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이민 50주년 주장에 대한
이유있는 문제제기
[i뉴스넷] 최윤주 기자 editor@inewsnet.net
미주 한인이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매듭은 1903년 1월 13일이다. 이 날은 하와이가 어디 붙었는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는 101명의 한인을 실은 이민선이 하와이에 당도한 날이다. 하와이 땅을 밟은 101명 모두가 이민에 성공한 건 아니다. 이 중 8명은 눈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로 입국금지당해 실제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한 초기 이민자는 93명이었다.
그로부터 114년이 흐른 2017년 9월 대한민국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재외공관별 한인 인구현황’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재외한인의 수는 총 249만 2252명이다. 여기에 미 연방정부가 추정하는 한인 불법체류자 20만명을 더하면 미국내 한인 인구는 2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 도시별 인구순위 4위에 해당하는 대구광역시 인구 247만명보다 23만명 가량을 웃도는 엄청난 숫자다.
최초 이민자들이 하와이 땅을 밟은 지 114년만에 이룬 거대한 성장이다.
미주 이민자 개념, 비자와는 상관없어
▷비이민 비자 받아 이민, 흔한 이민유형
▷국제연합 "이민은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행위"
그렇다고 이민규제의 빗장이 완전히 풀린 것도 아니다.
1965년 이민법 개정 이래 여전히 이민 쿼터제와 우선순위제 등의 이민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법 강화가 더욱 옥죄고 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한인 이민자의 수가 이처럼 크게 증가할 수 있었던 건 대다수 한인들이 ‘비이민 비자’로 입국해 이민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비자, 가족초청비자, 취업이민비자 등의 ‘이민비자’를 한국에서 받은 후 미국땅을 밟는 이민자는 그리 많지 않다.
유학비자, 종교비자, 취업비자, 주재원비자, 종교비자 등의 ‘비이민 비자’로 들어왔거나, 관광비자로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소지하고 있는 비자와 상관없이 미국에 정착해 터를 잡아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을 통틀어 ‘이민자’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이 이민을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행위 또는 그 타국에 정착 터를 잡고 살아가는 행위’라고 정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이민 50주년 주장에 대한 이유있는 문제제기
▷단순한 행사참여, 이민 50주년 인정으로 포장될 수 없어
▷올해는 달라스 이민 50주년 아닌 '미주한인 간호사 50주년'
미주 한인 이민자의 급성장은 달라스라고 예외가 아니다.
바야흐로 달라스 한인인구 10만시대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까지 ‘이민 OO주년’이란 시간의 매듭이 없다.
최근 한 언론사가 임의로 1967년 간호사 유입을 이민역사의 시초로 정한 후 이민 50주년 관련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달라스 한인사회에 ‘역사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다.
깊은 고민이나 사회적 공감없이 ‘좋은 게 좋은 거’란 의미에서 관련행사에 후원의 이름으로 조직의 명칭을 빌려주거나 후원금을 전달한 단체도 없지 않다. 인터뷰나 관련행사에 참여했던 단체와 회원들도 부지기수다.
이를 포장해 해당 언론사 관계자에서 ‘공신력있는 단체와 기관이 이번 행사를 후원했다는 것은 이민 50주년을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적도 있다.
그러나 주요단체의 관계자들은 이번 행사와 관련, ‘이민 50주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지금껏 지역내 많은 단체나 기관을 도와주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예의 차원의 협조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뒤늦게 달라스 이민역사를 살펴본 후 “언론이 50년이라니까 큰 의심없이 그런가보다 생각했다”며 단순한 행사참여가 자칫 ‘이민 50주년 인정’으로 포장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한인단체들이 신중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인사도 있었다.
역사를 바로 잡는데는 공소시효가 없다.
대대적인 행사를 벌인 해당 언론사는 난처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이민역사를 한 언론사가 정한 잣대에 맡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는 곧 힘이다. 이민사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세월의 뿌리는 길고 오래될수록 더 큰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최대로 잡으면 이민 102주년, 최소로 잡아도 이민 51주년
▷최초 한인 1915년
▷최초 거주자 1930년
▷최초 10년 이상 거주자 1949년
▷최초 교회 1966년
다행인 것은 달라스 지역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던 신기해 씨가 2년여간의 집필과정 끝에 발행한 ‘달라스 초기 이민사’와 달라스 이민사회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북텍사스 간호사들의 이민사 ‘백의의 천사’가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위의 자료에 따르면 달라스 땅에 처음 발을 디딘 한인은 1915년 한사윤 씨다. 북텍사스 소도시 Clarkville에 강의차 잠깐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거주자는 달라스 신학교 유학생 김성락 목사다. 김성락 목사는 1930년부터 1년여간 달라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의 거주기록은 달라스 신학교 학적부에서 발견됐다.
텍사스 웨슬리안 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한 문장욱 박사는 1949년부터 1962년까지 햇수로 14년을 거주했다.
이후 1950년대에 10여명의 한인들이 달라스 포트워스 곳곳에 흩어져 거주했으며, 1962년부터 달라스 생활을 한 석보욱 목사를 주축으로 1966년 8월 15일 미국교회를 빌려 달라스 초대교회가 세워졌다.
1967년 3월에는, 1957년부터 달라스 인근지역에 거주하던 강희구 씨가 달라스로 이주해왔으며, 그해 4월 9일 최초의 동양인 간호사인 최만자 씨가 달라스에 도착했다.
이후 1968년 달라스 한인사회 최초의 전체 망년회가 실시됐고, 이듬해인 1969년 2월 23일 제1대 달라스 한인회장에 호원규 씨가 당선됐다.
<달라스 초기 한인 이민사>의 저자 신기해 씨는 책 발행 직후인 2014년 7월 지역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혹자는 달라스 한인 이민역사가 40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민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달라스의 한인 이민역사가 내년(2015년)이면 100년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해, 해석하기에 따라 1915년은 이민역사의 시초로 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달라스 이민역사 논란, 외부 시각은?
▷글로벌웹진 노창현 대표 "1930년"
세계한인민주회의 정광일 사무총장 "1966년"
그렇다면 달라스 이민역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해석은 어떨까.
1985년 도미, 뉴욕에서 20년간 신문방송인으로 활동해오다 2007년부터 더불어민주당 해외동포 정책과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수행중인 세계한인민주회의 정광일 사무총장은 “67년 간호사 유입이 합법적인 취업이민이기 때문에 이민사회의 출발로 본다는 주장은 나름 일리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해외 이민사회는 ‘한인사회의 형성’ 즉, 공동체를 만들어 뭉침을 시작한 것을 초기로 봐야 한다”며 1967년 간호사 유입을 달라스 이민사회 초기로 보는 시각에 반대했다.
“기술된 역사로만 봤을 땐 1966년 8월 15일을 한인사회 형성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낸 정광일 사무총장은 “재미한인사회에서 유학생은 이민자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은 체류신분과 상관없이 공동체가 생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1988년 언론계에 입문한 후 2003년부터 뉴욕에서 활동하며 2006년 ‘소수민족 퓰리처상’을 한국 언론인으로 처음 수상하고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을 CBS-TV 앵커 신디슈와 함께 공동수상한 바 있는 글로벌웹진 뉴스로의 노창현 대표기자는 “유학도 넓은 의미의 이민이다. 이민 초기 유학생들은 이민문호가 없었기 때문에 유학생이었지, 사실상의 이민자다. 기록이 확실하다면 달라스 이민역사는 최소한 1930년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창현 대표는 또한 “미주 이민 역사는 한인사회 전통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길게 잡아야 한다. 우리가 이민을 좁게 풀이할 필요가 없다”며 22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는 미 대륙에서 이민 역사가 짧은 것보다는 길어야 한인사회의 위상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제발, 있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자
▷없는 역사 만들면 조작, 있는 역사 없애면 '은폐'
▷한인사회 책임있는 대응 필요
없는 역사를 만들어내면 역사 조작이다.
있는 역사를 없다고 하면 역사 은폐다.
있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 지금 달라스에 필요한 역사인식이다.
역사 바로 잡기는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인사회의 책임있는 대응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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