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집값과 높은 렌트비, 날로 심해지는 교통체증, 늘어나는 흉악 범죄, 자연재해에 무방비 등등.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조사에서 올해 3위를 차지하는 등 언제나 상위 10위 안에 꼽히는 오클랜드지만 정작 거기서 살고 있는 시민들은 생활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뉴질랜드=코리아포스트) 날로 심해지는 교통정체
요즘 오클랜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민이라면 교통정체가 날로 심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공사하는 도로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공사를 마친 도로들도 있지만 오클랜드의 교통체증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뉴질랜드교통국(NZTA)에 따르면 모토웨이의 평균 속도는 2014년 시속 64킬로미터에서 지난해 55킬로미터로 크게 줄었다.
또한 북부 레이크 로드(Lake Road), 서부 링컨 로드(Lincoln Road), 공항으로 가는 도로 등 오클랜드 간선도로들의 피크타임 정체율은 25%로 3년전 18%보다 증가했다. 지금 상태로 가면 오는 2020년에는 33%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뉴질랜드 교통협회인 내셔날 로드 캐리어스(National Road Carriers)의 데이비드 아이트켄(David Aitken) 회장은 “10년 전에 트럭 운전사가 하루에 오클랜드를 가로질러 5회 운행할 수 있었는데 현재 2-3회로 줄어 많은 운전사들이 일을 그만두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트켄 회장은 1960년대 이후 오클랜드 인프라에 대한 투자 소홀과 주택건설에 부응하는 인프라 계획이 없는 오클랜드시의 유니태리 플랜(Unitary Plan)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자동차 내비게이터 제조사인 톰톰(TomTom)의 2017 교통지수 조사에 따르면 오클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 47위에 올랐다.
이는 교통정체가 심하기로 잘 알려진 홍콩에 비해서도 높은 순위로 운전자들은 하루에 추가로 45분을 정체된 도로에서 허비하고 1년이면 4주를 꽉 막힌 도로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교통체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구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오클랜드 인구는 최근 3년 동안 12만 1,000명 정도 급증했다.
인구증가에 따라 매주 오클랜드에서 약 800대의 자동차가 등록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150만명의 오클랜드가 720만명의 홍콩보다 교통정체가 심하다는 건 인구이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어 보인다.
NZTA의 브렛 글리돈(Brett Gliddon) 오클랜드 하이웨이 부장은 “오클랜드는 지형적으로 도로가 좁고, 도로와 대중교통 개발을 할 수 있는 땅들이 대부분 이미 개발됐다”며 “이 때문에 기존 도로들이 더욱 많은 교통량을 흡수해야 할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오클랜드의 교통문제는 경제적, 환경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끼쳐 2년마다 발표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경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오클랜드 경제에서 12억5,000만달러의 생산성 손실을 가져오는 것으로 지적됐다.
OECD는 피크타임 교통정체를 줄이고 신규 도로 건설과 대중교통 확충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통행세와 혼잡세 부과를 주문했다.
소득 대비 너무 높은 주거비 부담
오클랜드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또 다른 주범은 너무 높은 주거비 부담이다.
최근 집값 오름세가 진정됐다고는 하지만 이미 오클랜드 평균 집값은 100만달러에 육박했고 렌트비까지 오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클랜드를 벗어나거나 노숙생활, 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모텔 등에서 생활하는 처지가 됐다.
올해 데모그라피아(Demographia) 국제주택구매력조사에서 오클랜드는 가구소득 대비 집값이 10배로 홍콩, 호주 시드니, 캐나다 밴쿠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주택 매입이 어려운 도시로 평가됐다.
오클랜드의 주택난은 적어도 10년은 지속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웨스트팩(Westpac)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오클랜드는 향후 10년간 17%, 즉 29만명의 인구증가로 인해 10만호의 주택 건설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오클랜드시는 유니태리 플랜을 통해 오는 2041년까지 40만호의 신규 주택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지만 건설인력 부족, 건설자재 가격 급등, 개발업체에 대한 은행의 대출 강화 등으로 더딘 진척을 보이고 있다.
오클랜드시는 또 인구분산을 위해 워크워스(Warkworth), 푸케코헤(Pukekohe), 쿠메우(Kumeo) 등 외곽지역에 미니 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200억달러의 자금 마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클랜드 렌트비도 물가나 임금 상승 이상으로 올라 집없는 시민들의 오클랜드 생활을 더욱 빠듯하게 만들고 있다.
오클랜드 최대 부동산 중개회사 바풋 앤드 톰슨(Barfoot & Thomson)에 따르면 지난 1사분기 오클랜드 렌트비 상승률이 4.6%로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 2.2%와 임금 상승률 1.6%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의 방 2개 주택의 평균 렌트비는 이제 주당 474달러이고 방 3개의 경우 평균 599달러에 이르고 있다.
늘어나는 흉악 범죄와 솜방망이 처벌
최근 오클랜드에서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흉악 범죄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빈번한 강도 사건에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남부 오클랜드 지역의 데어리와 리쿼샵 상인들은 자율방범대를 결성하고 당국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가두 시위를 벌여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월말 기준 1년 동안 강도, 절도, 무단침입 등의 범죄는 3.9% 증가했다.
지난달 칼과 스크류드라이버로 무장한 남성들에 강도 피해를 입은 파파토에토에(Papatoetoe) 소재 한 리쿼샵 주인인 나린더 싱라(Narinder Singla)는“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으며 이제 모든 사람들이 강도처럼 보이고 그들이 곧 다시 쳐들어 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그들이 붙잡혀도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안심되지 않는다”며 “처벌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강도들은 경찰과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질랜드편의점협회의 데이브 후커(Dave Hooker) 회장은 담뱃값이 크게 인상되면서 강도들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후커 회장은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지만 이를 증명할 통계자료가 없고 공공정보법에 따른 정보 요구를 관계당국에 해도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강도 사건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를 신설하는 한편 훔친 물품을 거래하는 장물아비를 타겟으로 한 캠페인을 지난달 26일부터 개시했다.
각종 자연재해에 취약
오클랜드는 올해 들어 수 차례의 폭우 피해를 겪으면서 자연 재해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다.
지난 3월 사이클론 데비(Debbie)의 영향으로 오클랜드 전역에 걸쳐 수 백 채의 주택이 침수됐고 뉴린(New Lynn)에서는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오클랜드 카운슬 측은 인프라가 그 같은 집중 호우에 견딜 정도로 설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데비의 영향으로 아드모어(Ardmore)에 있는 정수처리 시설에 부하가 걸리면서 오클랜드 시민들은 매일 20리터의 물을 절약할 것을 권유받았다.
100년이 넘는 오래된 하수관과 아파트 등 주거 지역 조밀화에 따라 상하수도 시스템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데비와 같은 강도의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대의 기후과학부 제임스 렌윅(James Renwick) 교수는 “사이클론 데비와 같은 폭우는 확실한 인간의 족적이다”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러한 폭우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