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9시 26분, 피습 받아 총상 입어
1985년 에어 인디아 182 범인 5명 중 일인
써리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한 남성이 죽었는데, 이 남성은 1985년에 일어난 에어 인디아 폭파 사건 범인 중의 한 명으로 재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써리RCMP는 14일 오전 9시 26분에 뉴톤 지역인 128스트리트의 8200블록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총상을 입은 남성을 발견하고 구조요원과 함께 응급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남성은 결국 총상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얼마후 용의 차량이 82에비뉴의 12200블록에서 불에 전소된 것을 확인했다. 수사관은 이에 따라 용의자들과 또 범행 차량에서 옮겨 탄 도주 차량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다.
현재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함에 따라 살인사건합동수사대)(Integrated Homicide Investigation Team, IHIT)로 이관이 된 상태다.
그런데 이 총격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바로 1985년 6월 23일 몬트리올에서 출발해 런던을 거쳐 인도 뉴델리로 가던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의 용의자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던 리퓨다먼 싱 말릭(Ripudaman Singh Malik)이라고 그의 가족발로 주류 언론에 보도됐다.
폭파 사건은 1984년 델리에서 인디라 간디 당시 인도 수상이 시크교도 초병에 총격으로 사망하자, 다음날부터 4일간 인도 힌두교도들이 시크교도 2733명을 학살하면서 그 시작됐다. 해외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들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며 바바르 칼사라 부르는 시크 분리파 단체의 일원이 일으킨 폭탄 테러로 규정했었다.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말릭도 체포됐다. 그러나 다른 폭파범인 인더르짓 싱 르얏의 위증과 일부 증거 부족 그리고 당시 시크교도인 우잘 도산지 BC 전주수상 등의 개입에 의한 검찰으 부적절한 대응 등으로 결국 말릭은 무죄로 풀려났었다.
1985년에 탑승수속을 한 후 화물만 실고 탑승자가 탑승을 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이후 '비행기에 타지 못한 승객의 수하물을 다시 빼는 절차'가 이 사건으로 인해 시작됐다.
에어 인디아 폭발 사고로 승객 307명과 승무원 22명 등 총 329명이 숨졌다.
한편 이날 버나비에서도 오전 9시 45분에 노랜드 에비뉴와 로렐 스트리트의 빈 건물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
버나비RCMP는 희생자가 살해를 당한 것으로 보고 살인사건합동수사대에 사건을 이첩했다.
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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