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 교회) = 이제 총선이 며칠 안 남았다. 나는 이전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에 대한 이해에 관한 글을 여러 번 쓴 적이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것이며 정치는 가이사의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하지만 그리스도인이 가이사를 위해 일할 수는 없다. 부득불 일하게 되는 경우에도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매우 창조적이어야 한다. 가이사가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언제나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언제나 기도와 분별의 시간을 통해 가변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언제나 성령의 개입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원수인 이 세상 권세들의 숨겨진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삶을 어쩌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다. 이 세상 권세들의 통치와 지배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종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개인의 죄와 관련해서도 중요하지만 세상 권세들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심장하다. 타락한 권세들에 종노릇하는 중에서 그리스도는 자유롭고 인간답게 사심으로 권세들의 주권이 절대적이라는 신화와 환상을 산산조각 내신다. 여기서 타락한 권세는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칭한다. 모든 정부는 타락한 권세에 속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그 어떤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지배는 없다. 물론 세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능력이 섬김의 도구 내지는 이유가 된다. 세상 권세는 아무리 섬김이라는 단어를 내세워도 그 본질은 지배와 강포다.

그리스도는 반항 세력들, 곧 자신들의 통치와 궁극적 가치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기만적인 환상에 젖어들어 있던 반항세력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 무기들이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음을 밝히셨다. 그분은 권세들을 상대로 다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정체를 깨닫게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권세의 역할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 권세들에 맞서 참된 자유와 진정한 인간애를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방법은 바로 십자가였다. 십자가는 그분처럼 살고자 하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분은 권세들의 주장과 통치에 반기를 들었고, 목숨을 연명하거나 우상을 자처하는 그들의 종이 되지 않으셨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새롭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세상 권세의 종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창조적인 긴장이 요구된다. 세상에 속하지 않음이 세상을 허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속에 있다. 그러나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이 사실을 망각했다. ‘평신도’라는 하나님 나라에 없는 계층을 만들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돈을 벌어 교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세의 종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처럼 권세들의 주장과 통치에 반기를 들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연명하거나 우상을 자처하는 그들의 종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참된 자유와 진정한 인간애의 본보기를 통해 타락한 세상 권세들의 실상이 폭로되자 그들은 그분을 죽일 궁리를 했다. 그렇게 십자가는 죽음이 승리에 삼킨바 된 자유의 표지가 되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지지하고 그분의 승리를 확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권세들이 억압하는 중에도 자유로우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세상 권세들을 꺾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를 증언하고 선포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서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영원한 뜻을 따른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이전에 이 세상 권세들에 따라 서로 원수처럼 지내다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고 있는 사실은 권세들의 통치가 끝났다는 확실한 증거다. 교회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권세들의 지배가 마침내 종말을 맞았음을 보여준다. 의존적이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교회의 메시지는 그들이 세상의 기관들에 행사하는 온갖 형태의 비판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교회들이 성서가 선포하고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한다. 오늘날 교회는 더 이상 공동체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르지도,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 곳이 되었다. 그런 교회들이 여전히 세상 권세에 속해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인요한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이 나라를 더 이상 범죄자들과 종북 세력에 내주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다. 종북이란 “북한의 집권 정당인 조선 노동당과 그 지도자의 정책, 이념 따위를 추종하는 일”이다.

오늘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인요한 하나뿐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날뛰고 있는 전광훈과 장경동류의 사람들 역시 같은 부류다. 이들은 세상 권세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교회 자체가 저항과 공격이 되지 않으면, 즉 교회가 인간이 어떻게 권세들에게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삶과 교제를 통해 보여주지 않으면 이 세상 신들에게 아무리 저항하고 공격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교회가 삶을 통해 이 세상 신들의 사슬에서 벗어난 기쁨을 보여줄 때에라야 교회는 맘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할 수 있다. 국가주의를 거부하려면 사람들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인식부터 있어야 한다. 정의와 자비가 우리 공동체에서 강같이 흐르고 내 편, 네 편으로 구분하는 사회적 행습이 사라질 때에라야 비로소 사회적 불법과 공동체 붕괴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국가나 국민을 향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나 행동이 자신의 내적 삶을 통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는 교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벌코프, <그리스와 권세들>에서)

그리스도는 세상 권세들의 가면을 벗겨 정체를 폭로하고 무장을 해제시키셨다.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이 세상의 권세들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는 그분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바뀔 때 모든 권세는 물론이고 죽음의 세력까지도 권좌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보증이다.

부활절은 단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애도하고, 그래서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에 대해 묵상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려는 의지를 다잡는 결연한 날이 되어야 한다.

맞다. 선거를 잘 해야 한다. 선택은 복잡하지 않다. 누가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가, 누가 약한 자들을 위하는가, 누가 교만한 사람이 아닌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치부하는 자들을 이번 선거에서 궤멸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부활 축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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