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이계선 칼럼니스트
돌섬을 찾은 노처녀들이 떠들어대는 이구동성(異口同聲).
“은퇴한 노목사님부부의 생활모습이 꼭 고향시절 어린애들의 부부놀이처럼 보여요.”
“제대로 봤군요 돌섬농장만 해도 그래요. 간판이 ‘에덴농장’ ‘아리랑농장’이라 대형농장이름들이지요. 그런데 가보면 겨우 8평짜리 30평짜리 장난감농장이란 말입니다. 손바닥만한 미니농장에 농작물이란 농작물을 죄다 심어놨으니 우리 부부는 애들의 소꿉놀이 장난을 하며 지내는 셈이죠.”
“목사님, 그게 아녜요. 돌섬농장으로 말하면 손바닥농장에서 수확한 황제토마토 왕고구마가 어느 전문종합농장보다 우수해요. 저희들 얘기는 돌섬 시영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사시는 목사님 사모님의 모습이 어린애들처럼 즐겁고 재미있어 보인다는 말이예요. 고향의 꼬마시절 우리들이 부자영감 부부놀이를 하면서 즐거워 하던 때처럼 말입니다. 목사님은 할아버지 할머니부부인데 돌섬에서 고향의 어린아이처럼 재미있게 살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건 맞는 말이다. 우리는 7년전에 목회를 은퇴하고 파라커웨이로 왔다. 케네디공항 남쪽바다에 악어처럼 길게 떠있는 섬마을이다. 500가구에 한인은 달랑 2가구가 살고 있는 흑인아파트에 입주했다. 지저분하고 불안한 시영아파트.
첫날밤을 불안하게 지낸 우리부부는 다음날 아침 보드워크를 걸으면서 섬 주변을 둘러봤다. 바다와 포구로 둘러싸인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아파트는 시궁창인데 주변은 파라다이스 에덴이다. 늙은 우리부부는 에덴동산을 거니는 아담과 이브처럼 손을 잡았다. 고향의 어린 시절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결혼놀이 할 때의 꼬마신부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보 은퇴하여 노인아파트에 들어와 보니 달랑 우리 둘만 남아있는 기분이오. 현역으로 살 때 그렇게 많이 만나던 사람들이 다들 어디가고 우리 둘만 남아있구려. 재미있게 삽시다. 고향의 어린시절처럼 소꿉놀이를 하면서 삽시다.”
에덴동산을 걷는 아담 이브는 처음 보는 꽃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보는대로 감탄했더니 그 감탄사가 바로 이름이 됐다. 우리도 이 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관 이름들을 고향식으로 바꿉시다.
파라커웨이를 ‘돌섬’으로 번역하여 불렀다. Far Rockaway에 Rock(돌바위)이라는 글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Wild Life Refuge를 ‘새섬’으로 바꿨다. 돌섬서쪽 다리를 건너면 말공동묘지가 있다. 카우보이들을 태우고 서부개척사를 달리던 말들이 자동차산업에 밀려 폐차가 되어 이곳에 묻혀있다. ‘말 무덤섬’으로.
우리는 결혼반세기를 매일 부부싸움을 하면서 살아왔다. 부부로 살아온게 아니라 원수로 싸워온 셈이다.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발견하면 용서없이 칼을 빼들었다. 똑똑했으니까. 신기하게도 어느 한쪽 죽지도 않고 멀쩡하게 살아서 돌섬까지 왔다. 막상막하 천생배필(天生配匹)이다. 영어 라이벌(싸움상대)은 독일어 리베(연인)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여보 우리 현역은퇴 했으니 부부싸움도 은퇴하고 어린아이처럼 삽시다.”
“좋지요. 당신은 임금님 나는 중전마마가 되어 돌섬왕국을 다스리는 어린이가 되는 거요.”
어린애는 착하다. 사나운 맹수들도 새끼는 귀엽고 착하다. 어린애처럼 삽시다. 70넘은 우리가 어떻게 어린애가 될 수 있을까? 젊어지는 샘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난아이가 됐다는 욕심쟁이영감처럼? 그러나 돌섬에 젊어지는 샘물이 없는데.
“여보,고향시절 꼬맹이들처럼 삽시다. 그때 우리는 시집가고 장가드는 어른들 흉내를 즐기면서 살았지요.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살아보니 그게 별것 아니오. 차라리 어릴때 부부놀이가 더 재미있었지. 이제 늙은 우리가 고향시절의 어린아이 연극을 하면서 사는거요. 똑똑하고 교활한 늙은 부부가 아니라 착한 바보부부가 돼서 말이오. ‘잘했군 잘했어‘ 노래처럼 말이오.”
하춘화 고봉산이 부른 늙은부부의 노래. 가난한 노부부에게 재산이라곤 병아리 한쌍과 황소한마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날 닭과 황소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알아보니 남편이 몸보신하려고 슬쩍 잡아먹었다. 황소는 아내가 친정오래비 장가밑천으로 주려고 몰래 팔아버렸다. 졸지에 알거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노부부는 얼싸안고 춤을 추면서 노래한다.
“영감 (왜 불러) 뒷 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할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왜 그래요)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나 (보았죠) 어쨌나 (친정집 오라비 장가 들 밑천에 주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래서 내마누라 이라지.”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영감이 한일은 무조건 옳다. 마누라가 한일은 무조건 옳다. 이 얼마나 바보부부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부부인가? 우리도 그렇게 삽시다.
돌섬 7년을 우리는 바보부부로 살고 있다.
소꿉장난하듯 장난감농장을 가꿨더니 해마다 풍년이다. 지난해에는 뉴욕가든경연대회에서 금메달(에덴-이현자) 은메달(아리랑-이계선)을 따냈다. 금년에도 아내는 2연패에 성공, 부부가 맨해튼 시상식에 참석한다. 천여명이 참가하는 디럭스파티다. 지난해에 미국공중파방송 ‘뉴욕뉴스1’ TV에 아내의 인터뷰장면이 나왔다는데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7년동안 어린애처럼 살았더니 500세대 흑인모두가 친구가 됐다. 굿모닝인사를 하다가 주먹과 주먹을 맞부딛치는 격투기인사까지 한다. 내가 젊은이들과 격투기인사를 하는걸 보고 휠체어 노인도 부인들도 심지어는 3살짜리 아기도 주먹을 내민다. 난 UFC참피온이 된 기분이다. 시영아파트도 많이 좋아졌다. 손님이 오면 복도청소를 했는데 지금은 안해도 된다.
우리부부는 덜 싸운다. 바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심형래코미디처럼 재미있다게 산다. 우리는 바보부부다. 그래서 돌섬생활이 재미있다.
그런데 묘한게 있다. 바보부부가 사는 돌섬에 오면 모두 바보가 돼버리는 것이다.
맨해튼에서 온 7선녀들은 모래사장을 보자 소녀들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처음보는 40대 50대와 60대 할머니들인데 나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비비고 야단들이다. 팬클럽? 아니다. 고향시절에 부부놀이 하던 계집애들이 늙어서 다시 만난 기분이다.
뉴저지의 권사님은 손주들이 물장구치는 모습에 끌려 옷을 입은채로 풍덩 뛰어들었다. 박사도 교수도 부자도 돌섬에 오면 어린아이가 돼버린다. 그래서 돌섬은 즐겁다.
구약성경이 나오는 이야기. 사울왕의 박해를 피하여 도망다니던 다윗이 라마나욧에 오자 신이내려 춤추고 찬양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다윗을 죽여 목을 잘라 오너라.”
그런데 사울왕이 보낸 군사들에게도 신이 내려 함께 춤추고 찬양한다. 화가 난 사울왕이 달려왔는데 그역시 칼을 내 던지고 춤추고 노래한다. 그곳에 영각자(靈覺者) 사무엘이 있기 때문이다.
돌섬에 오면 어린애가 돼버리는건 사무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돌섬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돌섬은 바보들의 천국이다.
똑똑한 아내와 바보남편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등촌의 사랑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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