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2)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이란은 역사적으로 고려 때까지 한국과 가까웠던 나라였는데 조선 초기 이후에는 교류의 흔적(痕迹)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두 나라의 교류는 오랫동안 끊겼다. 이란에 오기 전까지 이란이라는 나라는 내게 차도르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한때 가까웠다 멀어진 연인처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이런 이란을 거만하고 속 좁은 서구문명의 시선으로가 아니라 온정적인 한국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우리도 아직 약소국이면서 언제부터인가 약한자가 아니라 강한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편견(偏見)의 벽은 높은 것이어서 서구식 교육과 환경에서 자라온 나그네의 의식은 쉽사리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열린 동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자리를 찾듯 카스피 연안을 달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도르가 그 속에 감춰진 여인의 아름다움과 세상과 단절하고 구분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
차도르나 히잡이 감추려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서 나그네의 심기는 불편하지만 감추어진 것은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차도르 안에 감추어진 이슬람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욕망, 인권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쥐구멍 밖에서 쥐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매력이란 감추어진 곳에서 나온다. 유명한 걸그룹의 다 드러난 모습보다도 차도르 속에 감추어진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 더 매력적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리 애써서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번도 외간 남자에게 허튼 미소를 흘린 적이 없었을 그녀들에게 내가 “살람”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면 고개를 돌려 짓는 표정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이미 그 눈빛이 다 말을 해버렸는데. 남자나 여자나 감정의 교류는 비슷하거늘 남자들이 이렇게 살갑게 다가와 정을 나누는데 여자인들 그 무표정 안의 감정도 무표정하겠는가?
아무리 완고한 사회에도 예외적인 5%의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아침에 호텔을 나오려고 열쇠를 반납하고 여권을 돌려받는데 호텔 접수 여직원이 나를 불러 세운다. 이란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벽걸이 타일을 하나 준다. 아마 어제 내가 우리의 장고 모양의 열쇠고리를 선물한 것에 대한 답례인 것 같다. 나의 순발력은 여기서 제대로 발휘를 한다. 그동안 이란 남자들하고 찍은 사진은 많은데 여자들하고 사진을 찍는 데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던 터이다. 지난번 하굣길의 여중생들하고 찍은 사진이 유일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공의 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채 손을 내밀어 고맙다고 했고 그녀도 엉겁결에 하얗게 빛나는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듯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고 그녀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린 사진을 갖게 되었다. 그녀도 자신의 한국산 카메라로 똑같은 장면을 담아 간직하였다. 좋은 기분은 여운(餘韻)이 오래 간다.
토네카본은 생각보다 큰 도시이다. 복잡한 길을 뚫고 달리는 나의 모습과 한반도기와 이란 기를 달고 뒤쫓는 차량의 행렬은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시민들은 우정 어린 반응을 보여주었다. 오늘 한 여자가 차를 세워 말을 걸다가 조금 더 가서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더니 집에 들어와서 차를 한잔 하고 가자고 한다. 차를 같이 마신다는 것은 언제나 차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집안에 초청하는 것은 차도르 속의 여인의 모습처럼 베일에 싸인 이란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실마리이다.
그녀가 집안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열두어 살 소년이 문을 열어주었는데 표정이 굳어있었다. 내게 보여주었던 살가운 언사와는 사뭇 차이가 있는 언사였다. 나는 그녀와 소년과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는 않았다. 그녀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둘러본 집안은 깨끗이 정돈되어있었다. 창문의 커튼 사이로는 카스피의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고 그 옆 벽 정면에는 오래된 카펫이 액자에 담아져 걸려있다. 그 아래 재작년에 작고한 그의 남편과 가족사진 그리고 그녀의 젊은 날의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느닷없이 초청받아 집에 들어온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립서비스뿐이었다. “당신은 그레이스 켈리처럼 생기셨어요.” 그는 정말 큰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벽에 걸린 카펫은 그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오는 가보(家寶)라고 했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손오공이 타고 다니던 구름과 함께 알라딘이 타고 다니던 양탄자는 제일 갖고 싶은 것이었다. 양탄자만 타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줄 알았다. 페르시아의 공예품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카펫이다.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카펫은 생활필수품이다. 천막 바닥에 깔기도 하고 벽에 걸어 햇빛을 가리고 바람을 막기도 한다. 양털을 이용해서 만들어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던 카펫은 장인들의 정성과 땀을 더하면서 예술적 작품으로까지 승화(昇華)하였다.
카펫은 유목민들에게는 생활필수품이지만 정착민들에게는 집안을 꾸미는 장식일 뿐 아니라 자산이요 투자이기도 하다. 그 집의 카펫의 수와 품질이 그 가정의 부의 상징일 수도 수 있다고 한다. 카펫은 필요할 경우 금과 같이 팔거나 거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산이다. 이란에서는 신부의 결혼 예물로 카펫 한두 장을 지참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란에서 만드는 카펫은 예로부터 품질이 좋고 다양한 무늬의 정교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페르시안 카펫에는 아라베스크라고 불리는 기하학적 무늬와 현란한 꽃무늬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정밀화 풍경화 등을 그린 벽걸이용 카펫도 많다.
기계로 짠 것보다는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손으로 짠 카펫이 높은 가격으로 팔리며 진정한 카펫은 사람들이 많이 밟을수록 오히려 선명한 색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곱게 늙어가는 여자를 “당신은 카샨의 카펫과 같군요!”하고 한다. 카샨은 정교한 비단 카펫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카샨의 여인들은 대부분 카펫을 짜는 명인들인데 그들은 카펫처럼 세상 풍파와 역경 속에도 카샨의 카펫처럼 변함없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페르시안 카펫은 이란인들의 기쁨과 슬픔에 예술혼이 더해져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문화상품이다.
카펫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페르시아 카펫’은 생활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란 사람들은 이 카펫에 꿈과 자부심을 담아 최고의 문화 자산으로 만들었다. 직공들은 다양한 색상의 실을 자연의 염료에서 얻는다. 그들은 화공이 그림을 그리듯 무늬를 놓는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제적 수출품이었던 카펫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한나라까지 팔려갔다. 처음에 양털로만 짜던 페르시아 카펫은 중국의 실크를 만나 또 한 번 화려한 변신(變身)을 한다. 그녀의 거실에 걸린 카펫은 실크 카펫이었다.
청년들이여 이리로 오라! 와서 카스피 해에 발을 담그고 꿈을 꾸어라! 그리고 루트 사막에 머리를 박고 사색하라! 양털과 실크가 만나 최고급 카펫을 만들어내듯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상충하는 것이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이 더 많다.그러니 다른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따뜻한 포용력이 필요하다. 서구세력들이 내버려둔 그러나 우리에겐 보고(寶庫)인 이슬람권 중근동 아시아가 있다. 서구인들이 그냥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이빨을 드러내고 이곳의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먹고는 ‘한 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이라는 날조(捏造)된 이미지를 심으면서 이들을 혐오(嫌惡)했으니 이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만큼 기회도 많을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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