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소곤이 칼럼니스트

 

 

우민화 정책은 박정희에서 시작됐고 전두환에서 꽃을 피웠다.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의 속성이 그렇다.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겨우 면하던 시절, 약소국 저개발국 콤플렉스에서 그랬다치고, 전두환때는 정말 끔찍했다..국민의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광주시민들을 살육하고 난 직후에 잔치판을 벌였으니 말이다..

 

기억하는가..80년 7월 서울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를? 광주에서 흘린 피가 채 마르지도 않았을 그해 여름 미의 제전에 출전한 각국 미녀들이 카퍼레이드를 하고 풍만한 나신(裸身)을 드러내던 경연이 전국에 생방송되던 것을.. 피의 학살극이 벌어진 그땅에 가야했던 그녀들은 또 무슨 죄인가.

 

이듬해 5월엔 여의도 광장에서 ‘국풍 81’이라는 이름의 축제가 벼락치기로 만들어졌다. 이용이라는 가수가 세상에 알려졌고 행사장에서 팔리던 충무김밥이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연전에 광주민주항쟁에서 스러진 이들을 기리고 무릎꿇고 통곡을 해도 시원찮을 오월에 해괴한 난장을 만든게 전두환이었다. 군사정권의 살인마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적개심을 돌리려는 수작이었다. 그뿐인가.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행세하는 프로야구를 1982년 출범시킨 것도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이 야구애호가라서? 천만에. 전두환은 육사시절 축구팀 골키퍼로 뛰었다. 당연히 축구를 좋아해서 프로축구리그를 생각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축협 하는 일이 워낙 한심했다. 제대로 된 브리핑도 못하고 ‘어버버~’ 하는 순간 ‘요때다’ 하며 기회를 포착한 야구에 프로리그 밥상을 먼저 넘겨주고 말았다. 프로야구의 성공적인 론칭을 보고 축구가 허겁지겁 프로리그를 출범시켰지만 연고개념도 없고 준비도 안된지라 오늘날까지 줄곧 프로야구에 이은 2등 스포츠로 머물고 있다.

 

스포츠우민화(愚民化)를 정책적으로 장려한 것이 요즘 뜨거운 감자인 병역특례제도이다. 요즘엔 대체복무/전환복무로 용어는 달라졌지만 병역특례는 박정희정권이 1973년 도입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병역의무자 중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병역 대신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으로 일정기간 대체복무하는 것이었다.

 

운동선수들도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체육요원’으로 지정해 같은 혜택을 부여했다. 즉 4주간 기본군사훈련만 하고 복무기간 이상 해당분야에서 종사후 의무 기간이 끝나면 병역필 자원과 마찬가지로 예비군 훈련을 하도록 한 것이다.

 

제도의 취지는 일견 이해는 갔다.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의 기술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었고, 운동선수의 국제 대회 입상은 국민적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안성맞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외가 많아지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같은 제도를 합법 비합법으로 악용하는 자들 또한 많아진다는 것이다.

 

본래 ‘체육요원’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 이상 입상하거나 한국체대 졸업성적이 상위 10% 이내일 경우 특례를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장려하다보니 손쉬운 국제대회에서 대상자가 크게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1984년부터는 올림픽 3위 이상, 세계선수권대회·유니버시아드대회·아시안게임은 우승자, 개인종목은 아시아기록을 수립했을 때, 한국체대 졸업성적이 상위 10% 이내일 경우로 변경됐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 조건이다. 졸업석차 10등안에 든다고 병역특례혜택을 준다면 등위에 목숨을 거는 학생들이 많았을텐데 과연 모종의 결탁 등 부정행위가 안생긴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조항은 1990년 올림픽 3위 이상이거나, 아시안게임 1위에 입상할 경우로 대상이 축소될 때까지 17년간이나 유지됐다.

 

웃긴 것은 국가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위배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때였다.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사상 초유의 성적으로 내자 국민적 여론에 힘입어 월드컵 16강에 오르면 병역특례대상이 되도록 법을 개정했다. 물론 월드컵 본선에 30년 넘게 못나간 시절도 있었던만큼 16강 진입이 어지간한 종목의 세계선수권 금메달만큼 값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정한 규칙을 필요에 따라 바꾼다는 것은 결국 신뢰 훼손과 무원칙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2006년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에 진출하자 ‘축구도 줬는데 야구는 왜 안주냐?’는 여론이 제기됐고 결국 관철됐다. 그러자 이번엔 특례혜택이 너무 남발된다는 비판의 여론이 일었고 결국 월드컵 16강과 WBC 4강 병역특례 조항은 2007년 삭제됐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스포츠의 국제대회 우승은 쉽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겨운 시절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운동을 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지원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유리한 종목도 많아져 일견 흔하게 되었지만 해방후 20여년간 올림픽 금메달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 레슬링 양정모가 첫 금메달을 딸 때 느낀 국민들의 감격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용기를 준 스포츠 선수에 대해 (남자들만의 혜택이지만) 현역복무를 면제해주자는 여론은 그시절만 감히 토를 달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난하고 콤플렉스가 많던 60~70년대에나 통용될 정책을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는게 놀라운 일이다.

 

홈에서 열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깃점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스포츠선수들은 크게 늘어났다. 과거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돌아간 혜택이 프로아마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프로가 되어 돈과 명예를 누리는 스타들이 병역혜택까지 받는 스포츠스타 특권의 시대가 되버렸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병역특례는 비스포츠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됐다. 엊그제 보도도 나왔지만 문화예술분야의 병역특례자가 스포츠선수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90년대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은(그래봐여 한중일 3국이지만) ‘돌부처’ 이창호는 1994년 바둑협회와 시민들의 탄원덕분에 바둑이 체육분야에 편입돼 예술체육 요원으로 병역의무를 피할 수 있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6살이던 2009년 일찌감차 군면제를 약속받았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했기때문이다. 2013년부터 예술요원으로 피아노를 치며 열심히 복무(?)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분야에서 국제경연대회는 2등까지, 국내경연대회도 우승하면 혜택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국악처럼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세심하고 합리적인 배려같지만 이것만 봐도 병역특례가 얼마나 무원칙하고 문제가 많은지 잘 말해준다. 그러니 국회에서 아이돌그룹 BTS가 전세계적으로 국위선양(?)을 하는데 대중예술도 같은 혜택을 줘야하지 않냐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만일 BTS에게 같은 혜택을 준다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시민권을 땄다가 20년 가까이 모국입국이 금지된 ‘국민의 공적’ 유승준도 그전까지의 공로를 인정하여 소급적용하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반세기 가까이 병역특례제도를 운영하다보니 이 혜택을 받은 숫자가 무려 900명이 넘어섰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만한 스포츠스타들은 물론이고 이름도 생소한 스타(?)들이 국위선양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야구대표단.jpg

<채널 A 캡처>

 

 

최근 아시안게임에서 야구가 병역특례의 꼼수짓을 있는대로 발휘한 덕분에 국회에서 병역특례제를 손보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병역특례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제도 개선이 아니라 제도 철폐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스포츠와 예술은 서로 다르고 야구처럼 같은 스포츠라도 국제대회 성적내기가 훨씬 수월한 종목이 있다. 일률적, 계량적으로 누가 더 국위선양을 했다는 비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스포츠와 예술계의 스타들이 막대한 명예와 부를 누리는 오늘날 병역특례는 과잉의 혜택이요, 보통사람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마이너스 정책이다. 병역의무가 진정 신성한 것이라면 더더욱 철폐해야 맞다. 병역특례가 존재하는 한 어떠한 말로 포장하더라도 군대는 돈없고 빽없어서 황금같은 젊은 시절을 희생해야 하는 징벌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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