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새벽 3시. 문자가 들어왔다. 메사추세츠 윌밍턴이 배달지가 맞다는 확인이다. 발송 사무실로 가 서류를 받았다. 서류의 주소는 노스캐롤라이나 체리포인트로 돼있다. 페북 그룹 게시판에서는 빌링 주소와 발송 주소가 다른 경우라 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히마찰 왼쪽에는 다른 프라임 트럭이 서 있다. 같은 인터내셔널 제품이지만 풀사이즈 콘도다. 그 운전자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다. 결국 내가 먼저 가는구만. 빈 트레일러를 내려 놓고 운반할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여기서 배달지까지는 약 950마일, 19시간 운전거리다. 아무리 빨리 가도 내일 오후 2시 정도에나 도착 가능하다. 더 늦을 수도 있다. 핏스톤 터미널까지 거리를 계산해봤다. 약 600마일. 12시간 거리다. 트럭은 시간 계산할 때 평균 시속을 50마일로 잡는다. 히마찰의 최고 속도는 62마일. 내리막에서는 76마일까지도 나온다. (그 이상은 달려보지 못 했다. 78마일을 넘으면 경고 메시지가 온다고 들었다. 게다가 미친 짓이다.) 오르막에서는 15마일로 떨어지기도 한다. 도시 인근이나 공사구간에서는 55마일, 때로는 45마일 제한속도다. 때론 교통정체도 따른다.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50마일이 현실적인 속도다.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은 11시간. 나는 무리 하기로 했다.
평소와 달리 운전했다. 히마찰이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55마일 구간에서도 62마일로 달렸다. 내리막에서는 가속도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 결과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 나왔다. 히마찰이 다른 차량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일반 승용차를. 1차선으로 달리는 시간도 역대 최고다. 히마찰도 놀랐을 것이다. 내가 다른 차량을 추월할 수 있다니. 그래 히마찰 원래 너는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소프트웨어로 속도가 제한됐을 뿐이야. 히마찰이 나중에 중고로 팔리면 속도 제한도 해제된다. 그때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오르막 출력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이 모델이 힘이 약한 것인지, 뭔가 히마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글렌에게 문자를 보냈다. 핏스톤 터미널에 트레일러 내려 놓겠다. 알았다 언제까지 올 수 있냐? 400마일 남았고, 오후 6시 전후로 갈 수 있다. 오케이. 와라.
70번 도로를 따라 인디애나에서 출발해 오하이로를 거쳐 웨스트 버지니아에 들어서자 산악지형이 시작됐다. 얼마 후 펜실베이니아에 접어 들었다. 핏스톤까지는 300마일이 넘게 남았다. 산악 지형으로 가야 할 거리가 그만큼 남았다는 뜻이다. 11시간 내 도착은 틀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펜실베이니아는 산악 지형으로 인해 맑은 날에도 어느 구간에서는 꼭 비가 내렸다. 오늘 같이 흐린 날에는 말할 나위 없다. 지독한 폭우였다. 라디오와 휴대폰으로 홍수 경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앞이 안 보였다. 그래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트럭은 일반 승용차보다 시야가 높아서 좋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길 가에 트럭을 세우고 생수병에 소변을 봤다. 아까 오하이오에서 주유를 위해 트럭을 세운 이후 두 번째 정차다.
목적지 18마일을 남겨 두고 11시간이 끝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서 트럭을 멈추자 숫자가 0이 됐다. 신기한 일이다. 어찌 이리 딱 맞았을까.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할 때다. 오프 듀티 드라이빙. 하루에 1시간 쓸 수 있다. 업무에 사용하면 안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사용은 가능하다.
핏스톤 터미널 거의 다 와서 전화가 왔다. 뭐야 운전 중에. 스피커폰으로 받았더니 야간 디스패처다. 잘 안 들린다. 잠시만 기다려라. 다 왔다. 터미널 입구에 도착해 트럭을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터미널 말고 근처 파일럿 트럭스탑으로 가라는 얘기다. 뭐여. 지금 도착했는데. 리파워 할 트럭이 터미널로 못 온다고 했다. 나도 시간 다 돼서 오프 듀티 드라이빙 중이다. 거기까지 못 가냐? 가깝다. 시간을 보니 20분 조금 넘게 사용했다. 가능할 것 같다. 알았다. 거기서 교대하겠다. 트럭을 돌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거리가 2마일 이내라 오프듀티가 풀리지 않았다. 트럭스탑은 좁고 트럭들로 가득했다. 전화를 걸었다. 후안(Juan) 어디에 있냐? 나 트럭스탑에 막 도착했다. 난 아직이다. 2시간 거리에 있다. 뭐여? 그럼 터미널로 오지 왜 여기서 보자고 했냐? 내 트럭이 터미널로 가면 엔진오일을 갈아야 한다.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운행 못 할 수도 있다. 야 지금 여기 꽉 차서 주차할 곳도 없다. 그리고 나 집에 가야 한다. 그러냐 그럼 터미널에 내려놔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런 진작에 그러지. 바쁜 사람을 더 일 시키네.
터미널로 돌아갔다. 인바운드 베이에서 점검 요원이 묻는다. 이 트레일러 내려 놓을거냐? 킵 할거냐? 내려놓을 거다. 서류는 어디다 주면 되냐? 나한테 달라. 트레일러는 어디다 내려 놓을까? 빈 곳 있으면 내려 놔라.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핏스톤 터미널은 스프링필드는 말할 것도 없고, 솔트레이크시티 보다도 작다. 이리저리 돌다 간신히 한 자리를 발견했다.
거의 한 달만의 귀환이다. 히마찰을 몰고 처음 이 곳을 나섰을 때와 지금 돌아온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됐다. 한 달간의 혹독한 실전은 나를 단련시켰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현장에서 살아 남았다. 한 달 전이었다면 혼자 못 댔을 자리에 오늘은 혼자서 주차했다. 어제 컨펌 기다리며 예전에 본 후진 강의 동영상을 다시 봤다. 네이슨도 내게 가르쳤던 내용이다. 그때는 이해 안 됐던 부분을 이제는 알겠다. 주차 공간에서 왼쪽으로 꺾어 직선을 만든 후 후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아까 주유소와 지금 터미널에서 사용했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다.
밥테일 주차 할 자리도 한 곳 남아 있었다.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었다. 뉴욕행 버스 시간을 알아봤다. 8시가 막차인데 시간이 임박해 예매가 안 됐다. 출발지에서 다음 정류장인 스크랜튼을 살펴봤다. 8시30분 출발인데 예매가 가능했다. 얼른 예매하고 셔틀버스에 전화했다. 나 스크랜튼 버스터미널에 가야 한다. 언제 가능하냐? 8시에 가능하다. 30~40분 정도 걸릴거다. 더 빨리 안 되냐? 셔틀버스 기사에게 연락할 수 없냐? 셔틀버스 기사는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까지 일하고 그 이후에는 경비인 내가 운전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여기 시스템이 이해가 됐다. 왜 지금까지 맨날 그 새벽에 나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오갔는지. 알겠다. 나는 우버 앱을 켰다. 주변의 차량이 표시됐다. 오는데 7분 정도 걸리고 우버 X 요금은 22달러 정도. 나쁘지 않다. 트럭 청소도 못 하고 필요한 짐만 급하게 챙겼다. 원래는 터미널에서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고 여유롭게 출발할 계획이었다. 막차가 이렇게 일찍 끊어지는 줄 몰랐다. 게다가 쓸데 없이 트럭스탑 다녀오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차량은 벤츠 SUV였다. 원래는 럭셔리급이지만 콜이 없으면 가장 싼 X급 요금에도 응한다. 나로서야 원하는 장소까지만 가면 되니까 상관 없다. 운전사는 자기는 외곽에서만 일한다 했다. 시내에는 잘 안 들어간다고. 뉴욕과 달리 이곳 같은 소도시에서는 별 다른 라이센스 없이 우버 운전을 할 수 있다. 12시간 일하고 6시간 쉬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옐로캡 운전사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우버를 이용하지 않았다. 트럭을 하면서 네이슨과 몇 번 우버를 이용했다. 나 혼자서도 이번이 두 번째다. 우버 때문에 옐로캡을 그만 두고 트럭을 시작했는데 정작 우버의 도움을 받는다. 솔직히 말해 우버가 편리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소도시에서는 특히 그렇다. 승객들이 이런 편리함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버스는 예정시간에 왔다. 지금까지와 달리 최신형 모델이었다. 뚱보 운전사는 이 버스는 뉴욕이 아니라 애틀란틱시티로 간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러면 더 좋죠라며 받아줬다. 교통 흐름은 좋았다. 11시 도착 예정 시간보다 15분 가량이나 앞당겨 뉴욕 포트 오서리티 터미널에 도착했다. 장원이형이 마침 근처에서 일하던 중이라 집까지 나를 태워줬다. 이렇게 집에 왔다.
아뿔싸 ID를 놓고 왔네
집에 가는 과정부터 숨가빴던 탓일까? 계속 정신이 없고 하나씩 놓친다. 가져가려고 샀던 물건을 안 갖고 온 것은 그나마 낫다. 프라임 ID를 집에 두고 왔다. 회사 건물에 들어가는 신분증일 뿐 아니라 트럭 연료를 구입하는 카드이기도 하다. 눈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재발급이 가능했다. 카드 번호는 바뀌었다.
배달 오더가 들어왔다. 여유 있는 일정이라 생각했다. 아침을 공짜로 먹었다. 마침 금요일 안전 모임이 있는 날이다. 중간에 일어나 샤워와 빨래를 했다. 핏스톤 터미널은 더 쌌다. 빨래, 건조 각 50센트씩. 1달러면 해결된다. 트레일러 샵에 가서 빈 트레일러를 배정 받았다. 야드에서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오전 시간이 다 갔다. 트레일러 내부가 더러웠다. 세척(洗滌)을 하고 가기로 했다. 이곳은 wash bay가 한 개 뿐이다. 앞 트럭이 세차할 동안 기다렸다. 오래 걸렸다. 아웃 바운드 베이도 오래 걸렸다. 스프링필드 본사만큼 일처리가 빠르지 않다.
발송처로 향하다 보니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가 오프 듀티 드라이빙 중이라는 것이다. 집에 가기 전 마지막 운전 상태가 오프 듀티 드라이빙이었다.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사전 차량 점검 과정도 잊어 버렸다. 엉망이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것인지.
발송처에는 3시 경에 도착했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산길인데다 제한속도 45마일 구간이 길었다. 드랍 앤 훅인줄 알았는데 라이브 로딩이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짐 싣고 나오니 7시가 넘었다. 여유 있는 일정은 이제 빠듯한 일정으로 바뀌었다. 두어 시간 더 달려야 하지만 9시 쯤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멈췄다. 다행히 한 자리가 있다. 지금은 급히 갈 때가 아니라 숨을 고를 때다. 뭔가 놓치고 있다. 그게 뭘까?
집에서 가져온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었다. 전자레인지에 지었던 밥에 비해 특별히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편한데다 시간도 절약된다. 새로 지은 밥인데다 3분 카레와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맛있다. 개스 버너와 코펠은 짐이 많아 이번에 못 가져왔다.
샤워 걱정 끝
종일 부지런히 달렸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포트밀(Fort Mill) 휴게소에서 쉬어 간다. 목적지까지는 90마일 남았다. 밥을 해먹는 입장에서는 주차하기 편하고, 화장실 깨끗하고, 물 쓰기 편한 고속도로 휴게소가 좋다. 모든 휴게소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규모가 있고 제대로 관리되는 경우에 한한다.
그저께 회사 메시지를 받았다. 프라임 드라이버는 러브스 트럭스탑 플래티늄 회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시행하다 중단됐는데 다시 연장한 모양이다. 플래티늄 회원은 무슨 혜택이 있나 봤더니 주유 1갤런당 3점씩 포인트가 쌓인다. 이 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샤워와 음료수 리필이 무제한이란다. 지금껏 샤워 포인트 쌓느라 힘들었다. 이제 필요하면 언제든 샤워할 수 있다. 오늘 주유 하면서 텀블러에 커피를 리필해 마셨다. 탄산 음료는 안 마시니 음료수래야 커피다. 이번 계약 때문인지 최근에는 회사에서 지정해주는 주유소가 거의 러브스다.
두 번째 밥을 지어 먹었다. 야채와 살라미를 넣은 ‘야살밥’이다. 어제보다 상태가 좋았다. 물을 조금 더 넣었고 평지여서 그런 것 같다. 어제 펜실베이니아 휴게소는 고지대였다.
내일은 장을 봐야 할텐데. 샌드위치 재료가 떨어졌다. 빵, 야채, 샐러드가 필요하다. 쌀도 한번 먹을 분량만 남았다.
트럭 운전을 하면서 일상 모든 용품의 운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트럭커를 거치지 않은 물건이 거의 없다. 세상이 거대한 시스템으로 연결됐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책으로 쓴 사람이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배송 추적(원제는 Door to Door)의 저자 에드워드 홈스다. 아침에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지구 몇 바퀴를 돌 정도의 운송과정을 거친다. 알루미늄 캔음료도 그렇다. 복잡한 부품이 들어가는 아이폰의 경우는 몇 배 더 먼 거리를 이동한다. 원재료를 채취하기 위해 사용된 장비의 기원을 따지거나 사용된 연료의 시추 및 가공과정까지 따진다면 도무지 끝이 없다. 사소한 일상품 하나가 사실상 온세상과 연결돼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현대의 운송시스템이다. 나도 그 운송시스템의 한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 이 구조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 저자는 자율주행차와 3D 프린터 등 기술 발전이 미칠 영향을 주목한다. 또한 계속 크게, 빠르게, 많이 소비하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자원을 낭비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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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공연히 쉬는 날?
일부러 이러는 것인가?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일요일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 후 7시 30분 경 출발했다. 9시가 조금 넘어 배달지에 도착했다. 구글맵 위성사진으로 미리 확인하고 갔는데도 트럭 출입구가 아닌 줄 알았다. 일반 차량이나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트레일러를 끌고 지나기에는 양쪽으로 불과 몇 센티미터의 여유가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
경비가 서류를 보더니 오늘 접수 작업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서류를 내밀며 필요 사항을 적으라 했다. 인근 트럭스탑에 가 있으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종일 전화는 오지 않았다. 디스패처에게 연락했지만 세일즈에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왔다. 그 말은 오늘은 종쳤다는 뜻이다. 일요일이라 어느 쪽도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빨라야 내일 새벽에나 연락이 올 것이다. 지난 주에도 간단한 확인을 못 해 하루를 날려먹게 하더니.
일요일에 쉬는 것에 불만은 없다. 다만 서 있는 동안은 벌이가 안 되니 문제다. 시간으로 급여(給與)를 받으면 모르겠으나 거리로 돈을 받는다. 하루 400~500 마일은 꾸준히 달려야 기본 벌이가 된다. 이번 화물은 실을 때도 4시간이 넘게 걸리더니 내릴 때는 하루가 더 걸릴 참이다. 내가 초짜라서 이런 거지 같은 화물을 주는 게 아닌 지 의심된다.
처음에는 1마일 거리의 파일럿 트럭스탑으로 갔다. 자리는 있었지만 무척 좁았다. GPS에서는 90대 규모로 나와 있어 공간이 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리하면 주차도 가능했지만 그냥 나왔다. 5마일 떨어진 러브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그렇다. 무료 샤워. 거기다 무료 리필. 이런 혜택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나. 거기다 74대 규모로 나와 있는데 실제 공간은 파일럿 보다 두 배는 넓었다. 널널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알리닥 후진은 아직 정확한 포인트 잡기가 어려웠다. 다른 공간에 직선 후진으로 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아예 근처 월마트를 들렀다 올 것을 그랬다. 아침에는 대체로 한가해 주차장에 트럭을 세울 곳이 있다. 이 동네 마트는 24시간 영업은 없고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닫았다.
샤워 후 커피 리필, 핫독과 함께 스크류 드라이버 세트를 샀다. 적립 포인트로 구입할 수 있었다. 스크류 드라이버는 왼쪽 후드 미러가 덜렁 거리고 방향이 종종 틀어져 육각별 모양 나사를 조이려고 샀다. 결론은 소용 없었다. 나중에 터미널 가면 트랙터 샵에다 얘기해야겠다.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햇반과 컵라면이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시간이 남으니 책도 읽고 드라마도 한 편 봤다.
배송추적 : 이동하는 모든 것의 인문학
⅔ 가량 읽었다. 운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됐다. 큰 숲을 보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라 어려운 주제를 심층 취재 기사처럼 쉽게 풀었다.
Door to Door: The Magnificent, Maddening, Mysterious World of Transportation https://www.amazon.com/…/0…/ref=cm_sw_r_cp_apa_Sj4zBb52C16E4
Orange is the new black
넷플릭스 드라마다. 시즌6 방송 중인데 첫 시즌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봤다. 영어 자막이 나오는데 안 보고 그냥 듣는 편이 더 이해가 잘 됐다. 영어 자막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방해됐다. 소리로 들으면 실시간 이해가 되는데 영어 자막은 번역하려는 습관 때문에 더 느리다. 정 안 들리는 부분만 무슨 얘긴지 확인할 때와 정확한 표현을 익힐 필요가 있을 때만 자막을 활용하는 편이 낫겠다.
월마트에서 마음껏 장을 보다
오전 10시 경 전화가 왔다. 물건 내릴 준비가 됐으니 오라는 얘기다. 지난 번 들어갔던 입구를 지나쳐 두 번째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했다. 3번 닥에 대면 된다고. 리퍼 연료가 ⅓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 트럭스탑에서 가득 채우고 발송처로 갔다. 전체적으로 좁지만 이쪽은 더 좁았다. 예전 같았으면 ‘미션 임파서블이야’ 하며 포기했을 법한 장소다. 그런데 이제는 겁이 나지 않는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다른 트럭이 없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졌다. 옆 닥도 비어 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끝내는 해냈다. 나중에 야드 자키가 와서 내 왼쪽 닥에 트레일러를 댔다. 야드 자키도 한 번에 못 대고 몇 번 왔다갔다한 공간이다.
가장 가까운 트럭세차장으로 갔다. 고기 벌건 핏물이 줄줄 흘러 세척을 꼭 해야 했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는데 남쪽이다. 세차장과는 반대 방향이다. 진입로 입구의 안내판이 너무 작아 그냥 지나쳤다. 유턴할 공간도 없다. 당황하지 않고 계속 가서 다른 도로를 우회(迂廻)해 다시 돌아왔다. 무슨 화학공장이었다. 식품이나 화장품, 의약품이 아닌 것은 처음 싣는다. 이곳은 아예 닥이 하나 뿐이다. 쉽지 않은 공간인데 좀 전보다 수월하게 댔다. 일리노이 주 오로라의 전자 공장으로 가는 화물이다. 전자 제품 공정에 필요한 화학약품인 모양이다. 10도 가변에 설정온도는 60도다. 이런 경우 리퍼가 잠깐씩만 작동한다. 마지막 배달한 화물은 리퍼가 26도 설정에 24시간 돌아갔다. 하루종일 소음(騷音)에 시달렸다.
모레 오전 7시 30분 배달이고 총 거리는 900마일 가량이다. 오늘 300마일 정도는 가야 한다. 내일 500마일 정도를 소화하고 당일 아침에 100마일 이내를 달리면 적당하다. 오늘은 밤 9시 정도까지는 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 시간이면 휴게소든 트럭스탑이든 자리가 없을 확률이 크다. 월마트를 이용할 타임이다. 마침 장도 봐야하고 주차장에서 밤을 샌 후 아침에 떠나면 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다시 올라갔다. 40번 도로로 테네시 주 스모키 마운틴 지역을 통과했다. 전에 네이슨과 와본 길인데 그때는 밤인데다 악천후로 고생했던 기억만 난다. 오늘은 해질 무렵이라 경치를 구경하며 왔다. 고개를 넘자마자 나오는 도시가 뉴포트다. 뉴포트 월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이다. 트럭을 세우고 월마트에서 장을 봤다. 주로 식품을 샀다. 얼마나 많이 샀는지 역대 최고액인 92 달러가 나왔다. 운반할 걱정 없어 마음껏 카트에 담은 결과다. 그나마 냉장고가 작아 자제한 것이다. 주차장에는 트럭 철야주차 금지라는 푯말이 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트럭도 한 대 있었다. 매장에서 멀리 떨어져 일반 승용차가 없는 쪽에다 주차했으니 그리 큰 민폐는 아니다. 거기다 날이 밝으면 떠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런 작전은 괜찮아 보인다.
어제 하루 일을 못했지만 대신 책을 읽을 시간이 나서 좋았다. 그 책은 내게 중요한 메시지 몇 가지를 던졌다. 사람이 트럭 운전을 할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점. 자동차를 이용하기 위해 차를 꼭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다음 달이면 새로운 차를 마련해야 하는데 구입비와 유지비를 버스, 택시, 자전거, 걷기 등 다른 대안과 따져봐야 겠다. 90% 이상의 시간을 길에 세워두는 자동차가 과연 경제적인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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