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강탈절’ ‘국가적속죄일’ 자성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한국에서는 한가위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추수감사절이 명절이다. 이곳에서는 평일인 추석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한인들은 추수감사절을 명절로 지낸다. 캐나다는 10월 둘 째 월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미국은 11월 셋째 목요일로 계절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이 이곳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첫 해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미국의 건국신화로 미화된 이야기이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하느님(하늘)께 제사를 드리는 감사제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대부분 한 해 수확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축제를 거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석이 추수감사제로 정착되었지만 고구려 이전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 때는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삼한에서는 ‘10월제‘가 행해졌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이나 서양에서도 추수감사는 각 지역에서 행해지던 축제였다. 청교도(淸敎徒)들이 떠나 온 네덜란드 레이던 주민들은 매년 10월 3일 감사제를 드렸다. 캐나다 추수감사절은 미국보다 53년 앞선다. 뉴파운드랜드에 살던 영국 이민자들이 1568년부터 감사절을 정례화했다. 1600년 대 초 프랑스 개척자들이 메인주 아카디아에 정착했을 때에도 해마다 수확기가 끝날 무렵 지역 원주민들을 초대하여 추수감사절 행사를 개최했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 전통은 그 후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계, 독일계 등 새로 온 이민자들이 그들의 전통을 보태 행사를 더욱 다채롭게 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이 청교도들이 처음 시작했다는 전설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한 해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인류보편의 전통인 추수감사절이 어디서 먼저 유래했는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각기 자기 민족의 전통이나 지역 형편에 따라 지내면 될 일이다.
한국에는 전통적 추수감사제 추석이 있음에도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는 미국 추수감사절에 맞춰 11월 마지막 목요일이나 주일에 감사예배를 드린다. 이는 1904년 9월 13일 당시 조선 예수교장로회 제 4차 합동공의회에서 결정된 이래 110년 전통으로 내려온다. 당시 결정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왕성한 교회의 발전에 감사’하는 의미라고 해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표시’로 지키는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처럼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추수감사절이 고정된 것은 1908년부터다. 수확시기가 지난 한국의 계절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빠진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본다.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전통적인 추석차례가 미신행위처럼 보여 별도의 감사절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추석날 차례의식을 빼고 감사예배만 드려도 될 것 같은데 미국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 같아 보기에 좋지 않다. 미국 추수감사절도 우여곡절 끝에 11월 셋째 목요일로 확정되었다. 1789년 초대 조지 워싱턴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는데 3대 제퍼슨은 영국 전통이라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라 요세파 헤일이라는 여성이 16대 링컨 대통령에게 탄원하여 남북전쟁 중인 1863년 국경일로 복원되었다.
플리머스에서 첫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다는 전설은 다음과 같은 역사에서 비롯된다. 30여 명 청교도들을 포함한 102명의 유럽인들이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6일간 험난한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인근 프로빈스타운 해안에 상륙한 것은 1820년 11월 21일이다. 이들은 질병으로 대부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들을 발견한 플리머스 원주민 왐파노아그 부족은 굶주리고 병든 유럽인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나그네와 병들고 굶주린 사람을 극진히 보호하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유전통이다. 마사소이트 추장은 다른 부족이 백인들을 경계해 합세하여 이들을 공격하려 했을 때도 철저하게 백인들에게 약속한 안전과 평화우호 조약을 준수해 이들을 보호했다. 그들은 백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씨앗과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전통적인 고기잡이법도 전수해 주었다. 또한 원주민들은 수확철이 되기 전 이들이 굶지 않도록 사슴과 칠면조 등 식량을 수시로 제공했다. 다행히 첫 해 가을 수확이 좋았다. 메이플라워 승객은 53명만 살아남았지만 은인인 왐파노아그족 90명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었다. 원주민들은 감자, 옥수수, 칠면조 등을 선물로 가져와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사흘 간 계속 먹고 마시는 추수감사절 축제는 원주민들에게는 3만 년 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이에 따라 백인들도 원주민들과 어울려 사흘 간 푸짐한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백인들은 자신들의 은인인 원주민들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근본주의 칼뱅주의자들인 청교도들은 스스로 사탄에 대항해 거룩한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로 인식해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야만적인 사탄의 무리로 간주했다. 2년 후 1623년 왐파노아그 부족의 많은 사람이 유럽인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죽자 조 마서 장로는 이를 “하나님의 뜻이며, 마땅히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고 설교했다. 이러한 백인들의 근본적인 시각으로 원주민들과는 세월이 흐를수록 적대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마사소이트 추장이 죽고 백인들이 필립이라고 부르는 그의 둘째 아들 메타콤이 추장이 되자 이들 사이에 충돌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청교도들이 충분한 무장을 갖춘 뒤였다. 1675년 벌어진 ‘필립왕 전쟁’으로 원주민들은 강력한 현대무기에 거의 몰살당하고 일부는 노예로 팔리거나 캐나다로 피신하여 모피교역에 종사하게 된다. 청교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 멸망을 자초한’ 왐파노아그 추장 메타콤의 머리를 장대에 꽂아 무려 25년 동안 플리머스 바닷가에 전시했다.
원주민 입장에서 본다면 백인들이 상륙했을 때 구해 줄 것이 아니라 도륙(屠戮)했어야 했다. 추수감사절의 불편한 진실은 건국이념을 이른바 ‘청교도 정신’으로 삼으려는 백인들에 의해 철저히 감추어지고 미담으로 조작돼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건국 선조로 떠받드는 청교도 역사는 이들의 본국 영국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미국인들에게는 무시되고 있는 영국인들의 첫 정착지 제임스타운 상륙 350주년인 1957년에 이어 50년 후인 2007년 5월에는 5일 간이나 방문하여 조상들의 미국개척을 기념했다. 링컨이 추수감사절을 연방국경일로 제정할 때는 남북전쟁으로 국민통합이 시급했던 때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목숨을 걸고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의지해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개척정신과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그들의 신앙은 국민통합에 가장 유용한 테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숨죽이고 살아왔던 원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70년 매사추세츠주는 메이플라워호 상륙 350주년 축하행사를 준비하면서 왐파노아그 원주민 후손에게 축사를 부탁했다. 그러나 주정부는 원주민 대표 프랭크 제임스의 원고를 사전입수하고는 청탁을 취소했다. 그의 원고내용은 언론에 즉각 공개되었다. “오늘은 당신들을 축하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축하할 시간이 아닙니다. 내 동족에게 일어났던 일을 회상해 볼 때 가슴이 무겁습니다. 청교도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쳐 물건을 훔치고 옥수수, 밀, 콩 낱알을 훔치면서 케이프코드를 4일 간 탐험했습니다. 왐파노아그족의 위대한 추장이신 마사소이트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정착민을 환영했고 우정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말입니다. 50년이 지나기도 전에 왐파노아그족과 정착민 주변에 살던 다른 원주민들은 그들의 총에 죽거나 그들로부터 전염된 질병으로 거의 전멸했습니다. 비록 우리 삶의 방식과 언어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우리 왐파노아그족은 여전히 매사추세츠 땅을 걸어 다닙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겠지만 우리는 보다 좋은 미국, 사람과 자연이 다시 중요한 원주민의 미국을 향해 일합니다.”
1975년부터 매년 추수감사절 원주민들은 플리머스에서 ‘반추수감사절’ 행사를 열고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2005년 추수감사절 뉴욕에서 화려한 퍼레이드가 열릴 때 원주민 3천여 명은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 섬에 모여 이날을 ‘추수강탈절(秋收强奪節)’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조상들이 백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로 기력을 차린 백인들이 원주민을 배반하여 죽이고 땅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지식인 사이에서도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텍사스대 로버트 젠센 교수는 2011년 추수감사절 때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방종한 가족잔치판을 벌이는 미국 추수감사절은 자기성찰의 ‘집단단식’하는 ‘국가적 속죄일’(A National Day of Atonement)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클리대 사회학교수 댄 브룩도 미국인들의 기억상실증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죄책감까지는 몰라도 무언가는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명분으로부터도 한참 멀리 떨어졌다. 1년 중 가장 많은 매출이 이루어진다는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가 말해주듯 자본주의 광란의 카니발로 변모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 저녁 가족파티가 끝나기 무섭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밤새워 줄을 서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 유통업체들은 이날 묵은 재고를 거의 정리한다고 한다.
버몬트대 제임스 로웬 교수의 지적은 우리 이민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추수감사절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겐 아름답고 풍요로운 국경일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미국사(美國史)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기회로 여긴다. 추수감사절 전통은 순례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동부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가을추수 축하의식을 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추수감사절이 지금 같은 축하의 날이 된 것은 1863년부터다. 남북전쟁 동안 북군은 이런 의식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애국주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청교도 순례자들과 추수감사절은 아무 관련이 없다. 1890년대까지 이들은 전통에 포함되지 않았고 1870년대까지 누구도 ‘순례자’(Pilgrims)라는 어휘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미국역사가 추수감사절에 부여한 이데올로기적 의미와 전설은 미국인을 민족중심주의자로 만든다. 결국 하느님이 우리 문화 편에 있다면 왜 우리가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가?” 로웬 교수의 지적은 우리 같은 이민자 미국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청교도들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신 풍요로운 땅에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모여 합중국을 이루고 있다. 만일 미국이 청교도정신이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국가이념으로 고수한다면 다른 민족과 종교는 여기에 동화되지 않은 한 영원히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교도들은 근면과 절약에 의한 부(富)의 축적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로 평가했다.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자들에 대한 구원예정설을 주창하는 칼뱅주의는 선택받은 자들의 부귀와 이를 이룰 수 있는 지식과 능력 등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출발한 청교도정신은 개척정신과 실용주의정신으로 이어져 미국의 건국이념과 자본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개척정신은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학살하면서도 이러한 업적(?)을 하느님의 은혜로 감사드릴 수 있는 정신적 밑바탕이 된 것이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 모든 분쟁에 개입하면서 이를 선택된 국가로서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를 일방적으로 공격한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조지 W 부시)
어쨌거나 추수감사절은 모든 미국인의 즐거운 명절이다. 특히 한인들은 추수감사절을 추석명절 대신 지낸다. 멀리 떨어진 가족도 이날 모여든다. 공휴일이기 때문에 조그만 자영업하는 사람들도 이날 하루는 마음 놓고 쉴 수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정으로 고달프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즐기되 한편으로는 이 땅에 살다가 백인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원주민들과 가진 자들의 나눔이 없어 굶주리는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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