은 14세기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와 러시아 제국에서 도망쳐 나온 슬라브족 농노들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스텝에 자생하고 있는 투르크계와 섞이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드네프르 강과 볼가 강 하류로 내려가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그곳에서 반유목 생활을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였습니다. 어떠한 억압과 지배도 거부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 제국에서 완전히 민족적으로 동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특유의 반항정신으로 국가나 집단보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도망 노예의 근성을 잊어먹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는 권위에 복종하고 법과 제도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개인적 이해나 독립이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여기에다 동과 서의 이해가 충돌하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는 정치적 분열의 좋은 토양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강행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서방의 동진을 차단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본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한결같이 똑똑하고 자존감이 높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사람같이 거만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고려해주는 섬세함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민족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충동적 성향을 종종 목격하였습니다. 한번 술을 마시면 다음날 아침에도 반드시 출근하는 한국 사람과 달리 며칠째 계속 술을 마시고 연락을 끊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너무 자주 바뀌어서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정치적 분열로 국민적 열망을 모으지 못하고 오히려 외세에 이용당하는 우크라이나의 경험을 우리는 피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윤성학 본지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