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망고?
과일에 비유되는 이민 자녀들
[i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한국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달라스의 경우 한인인구의 증가추세가 눈으로 보일 지경이다.
한국사람이 늘어나면서 달라스 한인타운이 젊어지고 있다. 불과 10년 전의 한인 커뮤니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젊은 층을 겨냥한 한인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고 있고,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인테리어가 눈에 띄게 세련되어져 가고 있다.
젊어지는 한인타운은 청장년 세대의 증가도 한 몫 한다.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30~40대 부모들이 많아졌다.
패기에 찬 도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유학생들의 증가도 달라스 한인타운의 평균연령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러기 가족이나 가족을 떠나 온 용감한 조기유학생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인 인구 10만명의 시대가 도래하니 한인 커뮤니티의 규모가 크지 않았을 시기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한인학생들간의 이질감이 그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많은 학교나 출석하는 학생수가 많은 대형교회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것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유아기를 미국에서 보낸 이민 2세’ vs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 vs ‘고등학생 이후에 미국에 왔거나 유학생’들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조화를 뜻한다.
수년 전부터 한인 이민 2세를 가리키는 속어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유아기를 미국에서 보낸 이민 2세는 ‘바나나’로 불리운다. 이 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껍데기는 노란 색인데 속은 하얀 색인 바나나에 빗대어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생활하고 미국교육을 받아온 한인 2세들이 생김새는 동양인이나 사고방식은 미국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유학생이나 늦은 이민 1.5세는 ‘팝’이라고 부른다. 팝은 Fresh Off the Boat의 말머리를 묶어 만든 언어로 배에서 막 내린 ‘촌뜨기’의 의미를 지녔다.
미국의 우월성을 담고 있는 듯도 하고 아직까지 미국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폄하하는 뉘앙스도 들어있다.
‘망고’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국의 뿌리에서 찾자는 2세와 1.5세들의 신선한 발상이다.
겉과 속의 색이 다른 바나나가 되지 말고 겉도 노랗고 속도 노란 망고가 되자는 뜻이다.
이들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알린다.
같은 조상, 같은 역사, 같은 피부, 같은 핏줄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바나나와 FOB와 망고로 나누어 부르는 청소년들의 세계를 엿보면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온다.
스스로를 ‘노란 과일’에 비유하는 심리 속에서 어줍잖은 흰색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자녀들의 내적 갈등이 보이는 것 같아서다.
언어의 경계를 명백히 나누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며 명확한 선을 긋고 싶어 하지만, 어차피 바나나나 망고나 노란 과일이기는 마찬가지란 사실을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못내 안타깝다.
갑자기 이민 1세대는 어떤 과일에 비견될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나나는 커녕 바나나 흉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망고라고 자신만만하게 드러낼 수도 없는 사람들, 미국에 온 세월이 꽤 되니 촌뜨기 FOB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 바나나가 되어가는 자식들을 ‘참아내며’ 사는 사람들, 미국에 살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과? 황도? 귤? 여러가지 과일이 머리 속을 맴돈다. 역시 모두 노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