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라오스 비엔티안=코리아위클리) 이만수(전 SK 감독) = 지난 2022년 8월 11일 사법연수원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에는 고등법원장, 부장판사를 포함한 많은 판사들이 참석했었다.

강연하기 전에 오세용 부장판사가 나에게 자신이 쓴 귀한 책을 선물로 주셨다. <인공지능 시대 - 법관의 미래는?> 이란 책이었다.

지난 2016년 3월 한국에서 벌어졌던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사이의 바둑 대결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이때만 해도 모두가 이세돌이 압독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점쳤으나 결과는 알파고가 4대 1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도 바둑에 조금 취미를 갖고 있는 터라 관심이 컸고 당연히 이세돌 기사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시간이 갈수록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음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또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어디를 가더라도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 일하는 곳이 많을 정도다.

오세용 교수도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글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유전무죄, 전관예우 등의 문제로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고, 특히 최근에 있었던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크게 하락하였다.

그러다 보니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비율도 점차 늘어나게 되고, 급기야는 인공지능 법관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마저 등장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법관은 인간 법관과 달리 감정, 편견, 정치적 성향, 외압 등에 굴하지 않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이들도 많아졌다. 게다가 인공지능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멀지 않은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에 판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 결과나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지난 2012년 1월 15일 플로리다에서 전지 훈련 중 잠시 포즈를 취한 이만수 감독.
 
이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지금 우리나라 프로야구계에서 계속 대두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로봇 심판을 도입하자는 것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마이너리그부터 로봇 심판을 도입해서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멀지 않아 서서히 로봇 심판이 도입되리라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는 로봇이다. 인공지능은 감정, 편견, 이전까지 해오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난 올바른 판정, 그리고 누구의 외압도 받지 않고 공정하게 판정을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평생 한길로 달려온 야구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비하고 어떻게 야구를 할 것인가?

당장 머지 않은 시대에 로봇 심판이 게임을 운영하고 게임을 지배한다면 인공지능은 거기에 상응하는 수많은 잡음을 잠재우기 위한 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당장 잘못된 판단으로 양쪽 감독들의 어필이 나왔을 때 로봇 심판은 어떻게 양쪽 감독들이나 선수들의 어필을 받아 드릴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인공지능으로 인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편안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결국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배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모 언론에 실린 나의 인터뷰 기사를 발췌 소개한다.

'프로야구 포수 레전드' 이만수 전 SK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이 내년 시즌 도입하는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 Automatic Ball-Strike System), 일명 '로봇 심판'에 관해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함께 냈다.

이만수 전 감독은 21일 제7회 이만수 포수상•홈런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잠실구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ABS로 인해 한국 야구가 퇴보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이 전 감독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기계가 하면 야구 특유의 재미가 사라질 것 같다"라며 "특히 포수의 역할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전 감독은 "이제 포수들은 프레이밍(framing •포수가 투수의 공을 포구할 때 심판에게 유리한 판정을 받기 위해 미트를 움직이는 행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라며 "이런 환경으로 인해 유망주 선수들이 기술 훈련을 등한시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판정 불신이 사라진다는 것은 ABS의 좋은 영향 중 하나"라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ABS가 가져올 변화를 잘 준비하고 한국 야구가 뒷걸음질하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ABS 도입과 관계없이 포수들이 계속 잡기 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포수는 잘 잡고, 잘 막고, 잘 던져야 한다"라며 "야구가 변하더라도 이 세 가지는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말했다. 이어 "규정이 바뀌더라도 학생 선수들은 이를 잊지 말고 훈련하길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이만수 전 감독은 ABS 도입으로 타자가 유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 감독은 "어느 상황에서든 스트라이크 존이 일정하기 때문에 타자들은 새로운 존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라며 "해당 존에 맞춰서만 훈련하기 때문에 상대 투수 공략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돌아오는 2024년부터 주심은 수신기와 이어폰을 통해 볼 판정 내용을 전달받은 뒤 그대로 판정을 내리게 된다.

먼 훗날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사람이 야구하는 그런 시대가 아닌 로봇으로 야구하는 그런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는 법이 과연 있을까?

내가 아직 현역선수였다면 ABS도입에 찬성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심판 콜이란 정심(正審)은 기억이 안나지만 오심(誤審)은 오랫동안 기억나는 법이다.

야구인의 선배로서 프로야구 미래를 생각하면 ABS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다. 당장 프레이밍 필요성이 사라지고, 이와 연계된 일련의 상황들 때문에 내가 알고 환호하던 포수들의 예쁜 플레이들이 없어질까 걱정된다.

2000년 중반부터 시작된 테니스의 호크아이(공궤적추적시스템)는 도입 전 우려와는 달리 성공적이었다. 화면에 그래픽으로 표시되며 시스템이 관중과 같이 호흡하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고, 실제로 보면 챌린지 자체가 재미있다.

야구의 ABS는 이런 시각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관중과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올해부터 KBO는 세계최초로 프로리그에서 전면 ABS를 가동한다. 정확한 ‘존’과 함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ABS는 적응기간이 끝나면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꿀것 같다. 나 이만수가 수 십 년간 겪은 바 있는 주심과 보이지 않는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아쉽지만 없어질 것이다.

선수, 관중, 심판으로 나눠보면, 선수들에게는 정확한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해 매우 공평한 기회가 주어 지게 될 것이다. 감독 생활을 하며 늘 마음 아팠던 것은 대타를 내보냈던 때이다. 말은 못했지만 모처럼 대타로 나간 선수가 스트라이크존을 조금만 넉넉히 잡아주는 심판을 만나버리면, 그의 장래가 망쳐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팬에게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만, ABS를 도입하면 존이 정확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재차 얘기하지만 팬들은 프레이밍이 안된 스트라이크를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땅만큼 떨어져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 후) 잡힌 공으로 루킹 삼진을 보게 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이후의 야구는 한국시리즈 마지막 순간에 이런 볼로 경기 종료가 될 수도 있다.

심판, 특히 주심에게는 현 상황에서 집중력에 따른 엄청난 체력부담을 다소 덜게 되니 좋고, 스트라이크 판정에서 자유로우니 파울 페어, 쓰리피트 레인 확인, 타자의 인터페어등 다른 판정의 정확도가 올라갈 것이다.

또한 현재는 자세를 힘든 자세로 낮추고 볼을 보기위해 심판은 슬롯 포지션(slot position)을 취하는데, 이후의 야구는 이게 필요 없을 수 있다. 따라서 기동성이 빠른 자세를 취하고 도루를 잡으려는 포수의 송구시 벌어지는 심판의 방해 등을 생각해 포수와 지금보다 더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스트라이크존이 정확해지면 좋다’는 명제에는 반대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ABS도입으로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고,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와는 조금 다른 야구를 만나게 된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ABS 야구도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즐겁지 않으면 야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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