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할수있고 중국은 안되는 거부권?
뉴스로=이재봉 칼럼니스트
9월 19일은 2005년 ‘9.19성명’이 나온 기념일입니다.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 2003년 8월부터 시작됐던 6자회담이 2년 만에 결실을 본 날이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침략하지 않으며,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등의 합의가 이루어졌던 겁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속된 말로 성명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미국의 네오콘들이 이를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위조지폐와 인권문제를 빌미로 거세게 몰아붙였거든요. 2005년 9월 금융제재로 시작해 2006년 3월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까지. 이에 맞서 북한은 2006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10월엔 핵실험을 했습니다.
9.19성명이 발표된 지 11년이 흐른 오늘 미국의 네오콘들과 덩달아 날뛰는 남한의 호전광(好戰狂)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미국의 한 퇴역 장성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남한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대서특필하고 일부 극우신문은 적극 호응하고 나서는 모습 말입니다. 이러한 전쟁 미치광이들의 바람대로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먼저 폭격한다면 김정은이 고이 항복하거나 북한이 가만히 무너질까요? 그에 맞서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전쟁을 부추긴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겠다며 목숨 내걸고 싸울까요? 지하벙커로 숨거나 해외로 도망치지 않고요? 언제 무슨 이유로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죽게 될 사람들은 지하벙커로 피신하지도 못하고 해외로 탈출하지도 못할 힘없고 무고한 민중과 인민 아닐까요?
물론 저는 미국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흘리는 속뜻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실제로는 북한 붕괴를 원치 않거든요. 북한이 사라지면 남한에 무기를 팔 수 있는 조건이 약해지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빌미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위협하고 자극해서 북한이 도발해줘야 남한에 비싼 무기들을 지속적으로 팔면서 떠오르는 중국을 봉쇄(封鎖)할 구실이 생기는 거죠. 미국의 대통령들도 고백했듯 미국 정치는 군산복합체에 의해 좌우되고 경제는 군수산업에 의해 지탱됩니다. 그리고 미국이 무기를 가장 많이 팔아먹는 나라가 바로 남한입니다. 해마다 적어도 서너 번 벌이는 대규모 한미합동 군사훈련은 미국의 새로운 무기들을 남한 군부에 선보이며 판촉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는 것이고요.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맹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국익 밖에 없다는 기본 원리조차 모르고 오로지 한미동맹에만 죽자사자 매달리는 얼빠진 숭미/종미주의자들 때문에 북한의 도발과 남한의 군비증강이 반복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비판하자 남한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줏대 없는 일부 야당 지도자들까지 말입니다. 이 역시 국제관계에 무지하거나 비굴한 숭미/종미 때문이겠지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온 것은 미국의 위협 때문인데 중국더러 책임지라는 게 말이 되는가요? 만에 하나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의 안보에 엄청난 구멍이 뚫리는데 북한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제재와 봉쇄를 강화할 수 있을까요? 김정은이나 북한 체제가 좋거나 맘에 들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얄밉고 괘씸해도 중국 자신의 안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할 수 없는 거죠. 자나깨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우는 미국이 군사쿠데타를 저지른 박정희가 좋거나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두환이 예뻐서 남한을 감싸며 지지했어요? 미국 자신의 안보 때문에 그랬지요. 10,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남한의 존재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 미치는 영향보다 1,500km 안팎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의 존재가 중국의 안보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지 않겠어요?
참고로, 이스라엘이 걸핏하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느라 유엔에서 이스라엘 제재안이 수십 년간 수십 차례 나왔지만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한 미국을 비판하는 남한의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거의 없고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어떠한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미국이 옹호해주는 것은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이익 때문이듯,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며 아무리 도발해도 중국이 심각한 제재(制裁)를 하기 어려운 것은 중국의 사활이 걸린 안보 이익 때문입니다.
평화의 씨앗
나라 안팎의 호전광들이 한반도 전쟁의 불씨를 키우는 데 맞서 저는 남북 사이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싶습니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북녘 함경도 지역에서 극심한 홍수가 일어났답니다. 북한 언론은 “해방 이후 처음 맞는 대재앙”이라 표현하고, 유엔 실사단은 “50-60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홍수 피해”라고 묘사하는군요. 사망/실종자가 500명이 넘고 이재민이 무려 14만명이나 된다니까요.
사상 최대라는 북녘의 홍수피해에 박근혜 정부는 인도적 지원조차 거부하는 모양입니다. 민간 차원의 지원도 반대하는 것 같고요. 언론은 모금운동을 벌이긴커녕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우리는 북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녀는 밥 먹듯 공언(公言)이나 약속을 뒤집어왔습니다만.
다행히 그리고 반갑게도 일부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며 수재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에 힘입어 즉각 행동으로 옮기렵니다. 1999년 8월 제1차 서해교전을 지켜보며 남북 사이의 전쟁 가능성을 단 1%라도 낮춰보고자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위한 통일운동>을 시작했듯, 남북 사이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줄일 겸 함경도 수재민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김정은 정권이 밉다고 홍수에 굶주리며 죽어가는 무고한 주민들을 외면할 수는 없잖습니까? 5년 전 일본에서 지진과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아베 정권이 미워도 피해 주민들에게 따뜻한 성금을 보냈듯이 말이죠.
남쪽에서는 쌀값이 폭락해 볏논을 갈아엎기도 하고 쌀이 남아돌아 가축에게도 쌀을 먹이로 주며 남아도는 쌀을 쌓아두는 창고 보관비도 만만찮은 터에 굶주리는 동포에게조차 쌀을 보내지 않는다면 천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이럴 때에 식량을 지원해주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도우며 자신이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지 않겠어요? 춥고 배고픈 북녘 사람들에게 한 줌의 쌀이라도 보내주면 혹시 가슴 속에 품고 있을 남쪽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이 조금이라도 녹아 없어질 테고요.
제 의견에 동의하신다면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아래 구좌로 보내주시길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부담 없이 1,000원도 좋고 10,000원도 좋습니다. 큰 열매를 보내는 게 아니라 조그만 씨앗을 보내는 것이니까요. 저는 1999년 8월부터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위한 통일운동’을 시작하면서 약 10년 동안 약 5,000명의 회원/후원자들을 통해 약 1억원의 성금을 모았었는데 2007년의 수해지원까지 사용하고 남은 금액도 이번에 보태렵니다. 지난 3월 북한에 책을 보내기 위한 성금을 모으기 시작해 약 2백만을 모았었는데 헌 책을 많이 기증 받아 보내는 바람에 남은 성금도 보태겠고요.
북녘 수재민을 돕는데 남쪽 농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쌀을 사서 대한적십자나 대북지원단체 또는 종교기관 등을 통해 보내고 싶습니다만, 박근혜 정부가 이를 막는다면 국제기구나 미국/중국 동포단체 등을 통해 보내야겠지요. 우선 9월 말까지 성금을 모으며 정부의 대응에 따라 지원 경로를 정하고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성금 보내실 땐 제가 기부금 영수증이라도 만들어드릴 수 있도록 통장에 성함이 꼭 찍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성금 보내주실 곳: 전북은행 102101-1778059 (이재봉/남이랑북이랑)
책 소개
2주 전 “싸드: 박근혜와 김진명”이란 제목의 글을 보내드린 뒤 많은 답글을 받았는데, 두 분이 김진명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내주셨습니다. TV조선과의 인터뷰로 동영상 제목이 “사드 결정난 이상 정부에 힘 몰아줘야”더군요. 글쎄요, TV조선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짜깁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박근혜 정부가 싸드 배치를 결정한 이상 그에 힘을 실어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건 아니죠. 통치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바로잡도록 반대하고 저항하는 게 작가/지식인의 역할이지, 자신의 지식과 소신과 철학을 뒤집으며 권력에 추종하자고요? 주인공을 통해 “싸드는 전쟁입니다..... 미국과 싸워야 합니다! ..... 저들은 이 금수강산을 핵전쟁으로 뭉갠다고 협박하고 있어요. 미군의 평택 이전은 바로 그런 의미에요”라고 외친 사람이..... 이런 김진명을 저는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 대신 책 2권을 새롭게 추천합니다. 두어 달 전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들이지요. 김관옥 계명대 교수의 ≪전쟁인가 현상유지인가: 미중 패권경쟁의 논쟁과 실상≫은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세계 최강 미국과 급속도로 떠오르는 세계 2위 중국 사이에 전개되는 패권 경쟁을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관계 이론들을 응용해 분석하고 검증하고 있습니다. 학술이론이 많이 나와 좀 딱딱합니다만 중미관계를 쉽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라 생각합니다.
통일부장관을 두 번 지내고 지금은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와 <평화협력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현 박사의 ≪정세현의 외교토크≫는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두루 살펴보고 남한 외교의 길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외교의 중심을 잘 잡자는 것이지요. 인터뷰 내용을 옮긴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지요. 여기저기 글도 많이 발표하고 강연도 많이 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자고 외치느라 조선일보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나라 안팎의 호전광들에 의해 한반도 전쟁의 불씨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시고, 남북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평화의 씨앗을 널리 뿌려주시길 간절하게 바라며, 이재봉 드림.
* 뉴스로 칼럼 ‘이재봉의 평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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