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6주년 2] 다시 부르고 싶지 않은 6.25 노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 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겨레
‘노래 아닌 노래’
한국민이면 '가갸 거겨'를 배우는 유아시절부터 무덤에 갈 때까지 콧노래로 부르다가 죽을 애창곡이 있다. 우리는 이 애창곡을 부르며 가을 운동회를 준비했고, 운동회 프로그램에 빼먹지 않고 들어 있던 기마전에서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적군'을 향해 내달리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 선생은 매 구절 앞글자 하나 하나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 부르라며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이 노래는 애당초 악을 쓰고 부르기에 딱 알맞은 노랫말과 곡조를 갖추었으므로 제식훈련에 다리 아프고 배고프면 교련
선생의 악다구니 없이도 우리는 지레 악을 쓰고 부르던 터였다.
이 노래 가사 하나하나를 곰씹어 볼라치면 "세상에 이렇게도 끔찍한 노래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구절 구절마다, 아니 단어 단어 마다 증오와 적의로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노래의 몇 소절을 대략만 분석해 보기로 하자.
노래말 앞부분에서 특정한 '어떤 날을 잊지 말자'로 시작, "맨주먹 붉은 피로 발을 굴러 땅을 치며"로 이어가다가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에서는 하늘끝까지 사무치도록 증오를 부추긴다. 그것도 모자라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라는 외마디를 내지르며 눈 뒤집어 까무라쳐야 할 정도의 복수심과 원한을 뼈 마디와 심저에 다져 넣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노래 아닌 노래'를 너무도 오래 부르고 살아왔다. 흉악한 노랫말 만큼이나 머리 속에는 붉은 늑대와 간교한 이리를 그리면서 때로는 이를 악다물고 때로는 콧노래로 부르고 살아 왔다. 나는 16년 전 6월 12일 그날부터 이 노래가 꿈속에서라도 다시 불려지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야 했다. 이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것은 마치 양복입고 갓 바쳐 쓰는 것 보다도 더 어색한 시대가 도래했으므로.
▲ 25일 오후 5시 올랜도 재향군인회관(VFW)에서 열린 한국전쟁 66주년 기념식에서 한 참석자가 식순에 따라 팔을 위 아래로 흔들며'6.25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소설같은 '3일의 만남'
나는 2000년 6월12일 밤 9시 5분(미국시간) 미국땅 한 구석에서 위성 TV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절뚝거리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던 장면을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몇 년 전 보았던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부활한 군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공격에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남한과 손잡고 일본을 대항하기 위해 북한의 '주석'이 비밀회담차 남쪽 공항에 내리는 장면이다. 그 부분을 옮겨본다.
"지하 헬기 착륙장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통령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안에서 나온 사람은 대통령을 덥썩 껴안았다.
오오, 와주셨구려. 정말 반갑소! (대통령)
얼마나 고생이 심하십니까! (주석)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서로의 몸을 굳게 끌어안았다"
내가 이 만화 같은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는 우리 민족의 한과 염원을 카타르시스적 기법으로 풀어내 기분좋게 만든다는 것 외에, 읽는 사람을 깊히 아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상상력 속에서라도 어거지로 풀어내고 싶은 슬프고 슬픈 이야기, 남과 북의 만남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또하나 이 소설을 신나게 읽었던 이유는 소설이 출간되기 전후로 해서 문익환, 황석영, 임수경, 문규현 등의 북한행 '파격' 이 소설에서 나온 파격과 시의적으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보통 사람들 보다 두어 발 앞선 그들의 일탈행위는 민족적 선각 행위였다는 것이 만천하에 들어나고 말았고, 결국 소설같은 그네들의 파격은 김대중-김정일이라는 두 인물에 의해 시대를 뒤흔드는 역사적 결말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 악수하고, 인민군 사열 받고, 차에 동승하여 속삭이고, 얼굴 붉히고 씩씩거리며 합의서 서명하고, 전당대회 승리한 당수처럼 상대방 손 높이 치켜들고 사진찍고 포옹하고...
나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사흘동안 인터넷에서 정상회담 기사를 빠뜨리지 않고 뒤적거리며 눈물을 컥컥 쏟았다. 그리고 천년이 하루같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가슴을 타고 뜨겁게 밀려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슬픈 노래여, 이제는 그만 안녕!
남북 정상회담 이후 매년 맞게 되는 6.25는 남이나 북이나 모두를 어색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류의 증오의 의식구조만을 강요받은 남북의 주민들에게 봇물처럼 터져버린 남북 화해의 기운은 자연스레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털어놓게 하는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화해와 상생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에 우리의 삶의 전반을 66년 간 옭아매어 왔던 6.25는 무엇인가.
해방은 됐다는데 남에는 '양키'와 친일파가 활개치고, 북에는 '로스케'와 공산당이 득세하고, 합쳐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남쪽 민족주의자는 '북진통일'을, 북쪽 항일무장투쟁가는 '남조선 해방'을 노래했었다. 3.8선을 가운데 두고 치고 받기식 닭싸움을 수 백 차례 벌이던 어느날, '에라 선수 빼앗겨 후회하기전에 내가 먼저 한 판 크게 벌여야지!' 이렇게 경솔한 판단으로 작심하고 내려친 것이 6.25 아닌가. (6.25 전쟁에 대해 '북침설'을 내놓은 일단의 학자들도 있으나, 나는 해제된 소련의 기밀문서 등을 토대로 남침을 주장하는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따른다.)
우리 모두에게 6.25는 민족통일의 간절한 염원이 무력적인 수단으로 풀어 제껴진 ‘슬픈 전쟁’이다. 36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되찾은 제땅에서 딴살림 차린다는 게 너무 원통하고 서러워서 외세를 빌어서라도 서둘러 한살림 차리려다 저지른 전쟁. 이게 6.25 아니고 무엇인가.
하여, ‘6.25 노래’는 흉악무도한 노래만은 아니다. 슬프디 슬픈 우리민족의 통일 염원이 증오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나타난 노래가 바로 6.25 노래 아닌가. '한살림' 주장만으로도 죄악이 되어 실어증과 자폐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가 맘놓고 부를 수 있던 노래는 바로 6.25 노래같은 엉뚱한 노래였던 것이다.
양김이 악수하고 건배하고 손 치켜들고 포옹하던 장면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는 시대가 온지 오래고, 분단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평화통일을 소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제 6.25노래 따위는 그야말로 반민족적 역사반동적 노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너무 슬픈 노래는 이제 그만 부르도록 하자! 그리고 이런 노래는 어떻겠는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정상)들이 악수하고 포옹하던 날을!"
(관련기사 : 애국가 부르는데 엉덩이 긁적인 넌 빨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