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 존중, 고유한 문화도 버릴 필요 없어
저는 후자를 믿고 있기 때문에 동화보다 적응을 택합니다. 한인이 타 인종과의 대인관계에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고유적인 문화를 버릴 필요가 없고 감출 이유도 없다고 믿습니다.
한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저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행사는 SAT II한국어 시험에 만점을 받은 35명의 자랑스러운 학생들을 포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11학년들이 대부분인 귀여운 한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어려운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니 그런 업적은 성과중의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의 실력을 과시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세 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감동을 주는 간단한 이야기를 한 개씩 주고 선생님들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떤 학생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유창하게 낭독을 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의 부모님과 그들에게 매 주말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도 큰 공을 돌립니다.
레이크우드 지역에 새로 개업한 한인 소유 일식식당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일식 식당에 비하여 손색이 없이 꾸며진 그 식당에 들어선 순간 약간 놀랐습니다. 한인 소유든 아니면 일본인 소유이든 일식식당에 들리면 제일 먼저 큰 소리로 들리는 인사가 “이랏샤이마세” 라는 일어 인사 입니다. 또 일식식당인지라 그런 인사가 당연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아간 일식 식당에서는 스시맨, 웨트레스 등이 다 한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 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당전체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갈색등불” “짤랑 짤랑” 같은 한국 트롯트 음악이었습니다.
개점한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 일식 식당은 성업중이었습니다. 손님들 중에 한인은 소수인 점을 미뤄볼 때 그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한인 소유 식당에서 한인이 한국어 인사와 한국음악을 틀어 놓았다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그 식당의 주인도 한인인 것을 과시한다고 영업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식당의 영업이 잘되는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스시맨과 웨이트레스는 모두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철판구이를 하시는 분은 50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인이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철판을 둘러 앉은 미국인 손님들을 계속해서 웃겼습니다. 유머와 동작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면서 철판구이를 천직으로 삼고 있는 듯 신나게 일을 했습니다.
다른 일식 철판집의 젊은 요리사 처럼 요란한 동작은 하지 않았습니다. 식칼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아 내거나 후춧 가루 병을 공중에 던졌다가 뒷 손으로 잡는 등의 쇼를 하지는 않았지만 손님들을 즐겁게 할 정도의 약간의 쇼 동작은 했습니다. 그분의 서비스를 받은 미국인 손님들은 마구 웃고 요리사가 던져주는 새우를 입으로 받아 먹는 등의 장난기 어린 식사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가족들이 단란하게 찾아 오면 주인은 허가를 받은 후에 디지털 카메라로 서진을 찍어 즉석에서 인쇄하여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한번 찾아 오는 손님을 영구적인 손님으로 만들려는 성의와 친절이 역력했습니다. 그 식당을 찾아 본 후에 저도 가족들을 데리고 조속한 시일 내에 찾아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역시 그 식당의 운영도 한인이 소유이지만 일본 문화에 동화하는 정책보다 적응을 하는 접근 방법을 시도하여 성공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올초 설날에 제 둘째 아들은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집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손님들은 전부가 미국인들이었지만 떡국과 김치찌게가 주를 이룬 음식이었습니다. 비 한국인들이 한식을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어도 잘 못하는 아들과 미국인 며느리가 대견스럽게 보였습니다. 타 문화에 동화할 필요가 없고 적응을 해야된다는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