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도모스티 특집기사
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러시아 일간 베도모스티가 18일 2면과 3면, 5면을 할애해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해 관심을 끈다.
베도모스티의 나탈리야 수다코바 기자는 ‘미래의 물결’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이 두차례 동하계 올림픽을 통해 가져온 성과를 시작으로 경제원조 수혜국(受惠國)에서 공여국(供與國)으로 전환된 최초의 국가, 5년 연속 블룸버그 혁신지수 1위, K화장품과 K의료, K관광 등 주요 분야에 걸쳐 심층 취재한 내용을 소개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
“평창의 활강로는 눈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로 흰색이었지만 아이스링크와 봅슬레이 활강로 사이에 지구상에서 가장 어두운 색깔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올림픽 시설들 중간에 감추어져 있으며 각진 블랙홀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것은 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이 설계한 현대 자동차의 임시 전시관이다”라고 영국의 가디언 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올림픽 개최 장소를 소개하는 글에서 기록했다. 이 현대 자동차의 전시관은 외부가 탄소나노튜브 신소재로 덮여 있어, 일상적인 도시 풍경 중간에 생겨난 먼 우주공간에서 나오는 것 같은 시각적 착각을 갖게 했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최초로 5G 표준의 모바일 네트워크가 가동을 시작했고 무인 버스가 주행했으며 피겨선수들의 연기를 360도 영상으로 볼 수도 있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회상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기술적인 성과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면, 30년 전인 1988년에 가졌던 서울 하계올림픽에서는 경제적인 성장과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1988년 9월 17일 서울에서는 24회 하계올림픽이 성대하게 개막되었다. 이 올림픽은 한국 자체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아시아에서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이었다. 이 두 번을 제외한 20세기의 모든 하계 올림픽은 서방국가들에서 개최되었다. 한국 올림픽은 당시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데이터에 따르면 1988년 올림픽에는 159개국 8391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메가 이벤트와 메가 앰비션’이라는 책의 저자들 중 한 사람은 한국이 1988년 올림픽에서 3억 3천5백만 달러의 흑자를 보았지만 이 하계올림픽의 가장 최대의 성과는 한국인들이 보는 가운데 국가 이미지가 변화된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53년 한국전이 끝난 후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1960년경 한국 국민의 평균 연 소득은 라이베리아와 과테말라보다 작은 액수인 158달러였다. 1988년 하계올림픽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중요한 공공 이벤트가 되었다. 영국의 언론인 마이클 브린은 ‘한국, 한국인(The New Koreans)’이라는 책에서 “한국인들은 이제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되었고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당시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한국은 학생 시위와 그들에게 최루탄(催淚彈)을 쏘아 해산시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나라였다”고 썼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88년 한국의 GDP는 1970억 달러(현재 가격 기준)였다. 거의 30년이 흐른 2017년 GDP는 이미 그 8배에 달하는 1조5천억 달러였다.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의 시기는 종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국가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개혁의 결과로 가능했다. 1962년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고 이 후로 30년간 한국의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했고 경제구조도 급격히 변화했다. ‘한국. 국가 연구’의 저자 안드레아 매틀스 사바다와 윌리엄 쇼의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실제 GNP는 1962년의 23억 달러에서 1989년 2040억 달러로 평균적으로 연간 8%이상 증가했다. 또한 1인당 연간 국민 소득도 1962년 87달러에서 1989년 4830달러로 증가했다. 2009년 한국은 OECD의 경제원조 수혜국(受惠國)에서 공여국(供與國)으로 전환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고 맥킨지 보고서는 명시하고 있다.
성장의 황금시대
2018년 한국은 5년째 연속 블룸버그 혁신 지수 1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한 국가를 R&D 투자비용, 하이테크 국영기업의 집중과 같은 7개의 범주에 따라 평가한다. 한국 내 가장 큰 대기업이며 세계적인 시가 총액으로 애플 이후 2번째를 차지하는 삼성 전자는 2000년대에 IBM 다음으로 가장 많은 미국 특허를 얻었다. 삼성전자의 제품은 반도체, 스마트폰, 디지털 멀티미디어 장비로, 이에 힘입어 국가 지원을 받아 한국 공급업체와 협력업체들의 생태계(生態界)가 탄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30년간 한국은 서구 선진국들이 한 세기에 걸쳐서 걸어온 길을 통과했다고 한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정성철 원장은 진단했다. 그는 자신의 ‘혁신, 경쟁력, 성장: 한국의 경험’이라는 논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부의 대외 개발 전략, 잘 교육받고 훈련된 노동력과 기술 혁신이 이른바 힌국의 기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2017년 결산 결과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29743달러에 달했다. 한국은 2018년 세계은행의 사업하기 쉬운 나라 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이런 모든 것으로 인해 투자자 적극성, 생산, 커뮤니케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유네스코의 데이타에 따르면 현재 R&D 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2%로 세계 2대 투자 선두 국가인 미국(2.7%), 일본(3.2%)를 앞질러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에는 과학 연구 및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 2개 밖에 없었다. 한국전 종전 직후에 설립된 한국 국방과학 연구소와 1959년 설립된 한국 원자력연구원이 그것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과학 종사자와 엔지니어가 총 5천명 이하였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963년 R&D 투자비용은 950만 달러 이하였다.
1996-2015년까지 한국의 R&D 투자비용은 1996년 GDP의 2.3%에서 2016년 4.2%로 총 88.5% 증가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같은 기간 동안 14.4% 증가율을 보이는데 그쳤다(1996년 2.44%, 2016년 2.7%). 다수의 연구자들은 한국의 구조적 변화가 해외 시장을 겨냥해서 국가를 개방하고자 한 정치적 개혁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의 수출지향적 정책은 한국이 성공을 거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 최대 10대 수출국에 들어가고 있으며, GDP 대비 수출이 갖는 비율은 1995년 25.9%에서 2012년 56.3%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세계은행이 유럽 경제 모델과 다른 국가들의 모델을 비교하기 위해 작성한 ‘성장의 황금시대’라는 보고서에 나오는 데이타이다.
한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안나마리아 산타크루 경제전문가는 혁신투자 장려 정책이 사업 환경의 개선과 함께 한국이 대외무역의 높은 수준을 이룰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63개 재벌에 소속된 수백 개의 대기업이라고 맥킨지 보고서는 쓰고 있다. 이 재벌 대기업들은 1960년대 국가 산업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국가주도 자본주의 프로그램에 따라 정부가 공공 프로젝트를 담당할 기업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외국 차환 및 한국은행 발행자금을 지원했다. 1990년경에는 이 기업들이 재정적으로 독립적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국가 지원을 이용했고 특히 세제 감면 혜택을 많이 받았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내 30대 대기업(현대, 삼성, LG 전자 등이 여기에 속함)이 한국 기업 자산의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한국 국내 시장 전체 내수 판매액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경제
인터내셔널 데이타 코퍼레이션(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 IDC)에 따르면 한국의 삼성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판매기업이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전체 중 5대 중 한 대꼴로 삼성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2018년 3사분기에만 삼성은 722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이 숫자는 태국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수이다. 삼성은 1969년 설립이후 사실상 곧바로 수출을 시작했으며 1978년에는 미국에 최초의 해외 사무소를 개소했다. 현재 전자제품은(삼성과 LG 전자가 대표로, 타깃 시장의 65%가 가전제품 시장) 주요 한국 수출품목이며 연간 1억 6300만 달러 액수를 벌어들이고 있다. 전자제품 수출에서 한국은 현재 중국, 싱가포르, 타이완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업계는 어떻게 해외 시장을 정복하고 있는가?
화장품
미국의 뷰티산업 잡지인 WWB지가 발표한 2017년 세계 화장품 기업 판매량 순위에서 한국의 최대 화장품 생산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은 샤넬과 LVMH사를 추월하여 7위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7년 최초로 세계 20대 화장품 제조판매 기업에 선정된 이후 10년 만에 7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이 기간동안 아모레의 판매규모는 4배 증가하여 6조6970억원(60억 달러)으로 성장했다.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아모레는 1990년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향수 브랜드인 롤리타 렘피카를 런칭했다. 10년이 지나 아모레는 뉴욕에 자체 브랜드 중의 하나인 설화수라는 이름의 뷰티 살롱을 개소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의 소유주인 서경배 회장은 포브스의 계산에 의하면 36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로서 뷰티산업과 화장품이 활발히 발전함에 따라 수많은 뷰티블로거들이 탄생하여 그 구독자층 규모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 한국과 세계 언론들은 이 중 1위로 유투브에서 480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비디오 블로거 Pony를 손꼽고 있으며, 그녀가 한국어 유투브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K-뷰티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서구 브랜드들도 끊임없이 한국 브랜드로부터 영감을 얻고자 모색하면서 서구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한국형 뷰티를 적용하고자 애쓰고 있다고 영국 시장분석 기관인 민텔 사의 뷰티산업부문 수석 분석가 장 젠이 ‘밝은 미래: 한국이 세계 10대 뷰티 시장에 들어가다’라는 보고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민텔 사의 데이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세계 10대 뷰티시장에 포함되고 있으며 2017년 내수시장 규모가 130억 달러에 달했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종합성장률 (CARG)은 5.8%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 화장품 산업의 주요 소비 시장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화장품 산업 제품 전체량의 36.5%를 구매하고 있다.
의료
한국은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매년 1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고 한국 보건복지부가 2018년 결산 자료에서 보고하고 있다. 한국 내에는 1709개소의 등록된 병원과 의원, 1413개소의 의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허가받은 업체가 있다. 2017년 한국의 의료관광 수입은 2009년보다 15.7배 증가했다고 보건복지부는 밝히고 있다.
2017년 12월 한국 보건복지부는 보건산업을 최고 고속성장 혁신 분야 중 하나로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혁신 프로그램에는 제약, 의료장비, 화장품의 세 분야가 포함되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기업지원, 혁신 바이오약품 도입, 수출 지행 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이 계획은 R&D, 일자리 창출, 수출 지원 및 제도 개선의 주요 4개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은 보건비용 증가에서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총 보건비용의 매년 성장률은 10.2%, 약품 비용 성장은 12.7%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매우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먼저 비즈니스 과정을 생각하고 고안한 다음, 그 후에야 건물을 세운다고 멜릭구세이노프 전임 모스크바 보건단체 연구소장은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콜코보 의료 클러스터에 병원을 세우는, 분당 서울대병원은 전혀 종이로 된 서류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스마트 병원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개원하기 전까지 2년간 IT 시스템을 구축했다.
관광
1988년까지 한국인의 해외여행과 외국인의 한국 입국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후에야 가능했다. 한국에는 휴가와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거의 전무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관광 산업은 주로 내국인 관광객들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 침체기(沈滯期)를 제외하면 한국의 관광 수입은 매우 적었는데, 이는 다수의 내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2018년 결산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국하는 관광객의 수는 2620만 명이었다. 20년 전이었던 1988년에는 해외출국 관광객 수가 3백만에 불과했다고 한국관광공사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는 우선적으로 한국 문화가 국제적으로 전파되고 있고, 대형 스포츠 이벤트들이 연달아 개최된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2014년 아시안 게임,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다. 1988년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328만 명이었지만, 2018년은 2400만 명에 달하고 있다(2017년 대비 14.9% 증가). 107개국이 한국과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했고 러시아와는 2014년부터 60일간 관광 목적으로 무비자입국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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