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은 북한 비핵화의 길’ 러 전문가
“하노이회담 결과로 러시아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해졌다.”
북미간 하노이회담 이후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러시아 전문가가 지적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아시아전략선터장은 발다이클럽 통신 기고문에서 “북미문제에서 러시아는 외교적 해결 과정에 참가할 특별한 필요도 없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매우 실질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상황을 수정하기 위해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논의할 필요성이 무르익게 되었다. 북미간 협상과정이 완전히 추진력을 잃고 중단된다 하더라도 2017년의 ‘화염과 분노’ 상태로 회귀(回歸)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편집자 주>
올해 2월 27-28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양측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진전을 보이고 전쟁 상태 종식(終熄)에 대한 합의에 이르며, 대북제재 일부도 해제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들은 아쉽게도 기대로만 끝났다. 양측이 엉망이 되어버린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웃는 낯을 보이며 좋은 모양새를 갖추려고 노력했지만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명백했고 예정보다 더 빨리 조기 종료되었다.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와 향후 전망에 대해 모스크바 국제관계대 교수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아시아전략 센터 소장의 의견을 들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소장은 베트남 현지에서 이 정상회담의 진행 상황을 지켜본 바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이유
협상에 참가한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나온 정보에 근거해 볼 때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준비부족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실무 접촉 중 양측의 입장 차이 간격을 좁히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평양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 측 협상 담당자들은 충분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고 심지어 ‘핵문제’를 논의할 권한조차 없었다. 그저 자기들의 수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미국 대통령에게 주는 “큰 선물”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말만 했다.
여기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뜻이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대로 여기는 볼턴 미국가안보보좌관이 협상을 교착상태(膠着狀態)로 몰아넣기에 좋은 기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북한 측에서 명확한 설명을 내어놓지 못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미국은 요구 조건을 강화하고, 비핵화와 그에 대한 보상조치에서 이미 거의 부인했었던 “전부가 아니면 제로”라는 패러다임으로 돌아가 버렸다. 미국은 상호 양보 과정은 동시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는 묵시적인 이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협상의 기준 조건 자체를 높여버렸다.
최종적인 순간에 “비핵화”라는 개념에 화학 및 생물학 무기의 폐기까지 포함한 것은 상당히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영변 핵 시설 외곽에 있다는 “비밀 우라늄 농축 공장” 문제도 던져놓았다. 미국은 다시금 해결이 쉽지 않는 “북한의 모든 핵활동 신고”와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 문제를 꺼내들었다. 이러한 입장은 협상을 중단하고자하는 훼방꾼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미국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입장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의식한 발언일 확률이 많고, 더 나아가 북한에게서 최대의 양보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렇게까지 양보할 용의가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전에 언급했던 영변 핵시설 폐쇄 용의에 대한 약속 하나만을 가지고 하노이에 왔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측은 최소한 실무 수준에서 ‘영변 핵시설’이 포함하는 것이 1980년대 말부터 플루토늄을 생산해오던 원자로와 연료봉 처리 시설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심분리기 천 개가 가동하는 우라늄 농축 농장과 기타 시설들(이 시설들은 적어도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가 있다고 추정됨)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영변 핵시설을 낙후(落後)되었고 특별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 내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기술적인 점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미국 전문가들까지도, 영변 핵 시설이야 말로 북한 핵 프로그램의 핵심 시설이고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그와 같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 것을 매우 귀중한 가치가 있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 무기용 핵분열 물질 생산 능력, 즉 공격용 핵무기를 증가시킬 기회를 무력화 시키거나 상당히 제한시킬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나 북한의 준비와 용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북한이 약속한 것과 약속하지 않은 것
북한 측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로 제재 완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왜냐하면 유엔 안보리 결정안은 북한 핵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북한이 제시한 것과 같은 긍정적인 조치가 있을 경우 이에 합당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상당히 많은 것을 했다. 핵 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잠정 중지했고, 핵 실험장을 봉쇄 또는 폐기까지 했으며 미사일 발사장 해체 작업까지 시작했다. 또한 미국에게 요구한 보상 조치 목록에서 그들은 제재해제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는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절실한 문제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무 차원에서 서로 충분히 논의한 ‘종전선언’과 정치적 유대 수준 개선 문제 해결이 이미 손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언급한 2016년 이후 시행된 모든 제재를 해제해달라는 요구는 너무나 성급하고 끈질긴 것이었다. 북한이 그들 편에서 위반 사항이 있을 경우 제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까지도 동의한 것을 보면 단계적으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와 같이 고집스러운 북한의 주장을 보고 “제재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근거없는 결론을 내렸고, 심지어 반대로 이를 강화해야 한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제기한 제재 완화 제안을 미국이 봉쇄해버렸는데, 이제는 미국은 아예 제재 완화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양측이 계속해서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 및 폼페이오 장관과 협의한 후 말한 그와 같은 강경한 입장은 북한으로서는 뜻밖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북한은 최대한 ‘휴지기(休止期)’를 갖고 강경한 대응을 삼갔다. 하노이 제2차정상회담의 결렬 후 처음 몇 주간 동안 북한 정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삼가고 협상 채널을 계속 열어놓은 채로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3주 후에야 김정은이 신임하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 수준의 공식 논평을 내놓았다. 최선희 부상의 논평은 북한은 미국이 제시한 비핵화 조건에서는 미국과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며, 조만간 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때쯤 미국 언론과 정가에서는 북한을 불신하는 선동(煽動)이 시작되었다. 특히 꼭 이 순간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장에서 특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보도가 다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작업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하겠다고만 약속했었다. 우라늄 농축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게다가 천연 원료를 기초로 한 농축 우라늄은 북한으로서는 중요한 경쟁력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미래의 전력 발전 프로그램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세
미국의 심부, 즉 행정부와 국무부 기타 부서들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단절시키고 북한 고립 및 대북 압박 노선을 계속하고자 하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협상을 위한 문은 아직도 열려있다. 현재로서는 양측이 허풍을 떨면서 절망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토대 위에서 상호 양보 협상 과정을 진전시키기 위한 것일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미국 측은 그러한 접근 방식은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폼페이오 국무 장관이 언론에서 “올바른 순서를 찾을” 필요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것은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의심하게 만든다. 모두가 다른 방식과 길은 그냥 없는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가 2020년에 있는 대선 선거운동을 위해 대외정책에서 성공을 거두기 원한다면, 그는 지금 있는 열려진 길을 따라 나갈 수밖에 없다. 아마도 트럼프는 아직까지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 같다. 여전히 북한을 적에서 파트너, 특히 반중국적 입장을 가진 미국의 파트너로 만들어서 동북아의 거대한 지정학적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 미국 국내 상황은 특별한 낙관주의(樂觀主義)를 갖기는 어렵게 만든다. 미국 내에서 북한에 대해 어떤 타협과 양보도 하기 원치 않는 세력들이 아주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트럼프가 자신의 뜻대로 결정을 해서 대외정책 성공의 성과를 내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한반도 사태는 이런 식으로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 갇힌 포로 신세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전망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까지 러시아는 거의 외교적 과정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러시아의 기본적 이해에 부합하는 외교적 문제 해결 과정의 발전을 환영하고 지지해왔다. 러시아가 외교적 문제 해결 과정에 참가할 특별한 필요도 없었다. 러시아의 참여없이도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이 진전되어 나갔고 모든 당사국들이 그 과정을 어떻게 진전시키는 것이 최선인지를 러시아와 협의하지 않아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매우 실질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 북러정상회담을 갖고 상황을 수정하기 위해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논의할 필요성이 무르익게 되었다. 협상과정이 완전히 추진력을 잃고 중단된다 하더라도 2017년의 “화염과 분노”의 상태로 회귀(回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 전문가들은 그러한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현상유지 상태, 즉 당사국들이 서로 화해하지 않는 입장을 유지하지만 더 이상의 악화는 없는 것이 본질적으로 러시아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상황이다. 그것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미사일 핵 실험을 중지했고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다른 면에서 보면 한국에서 시행되던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중단되었으며 남북 협력이 발전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앞으로 긍정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다. 물론 남북 경협 실행이 제재 유지로 인해 연기되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실제적인 상황은 하다못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상황이 호전되도록 러시아가 앞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아시아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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