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3주기 추모전..고통과 반성 치유와 희망
철학과 학생이었던 시절, 그림이 나의 언어임을 직관(直觀)으로 알게 되어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단한번도 나의 선택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일이 없었다.
과도한 작업으로 2년이 넘도록 손을 못쓰는 상황이 왔을 때도 절망한 적도 신에게 기댄 적도 없이 입이나 발등, 몸의 다른 부분으로라도 그림을 계속 그리려 노력했고 그것이 힘들자 각종 재료를 이용한 작은 조각품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가면서 어떻게든 창작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마침내 손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어 집중된 작업으로 나만의 시각언어를 찾아내었고 2014년 초, 한 공모전에 우승하면서 뉴욕에 진출하게 되어 오랜 단련 끝에 마침내 작가로 살아갈 희망을 품고 긍정적인 기분으로 가득 차서 2014년 4월 15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이탈 리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뉴욕전에 대한 희망과 계획을 적으면서,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냉소에도, 항상 금전에 쪼달리며 십수년간 낮에는 점원생활을 하고 밤시간을 쪼개어 그림을 그리던 삶이 공모 전에 우승하고 뉴욕의 갤러리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의미있는 결실을 거두었음을 스스로 대견 해하였다.
하지만, 비행기를 내려 처음 들은 한국소식은 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것이었고, 세월호 소 식을 좇으며 절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몇 달간 세월호 소식에 매달려 추이를 좇으면서 몸이 바짝 마르고 정신과 영혼이 마모(磨耗) 되는 경험을 하였다.
한참을 홀로 품고 있다 심각한 우울증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어렵게 주변사람들, 가족과 속내 를 나누었는데 “그래,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이니까 네가 이렇게 긴 시간 네 일을 신경 못 쓰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등등 나로 하여금 그들을 과연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질 문에서부터 인간 본연에 대한 깊은 불신과 실망이 깊을대로 깊어져 결국 가족을 포함해 이리 저리 알던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 지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생의 전기(轉機)일 수도 있었던 뉴욕전을 피폐한 심신으로 겨우 끝내고, 이탈리아로 돌아 왔지만 활발하게 작업을 하기는 커녕, 이미 뭔가를 그리는 것이 힘들어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력감, 죄책감, 뭐라 정의하기 힘든 슬프고 무겁고 부정적인 마음상태로는 그 어떤 것에도 몰입하기 힘들었고 그림을 진정한 고통과 치유의 도구라며 정의하던 나의 생각도 흐리멍텅해져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기계적인 점원의 삶만을 계속해 나갔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점원일을 그만 두고 세월호 2주기인 2016년 4월 16일 한국에 가서 지난 그림들을 모아 전시를 하며 오랜 기간을 머물렀고,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 다시금 결계(結界)에 갇힌 듯한 느낌으로 몇 달을 보내며 촛불집회에 나가거나 세월호 소식을 좇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그림을 다시 시작하려고 노력하며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내 상태에 그림을 완전히 놓아야하는가, 하는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중, 세월호 3주년 추모전 시회를 기획하시는 분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고 망설이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참여하게 되 었다.
떠도는 작은 배(팽목항)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30x40cm <조경희>
스케치를 하고 구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생각하 고 곱씹고 반추하며 많이 그리고 많이 울었다.
그림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가가고자 노력하던 예전의 의지와 감각 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끼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장면이 머리에 떠올라 자다가도 일어나서 스 케치를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내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그림을 완성한 직후, 세월호가 인양되고 미수습자들이 하나씩 발견되는 소식을 보면서 또 한번 전율(戰慄)과 함께 진실을 반드시 인양해야한다는 의지가 예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희망으로 가 슴 속에 피어오르는 것을 감지했다.
새로 그린 그림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오랜만인 데다가, 민감하고 아직도 진행형인 가슴 아 픈 주제를 모티브로 하여 그린 그림이라, 실은 그림을 부치기까지 두려움과 망설임도 있었지 만 전시가 시작되고 나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 개인적으로 내게 감상을 전한 분들과 그림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귀한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마음 속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기 시작 함을 느꼈다.
지금도 나는 하루종일 아무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면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 나의 천직임을 다시금 깨닫고 좀더 깊고 굳은 확신 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섭리를 통해 자연스럽 게 이뤄지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존재의 본질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주세요, 모두 함께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30x40cm<조경희>
지금도 침몰 당시 아이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세월호 이전과 비교해볼 때, 부정과 비정상에 눈감으며, 남의 일이려니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껍데기처럼 살아왔는지를 서서히 깨달음은 물론,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연대와 공감의 가치를 고민하고 고찰하지 못했던 모래알같이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큰 물살을 타듯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전시회에 참여하는 모든 과정이 내게는 고통과 반성과 치유와 희망을 맛보는 귀한 순간순 간이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모아 기획하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세월호의 희생자 분들과 그 가족들이 나의 형 제자매임을 다시금 새기고 끝까지 함께 하리라 새롭게 다짐한다.
글 | 조경희 작가(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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