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감사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밤새 내린 눈으로 길에 눈가루가 쌓여 있었다. 날씨는 영하였다. 월마트에 배달할 컨테이너 무게는 지금까지 운송한 것 중 가장 무거웠다. 차 무게까지 합하면 거의 한계 중량인 40톤에 가까웠다. Nathan은 트레일러 바퀴 위치를 뒤로 물려 무게 중심을 고르게 했다. 각 바퀴 축마다 허용 가능한 중량 제한(重量 制限)이 있다. 100분 정도를 Nathan이 운전했다. 길이 미끄러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일을 배우면 힘들긴 해도 트레이너와 함께 있으니까 안전운행에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혼자서 겨울을 나야 한다. 오늘 눈이 내린 탓에 겨울 운전 맛을 살짝 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오늘은 미주리 - 미시시피 - 알라바마 주까지 왔다. 중간에 교대해 8시간 반 정도를 내가 운전했다. 둘이서 총 520마일 정도를 왔다. 배달지까지는 200마일 정도 남았다. 4시간 거리다. 운전하고 오는 도중에 어제 만난 빌리의 학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좁고 커브와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길을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해 주행하는 법을 연습했다. Nathan의 주문이 많아졌다. 그런 길을 한동안 달리고 나서는 넓고 쭉 뻗은 평탄한 길이었다. 이런 길은 이제 식은 죽 먹기다. 중간에 위성 라디오 음악 채널을 들으며 운전했다. Nathan은 내가 재즈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재즈 채널을 찾아 주었다. 한참 들으니 지루해져서 락 채널을 들었다. 역시 트럭 운전에는 락음악이다.
중간에 Nathan이 질문을 했는데 내가 아니라고 답했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그러냐고 묻기에 나는 명상(冥想)을 연습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Nathan은 자기 엄마도 몇 달 전부터 요가와 명상을 배운다고 했다. 휴게소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을 때 Nathan이 다시 물었다. 아까 왜 No 라고 했냐고? 그래서 무슨 뜻이냐고 내가 물었다. 그제서야 내가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Nathan은 Do you trust me? 라고 물었는데 Do you stress me?로 들은 것이다. 들으면서도 무슨 질문이 그러냐 싶었지만 앞서 하던 대화의 맥락으로 연결해서 생각해 자기가 운전 중 이런저런 주문이 많아 내가 스트레스 받느냐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완전 동문서답한 것이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다고 말하고 당연히 너를 100% 신뢰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오해가 풀렸다. Nathan은 세상에 멍청한 질문은 없다면서 모르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Nathan이 하는 얘기를 100% 이해하지는 못해서 대충 눈치로 넘어가는 것도 많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
Nathan도 답답할 것이다. 보니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것 같은데 워낙 내가 말대꾸나 호응을 시원찮게 하니까 좀 머쓱할 것이다. 영어로 뭐라고 대꾸를 해줘야 할지 잘 생각이 안 나서 그런 것도 있고 원래 내 성격 탓도 있다. 한국말도 잘 안 한다. 그래서 같이 사는 사람이 답답해 죽을라 그런다. Nathan 하고는 앞으로 석달 이상을 같이 지내야 한다. 이건 부부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다. 좁은 공간에서 거의 24시간을 같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이 기간 동안 대화를 많이 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트럭킹 업무를 잘 하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저녁에 묵고 갈 트럭스탑에 도착하니 주차할 자리가 몇 곳 남았다. 그런데 Nathan은 중간에 지도하다 말고 자기가 운전해 주차했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트레일러 짐이 무거워 오늘은 연비가 7마일 정도 나왔다. 보통은 평지에서 8마일 넘게 나온다.
S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트럭 배우느라 수입이 없는 것을 알고 생활비를 걱정하시며 돈을 2천불 주시겠다고 한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예전에 원장님 회사에서 일할 때 내가 입금하지 않은 수표가 4천불 가량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항상 마음에 남아 있었다며 형편이 안 좋아 다는 못 주지만 절반이라도 주고 정리해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것이다. 고마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Nathan이 없었으면 소리내 울었을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걸까. S 원장님 덕분에 취업비자를 받고 미국에 정착했다. 진행하던 인터넷 사업이 잘 안 돼서 회사가 문을 닫아 라디오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고 신경을 써주셨다. 인정 많고 나에겐 친형처럼 느껴지는 분이다. 나이도 둘째 형과 같다. 아내는 아이들 대학가면 쓰라고 부모님이 주신 돈을 한국 통장에서 송금해 생활비로 입금했다. 지난 번에도 한번 송금해 이제 더 보낼 돈도 없다. 마침 뉴욕주에서 세금 환급액도 통장에 들어 왔다. 지난 번 연방 환급액으로는 지난 달 집세를 냈다. 간신히 숨통은 트일 것 같다.
가뜩이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 갑자기 더 어려워 진 것은 자동차 탓도 크다. 지난 2월경 거래하던 택시 정비센터에 우리집 차를 손봐달라고 맡겼었다. 한푼도 깎지 않고 달라는대로 다 줬다. 그런데 다 고쳤다는 차는 계속 체크 엔진에 불이 들어왔다. 몇 번을 다시 갔었다. 마지막에는 완전히 수리가 됐다며 차를 받아 왔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였지만 차를 잘 고쳤으니 몇 년은 더 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트럭 운전을 배우러 뉴욕을 떠나자 마자 아내에게서 차가 터질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비디오와 사진을 보내왔는데 위험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불이 날 것 같았다. 정비소 사장인 알리에게 연락을 했으나 답이 없었다. 나는 집근처 정비소에 맡기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전에 들인 수리비와 비슷한 금액의 견적이 나왔다. 택시 정비소에서 수리한 것과 겹치는 부품도 있었다. 차는 괜찮아졌다고 하는데 정비소 기술자 말이 이 차에는 체크 엔진 라이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인스펙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란다. 택시 정비소 녀석들이 수리를 못 하니까 아예 체크 엔진 라이트를 없애 버린 모양이다. 9월이면 인스펙션을 받아야 한다. 이 차는 처음 샀을 때부터 사기를 당해 매년 인스펙션 때마다 고생하고 수리비로 거의 차 값 이상이 들어갔다. 차를 판 사람은 한국사람이었는데 연락도 안 되고 잠적(潛跡)해 버렸다. 그래도 오래 탄 정이 있어 계속 수리를 해왔는데 더 이상 이 차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집 차는 9월까지만 탈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소형차를 리스할 생각이다. 어차피 아내가 주로 타고 다닐테니 소형차라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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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트레이너를 소개합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Nathan이 나보고 페이스북 있냐고 물었다. 계정을 알려주니 바로 친구 신청을 해왔다. 나하고 많이 친해지고 싶은가 보다. 거의 다 한국어로 쓴 것이라 별로 읽을 것이 없을텐데. 이제부턴 영어로도 좀 써야하나?
트럭스탑에서 일어나 4시간 가량을 달려 월마트로 향했다. 알라바마 주는 의외로 언덕이 많았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한참을 달렸다. 타운길도 지나가고, 쭉 뻗은 고속도로도 달렸다. 11시 경 근처에 도착해 Nathan이 사주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Nathan은 생후 6개월때 한국에 와서 2살(한국 나이로는 3살)까지 의정부 미군기지에서 살았다. 희미하게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다시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마흔이면 78년생일테니 어쩌면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도 한국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
12시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화물을 내리고 나갈 때까지 한참 걸렸다. 월마트 매장으로 생각했는데 물류센터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물건을 모으고 분류해서 지역 매장으로 보내는 모양이었다. Nathan은 운전 외에도 트럭킹에 관한 것을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원래 PSD 단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내가 배우는 것이 빠르다며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어차피 TNT 단계에 가면 알아야 할 것들이다. 어떤 트레이너들 중에는 돈만 생각하고 학생들을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자신은 트레이너 일이 좋으며 학생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다리면서 근처에 Nathan이 좋아하는 트럭 모델이 있어 사진을 찍었더니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다음 화물은 알라바마 주 디캐터(Decatur)에서 켄터키 주 볼링 그린(Bowling Green)으로 가는 일정이다. 내일 오후에 받아서 모레 아침에 배달한다. 식용유를 제빵회사에 전달하는 것 같다.
이제 프리트립은 한 95% 정도 완성된 것 같다. 순서가 헷갈려 빼 먹는 몇 가지만 보완하면 시험은 문제 없을 것 같다. Nathan은 내일부터는 옆에서 힌트 주는 일 없이 실제 시험처럼 연습하겠다고 했다. 지금 상태로도 시험은 통과할 것 같지만 이왕이면 만점으로 합격하고 싶다.
트럭스탑에 도착해 사흘만에 샤워를 했다. 그동안은 이틀 간격으로 했는데 어제는 근처에 샤워할 곳이 없었다. 평소 넣는 주유소와 같은 가맹점이라야 샤워 쿠폰을 이용할 수 있다. Nathan은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갑자기 피곤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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