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던 어느 늦은 가을에 그날은 봄날씨 같은 날이었다. 점심으로 도가니탕과 설렁탕을 먹고, 낙엽이 예쁜 가로수길부터 도청까지 엄마랑 산책했다.
엄마는 늘 우리를 위해 밥을 하셨다. 배달을 시키자고 해도, 나가서 먹자고 해도 엄마는 흔쾌히 그러자 하시질 못하셨다. 나는 엄마가 늘 밥하는데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가서 먹는 점심은 그래서 늘 더 즐겁다. 그리고 산책.. 나는 한국의 가을을 사랑한다. 한국의 가을만큼 멋진 계절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가을날 엄마와 집 앞에 있는 미술관 구경. 미술관을 가려고 나선 건 아니었다.
집 근처에서 밥을 먹고 낙엽을 따라 걸었고, 산책을 하다 우리집 앞에 있는 미술관 앞에 다달았고, 주말이라 가족 나들이 나온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들어가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엄마 집앞에 있는 미술관, 십년도 넘은 그 곳을 처음 들어와 본다며 기뻐하신다. 이곳은 도립 미술관이고 평일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는 종종 들르곤 했었는데, 가볍게 나들이 삼아 돌아보기엔 참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일층 로비에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은 은퇴하신 시니어분들께서 카페를 운영하신다. 사실 커피는 전문 바리스타가 만든 맛을 즐길 순 없지만, 그 분들의 커피는 늘 좋다.
그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엔 뭘해야 할지 몰라 엄마가 살짝 주눅이 들기도 하겠다 싶다. 엄마는 그걸 두려워한 건 지도 모르겠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같이 걸어가 입장료 천원씩을 내고 미술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때 전시 중인 샤갈과 피카소를 감상하는 엄마를 보았다. 이런거 모른다고 엄마는 말하신다. 그리고 나는 무심한 듯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모른 다고.. 그리고 사실이다. 안다고 제대로 즐기는 건 아닌 거니까.. 몰라도 우리가 잘 감상하면 아는 것과 같은 거 아닐까..
내가 좋으면 그냥 좋은 작품이다. 우리끼리 그림보고 얘기하고 그걸로 엄마가 미술관은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좋은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엄마와 얘기한 그림, 엄마는 누구보다 잘 느끼고 보고 잘 ‘아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전시관 경남 경치의 수채화들.. 엄마가 나고 자라온 곳, 그리고 가 보았고, 어딘지 알고 있는 곳들, 그 쉬운 그 작품들이 더 좋으시단다. 나도 동감이다.
엄마는 문화 생활을 혼자 하실 일이 잘 없으시다. 그런 엄마의 문화 생활의 처음이 전혀 누치하지 않다. 엄마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미술관을 갔을 때도 엄마는 문화인이 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가 앞으로도 좋은 영화와 좋은 미술품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 엄마와 함께 미술관 한 번 가보세요. 엄마의 소녀 감성을 발견하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엄마의 문화 생활을 응원하며..
칼럼니스트 강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