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인사청문회
[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2014년 12월, 미국의 두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이 공개한 ‘CIA 고문실태 보고서’ 얘기다.
보고서는 9.11 이후 알 카에다 대원들을 상대로 한 CIA의 잔혹한 고문실태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자행된 CIA의 고문행태가 베일을 벗자 미국은 정치공방에 휩싸였고 국제적인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인권을 부르짖으며 전쟁을 합리화 했던 미국이, 정작 자신들 스스로 인권을 유린하는 추악한 고문 가해자였음이 알려지면서 미국을 향한 전 세계의 비난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게, 이런 미국이 부러웠다.
자국의 국제적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치부를 공개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같은 인물이 정치권에 있다는 게 부러웠고, 미국 최고의 권위기관인 CIA의 숨은 치부를 낱낱이 조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과 이를 가감없이 공개한 언론,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인정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솔직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자국의 야만적인 고문행태를 대내외에 공개한 미국에서 고문은 더 이상 자행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갯 소리로 한국에는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명명백백하게 잘잘못이 드러났어도 ‘떼’부터 부린다는 말이다.
국정원과 군당국이 조직적으로 인터넷과 SNS 상의 댓글을 조작하고 대통령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기업의 윤리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나라의 위기관리와 대처능력이 엉망이어서 세월호 속 아이들은 속절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심지어 생떼같은 자식을 눈 앞에서 수장시킨 부모들의 진상규명 외침을 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국회의원(지금의 자유한국당)의 입에서 ‘세금 도둑’이라는 경멸에 찬 언어까지 나왔다.
부끄럽기 짝이 없고 원통함이 극에 달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권의 민낯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조국의 현실이다.
지난 겨울, 추위도 잊은 채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었던 촛불민심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즐기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탐욕과 무능으로 점철된 부패한 권력여당을 해체시켰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국민적 외침이 ‘촛불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6월 10일은 촛불혁명이 이뤄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세울 것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80%를 넘는 국정 지지도를 기록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근 대한민국 정치권은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인사들에 대한 소모적 정략적 청문회를 치르느라 시끌벅적 분주하다.
전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는 인사청문회에서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세월호 참사에 입을 닫았던 당시 여당, 지금의 야당 정치권의 공세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국민보다 눈 앞의 기싸움이 더 중요하다. 법 위에 떼법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씁쓸함에 터져 나오는 헛웃음마저 낯 뜨겁다.
딱히 놀랍지는 않다. 그들의 정치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딱 그 정도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