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돌아오는 카지노 배에서 생각한 것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플로리다에서 가뭄중에 마르지 않는 도랑물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오기 보다 힘들 것이다. 지반이 물을 빨아들이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뭄에 흐르는 도랑물이 필요하듯 인생살이 노년에도 삶의 도랑물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나이 70이면 성문제가 부부관계를 좌지우지하지 않고, 나이 80이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먹고 사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하루 세끼면 족하고 강물 처럼 넘쳐나는 많은 돈 보다는 마르지 않은 도랑물같이 노후를 끝까지 지탱시켜줄 작은 돈줄만 있으면 족하다.
얼마전 코코비치에서 카지노 배를 타고 대서양에 나가 안하던 도박을 했다. 주중 낮에 늙은이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이 바로 카지노배인 것 같았다. 먹고 마시는 게 모두 공짜에다 배삯도 없다. 어디 그것 뿐인가. 마릴린 몬로가 되 살아 난듯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수다스러운 미국 노파들의 진한 농담도 들을 만 하였다.
그러나 도박시간이 끝나 배가 다시 항구로 돌아올때 몇몇 미국 노인들의 모습은 갈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마도 적지 않은 돈을 털린 모습들이었다.
LA에 사는 한인 노인들이 노인 복지금을 타는 날이면 라스베가스로 가 도박을 하고 온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즐기려는 목적의 '도박 아닌 도박'인지라 돈을 잃을 확률이 높은데도 여기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끝이 좋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 하였으니 나이가 들수록 바른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내 고향은 방아치는 벽촌이다. 사촌형이 어느날 "도랑물이 마르면 세상은 끝인기라. 동학난때 우리 조상들이 이곳으로 피난와서 정착한 것은 이 도랑물 보고 그리 한기라.' 그 때는 어려서 사촌형의 말이 무슨 뜻인 줄 알 수 없었으나 이제 나이가 들으니 그 말 뜻을 알 것 같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에서 나는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나는 내 도랑물을 곁에 두어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자위해 본다.
나이 든 노인이라면 삶의 경험과 노하우로 작은 도랑물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돈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지라도 작은 풀 한포기 일지라도 성심껏 가꾸고 살면 노년을 드러나지 않는 황금들판으로 바꾸어 놓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