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로빈 칼럼니스트
바른정당 김무성의원이 노룩패스 신공(神功)을 펼쳤다고 해서 화제다. 23일 일본에서 귀국한 김의원이 입국게이트로 들어서면서 자신의 캐리어(가방)를 마중나온 수행실장(?)쪽으로 굴려서 전달하는 장면이 구설을 빚고 있다. 사람이 오기도 전에 굴리는 전달방식도 특이하지만 김의원이 달려오는 수행실장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캐리어를 정확히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낸 것이 농구에서 봄직한 난이도높은 ‘노룩패스(No Look Pass)’ 기술이라는 비아냥이다.
논란의 핵심은 김무성의원이 아랫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보통사람같으면 캐리어를 끌다가 자연스럽게 인계하거나 설사 굴려서 주더라도 눈을 마주칠텐데 사람은 안보고 캐리어만 툭하고 밀어줬으니 권위주의적이고, 상전과 하인의 수직적 관계처럼 보여진 탓이다.
김무성의원이 농구에 조예(造詣)가 깊은지 알 수 없지만 농구/축구기자를 10년 넘게 한 입장에서 일단 운동감각이 좋을 것이라는데 한표 던진다. 유연한 팔놀림에 농구는 몰라도 볼링은 좀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에 그 장면을 보고, ‘와우 저 캐리어 최고급인가보네. 굴러가는게 컬링수준이야..' 저렴한 캐리어로 흉내를 냈다간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는 커녕 자칫 나뒹구는 ‘망신 허슬’이 나오기 십상이니까..
문제의 동영상을 여러번 반복해서 봤다. 유투브에 공개된 동영상은 각도가 가운데와 오른쪽에서 촬영한 것밖에 없어 왼쪽에서 바라본 것이 없는게 아쉽지만 최소한 문에서 나오기 전 수행실장을 확인했을 것이다. 사람이 나올때마다 자동게이트가 열리니까 수행실장도 안쪽에 보스가 계신지 일찌감치 확인했을 것이고 김의원도 수행원이 보였기 때문에 그쪽으로 밀면서 나온 것이다.
솔직히 다시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온다.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몸도 굽히지 않고 가볍게 오른손으로 민 캐리어가 2m 이상 굴러가더니 달려오는 수행원의 품에 정확히 안긴다.. 정말 원숙한 기술이다. 오죽하면 네티즌들이 ‘조던도 울고갈 노룩패스’라고 탄복할까.
<이상 채널 A 캡처>
<이하 OBS 캡처>
그런데 왜 김무성의원은 노룩패스를 했을까. 원래 하던 습관이라서? 그건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여당의 실세의원이었던 그는 평소 가방을 끌고 다닐 일이 없다. 수행원이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보좌할 비서들이 한둘이 아닌데 귀찮게 왜 끌고다니나. 어쩌면 여권도 비서가 보관하다 입출국할 때만 들고 있을지 모른다. 혼자서 캐리어를 끌게 된 것은 애당초 일본에 수행원 없이 혼자 갔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사정도 그렇고 대선결과도 그렇고 머리좀 식히겠다며 일본에 6일간 머물다 돌아온 길이었다. 그래서 어색한 캐리어를 끌어야 했는데 입국게이트만 딱 넘어서면 수행원이 있으니 경계선을 넘는 순간 캐리어를 전광석화처럼 굴려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무성의원이 여러가지 복잡한 심사로 인해 못마땅한 심기를 캐리어밀기로 표현했다는 분석도 하지만 그보다는 캐리어 끄는게 어색하고 불편했다는게 맞을 것이다. ‘아 짜증나. 내가 왜 이런걸 끌어야지? 보좌관 하나 데려올거 그랬나? 좋은 시절엔 세관구역까지 알아서 들어와 몸이 홀가분했는데 말야..’
수행원을 보는 순간 귀찮은 캐리어는 자유(?)를 찾아 비상하기 시작했다. 1초라도 빨리 던지자. 잰걸음으로 달려오는 수행실장을 확인하고 캐리어를 노룩패스한 우리의 김의원. 캐리어를 던져야 할 또한가지 이유는 기자들이 가방을 끌고 있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기때문이다. 바른정당내 위상도 그렇고, 소위 김무성계 의원들 대부분이 자유당으로 백기투항(白旗投降) 하면서 세력도 없고, 하물며 캐리어까지 질질 끄는 모습이라니..안돼~에~.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 기왕이면 고고하게 허리도 굽히지 않고 캐리어를 슬그머니 밀어버리는 차원높은 기술을 순식간에 발휘한 것이다. 정면을 응시하다 대기하던 기자들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며 활짝 미소짓는 우리의 김의원. 카메라 스트로브가 일제히 터지는 짜릿한 순간. 마치 영화에서 약속된 장면을 촬영하는 명배우의 풍모였다. 그는 기자들이 어디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히기전 캐리어를 밀어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면을 응시했다가 여유만만하게 기자들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그 멋진 모습. 노룩패스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수십년의 경륜으로 미디어의 생리를 잘 알고, 계산할 줄 아는 그는 역시나 이풍진 세상을 헤쳐온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기자들과 네티즌의 관심은 장막뒤의 모습에 있었다. 어깨 펴고 만면에 미소짓고 카메라를 응대하는 장면이 아니라 그 직전, 눈도 돌리지 않고 멀리서 달려오는 수행실장에 가방을 '옛다 받아라' 굴려주는 신공에 주목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날 저녁 방송뉴스 제목은 "김무성 캐리어는 자동 로봇?" "김무성, AI캐리어 들고 입국"이 될뻔 했다
각설하고, 오늘날 무한경쟁하의 미디어들은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보다 감춰진 모습을 드러내는데 열을 올린다. 선정성이 시청률을 높이고, 부수판매를 증가하고, 온라인 클릭수를 높이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유엔총장이 ‘조국을 위해 이 한몸 불사르겠다’는 기염을 토하며 귀국한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라. 생수해프닝, 공항철도티켓해프닝, 너싱홈앞치마해프닝, 나홀로방독해프닝 등등 심지어 산소퇴주잔 해프닝은 악의적인 편집으로 매도된 가짜뉴스였다. 오죽하면 기자들보고 “아주 나쁜 놈들이야”라고 했을까. 그것마저 보도돼 곤욕을 치렀지만..
물론 선정성은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로 나오기도 한다. 촛불혁명의 민심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대통령의 경우, 감동의 에피소드와 미담 사례들을 연일 파헤쳐지는 것도 일종의 선정성 경쟁이다. 대통령의 인기가 최상이고 워낙 인간적인 모습이 많다보니 보수진보언론 할 것 없이 뉴스꺼리들을 찾기에 안간힘 쓰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치인들은 부정적이고 희화적인 모습이 도마에 오른다.
그런 점에서 김무성의원은 경솔했다.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刷新)할 대단히 좋은 기회를 날린 정도가 아니라 더 망치고 말았다. ‘끈떨어진 뒤웅박’일지언정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13인의 철새파동이후 국민적 동정론이 확산되고 기사회생한 것처럼 홀로 남은 김무성의원 역시 이번 기회에 캐리어를 끌고 겸손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면 신선한 이미지를 주었을 것이다.
공항을 나서는 김무성의원. 앞쪽에 수행원이 김의원의 캐리어를 끌고 가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이길래 밀어줬는데 뭐가 잘못된거냐? 내가 왜 해명을 해야 하나, 할 일들이 없냐. 나는 그런 것 관심 없고, 일이나 해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안타깝게도 김무성 의원은 탄핵대통령 박근혜처럼 공감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들이 보는 상황에서 굴러온 캐리어를 공손히 받아드는 수행실장의 '쪽팔리는' 심정을 생각해보라. 그래서 김의원의 노룩 패스 신공은 반전의 위닝샷이 아니라 뼈아픈 자책골(自責goal)이 되고 말았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ro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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