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방 선거에서는 다수의 여성 무소속 후보들이 일으킨 ‘청록색 바람’이 화제가 된 바 있으며, 호주 국립사전연구센터(Australian National Dictionary Centre)는 이들을 상징한 색상인 ‘teal’을 ‘올해의 단어’(Australia's Word of the Year)로 선정했다. 사진은 시드니 북부, 노던비치 지역(Northern Beaches region)을 대표하는 맥켈러 지역구(Division of Mackellar)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연방의회에 입성한 소피 스캠스(Sophie Scamps) 박사. 사진 : Twitter / Sophie Scamps
‘Climate 200’의 후원을 받은 ‘청록색 무소속 후보들’(teal independents) 상징
선거홍보 자료들, 청록색으로 통일... 기존 정당-정치인에 맞선 ‘teal bath’ 바람
올해 호주 국내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로 지난 5월 치러진 연방선거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지난 2013년 총선 이후 2019년 선거까지 자유-국민 연립에 연속으로 패한 노동당은 새로운 지도자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을 준비, 보기 좋은 승리를 거두고 10여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올해 선거에서 노동당의 ‘압도적 승리’는 분명 주요 뉴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세간의 이목을 더 많이 끈 것은 올해 총선에서 만들어진 제3세력이었다. ‘청록색의 무소속’(teal independents)이라는 여성 후보들의 대거 등장이 그것이다. 물론 무소속 후보들이 많이 출마했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들이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청록색 물결’이라는 것 때문이다.
호주 자유당은 전통적으로 파란색을, 노동당을 빨간색을 정당 색깔로 채택해 오고 있다. 이에 맞선 이들이 청록색(teal)으로 무장하고 공격적인 선거캠페인으로 각 지역구에서 양대 정당의 주요 인사에게 쓰디 쓴 패배를 안겼으며, 해당 후보는 물론 주요 정당에도 상당한 충격을 던진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이들을 일컫는 용어로 ‘teal bath’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청록색을 사용한 것은, ‘Climate 200’의 후원을 받는 이들임을 상징한 것이다. ‘Climate 200’은 올해 선거를 기해 ‘기후정책을 발전시키고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을 보다 효율적으로 감소시키며 기후변화를 제한하려는 의지를 가진 선거 후보자에게 선거운동 자금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등장한 자발적 민간 기부 그룹이다. 이들은 기후문제뿐 아니라 성 평등 이슈를 정치적 의제로 내세워 특히 여성 유권자들을 파고들었고, 이들의 약진으로 14명의 ‘청록색 무소속’ 여성들이 연방 의회에 새로이 합류했다. 특히 이들의 활약 가운데 눈길을 끈 이는 선거 당시 집권여당인 자유-국민 연립 정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조시 프라이덴버그(Josh Frydenberg) 재무장관을 낙마시킨 소아신경 전문의 모니크 라이언(Monique Ryan) 박사였다. 빅토리아(Victoria) 주 쿠용 선거구(Division of Kooyong)에서 ‘Climate 200’의 후원을 받은 그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정치 거물을 집으로 돌려보내 가장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올해 연방선거에서 ‘청록색 무소속 후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를 인정, 호주국립대학교, 사전연구센터(Australian National Dictionary Centre. ANDC)는 ‘teal’을 ‘올해의 단어로’(Australia's Word of the Year)로 선정했다.
ANDC는 매년, 호주인들이 가장 많아 사용했거나 특정한 사회 분위기를 묘사한 용어를 ‘올해의 단어’로 소개하고 있다.
“언어 측면에서
아주 생산적인” 단어
‘청록색 후보’라는 레이블은 이들 후보와 지지자들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착용한 T셔츠 색깔에서 유래했지만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ANDC의 마크 그윈(Mark Gwynn) 선임연구원은 “올해의 단어 선정 과정에서 ‘teal’은 이전에 비해 쉬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 색깔은 개별 후보자(무소속)를 지칭한 명사로 사용되며 ‘청록색 후보’, ‘청록색 무소속’, ‘청록색 혁명’(teal revolution), ‘청록색 의석’(teal seat), ‘청록색 화산’ 또는 ‘청록색 물결’(teal wave) 등 수많은 합성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올해 선거에서는 ‘청록색의 무소속 후보들’(teal independents)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문화-언어적으로 다양한 신인 정치인이 등장했다. 사진은 올해 선거를 통해 연방 의회에 진출한 아시아계 및 원주민 첫 당선자들. 윗줄 왼쪽부터 Jacinta Price, Fatima Payman, Sally Sitou, Cassandra Fernando, Dai Le, Sam Lim, Jana Stewart, Marion Scrymgour, Michelle Ananda-Rajah씨.
이어 그윈 연구원은 이 후보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색깔보다 더 많은 것을 대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용어의 흥미로운 점은, ‘청록색’으로 불리는 많은 후보자들이 캠페인에서 이 색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그는 “올해 선거에서 성공한 ‘청록색’들이 의회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 상징적 용어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또 실제로 지속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후보에 오른 단어는...
사실 ‘teal’이라는 단어는 그윈 연구원이 말한 것처럼 2022년 내내 호주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유사하고 또 다양한 영어들 가운데서 가장 앞서 선택됐다.
지난 2년 사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은 팬데믹 사태와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자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것을 빗댄 용어였다.
지난해에는 전염병 사태 와중에서 정부의 늦어진 백신 출시를 빗대 야당 및 각계에서 사용한 ‘Strollout’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다. 이 말은 영어에 없는 단어이지만 지난해 5월, 호주노동조합협의회(Australian Council of Trade Unions. ACTU) 샐리 맥마누스(Sally McManus) 사무총장이 백신 출시(rollout)가 지연되는 것에 ‘stroll’(산책하기, 어슬렁거리기)이라는 단어를 붙여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VaccineStrollout’이라 게시했고, 이 용어는 금세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으며, 미국, 뉴질랜드 등 다른 영어권 국가의 미디어들도 이 용어를 차용한 바 있다.
지난해 후보에 올랐던 단어 중 하나로 ‘백신접종 의무화, (전염병으로 인한) 봉쇄 및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항의와 관련된 이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됐던 ‘cooker’(본래는 불법 약물, 특히 메스암페타민이나 대마초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사람, 또는 미친 사람을 뜻하는 호주 속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후보 목록에 올랐다.
또한 팬데믹 상황에서 근로자가 주어진 역할 및 지정된 시간을 초과해 일하지 말자는 운동인 ‘quiet quitting’, ‘반사회적 행동과 관련된 그룹의 일부이며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이 특징한 10대 또는 청년’을 일컫는 ‘eshay’, 특히 올해 들어 호주 전역의 각 가구에게 타격을 준, 높은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생활비 압박 등 심각한 경제 혼란의 여파에서 나온 ‘shrinkflation’도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랐다.
ANDC에 따르면 ‘shrinkflation’은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반면 제품의 크기나 수량 또는 품질이 감소하는 것’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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