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상당수가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소유까지
▲ 수년 전 올랜도에서 열렸던 이민개혁 촉구 시위 행사에서 ‘불법 인간이란 없다’ 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젊은이들. <코리아위클리 자료사진> |
최근 <마이애미 선 센티널>은 지역내 불체자 중 합법 체류자 못지 않게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몇몇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노스 마이애미의 마우로 케네디와 마리아 빌바오는 리모델링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근사한 콘도에서 머세데스 벤츠를 타고 다닌다. 웨스트 팜 비치의 켈시 버크라는 여성은 법을 다루는 변호사일까지 하고 있다. 윌프레도 노게라는 미라마 소재 회사에서 회계사로 일을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영주권이나 합법적 체류 방법도 없고 추방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지만 어엿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불체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수도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자료는 현재 전국 서류 미비자 1100만명 가운데 약 100만명이 전문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플로리다주 불체자 중 전문직종자는 약 7만9000명이다. 플로리다 불체자 수는 총 60만5000명이며, 이중 절반 이상이 마이애미를 포함한 남부 지역에 몰려산다.
그렇다면 불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쉽지 않은 추방… 불체자들은 살아간다
우선 서류 미비자라 할 지라도 범죄 기록이 없거나 추방 명령을 받지 않은 이들을 당장 추방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 법정에 쌓여 있는 추방건이 해결되는 데 6년 이상도 걸릴 수 있는 탓이다.
연방정부는 우선 범죄인들을 추방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연방 이민국 존 샌드웨그 연방 디렉터는 에서 범죄 기록이 없는 불체자들이 추방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 보수 싱크 탱크인 ‘아메리칸 액션 포럼(AAF)'은 일부 정치인들이 제안하는 대량 추방이 이뤄지려면 20년은 걸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불체자들이 미국에서 살아나가려면 미국 시민이나 합법 체류자들에게 평범한 일들을 힘겹게 헤쳐나가야 한다.
아르헨티나 출신 커플인 마우로 케네디와 마리아 빌바오는 마이애미에서 사업체를 소유하고 납세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만 운전면허증도 얻을 수 없고 의료보험에 들 수도 없다. 이같은 시스템에 반발하여 현재 마우로는 이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이민 지위를 묻지 않는 온라인을 통해 세금을 납부해 왔다. 은행을 이용하는 일도 걸림돌은 없다. 케네디 부부는 납세국이 소셜번호 없는 이들에게 주는 납세자 고유 넘버와 여권을 사용해 은행 체킹 구좌를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업체는 서류가 있는데도 정작 개인에게는 서류가 없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불체자들이 내는 세금의 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워싱턴 소재 ‘세금 및 경제정책 연구소(ITEP)'는 불체자가 가장인 가정을 기준으로 삼아 연간 110억6000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플로리다주가 차지하는 액수는 5억8800달러이다.
마우로는 미 영주권자인 직계가족 명의로 2004년에 집을 구입한 후 집 문서를 아들과 며느리 이름으로 돌려 놓았지만 모기지는 자신들이 지불하고 있다. 2001년에 9살 나이로 미국으로 온 그의 아들은 결혼을 통해 그나마 영주권을 획득한 상태이다.
자동차의 경우 융자를 얻을 수 없어 현금으로 중고차 아큐라와 머세데스 벤츠를 구입했다. 이들 부부는 2001년 여행 비자로 플로리다에 와 운전면허증을 얻은 다음 차 보험료를 온라인으로 지불해 왔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에 운전면허 기간이 만료됐고, 규제가 심해져 갱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부부는 고속도로는 피하고 속도 제한과 교통 신호를 엄수하며 운전면허 없이 운전을 하고 있다. 물론 경찰을 의식해야 하는 불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다. 부인 빌바오는 교통 정체로 4차례나 뒤에서 받쳤지만 그때마다 차에 별 문제 없다며 상대방에게 경찰을 부를 필요 없다고 도리어 부탁하며 살아왔다.
미국에는 현재 십 수개 주가 공공 안전을 위해 불체자들에게 운전을 허락하는 법을 제정했으나 플로리다주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체 학생들이 공립대학에서 거주민 등록금(인스테이트)을 지불할 수 있는 법은 몇 년 전 어렵게 통과되어 불체자 자녀들이 그나마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밀입국자에서 변호사로
켈시 버크는 10살때 엄마와 함께 혼두라스에서 멕시코로 가 그곳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왔다. 밀입국을 한 셈이다. 현재 28세인 켈시는 지난 해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켈시는 자신과 함께 국경을 넘은 오빠가 미국에서 살다 경찰에 체포되어 법정에서 추방명령을 받자, 그때부터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에서 형사법(criminal justice) 프로그램과 고급 AP 학과목을 이수했다.
불체자 자녀로 변호사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위해 운전면허증을 따려 했으나 실패했고, 소셜 시큐리티 번호가 없어 구직 신청서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 졸업 후 쇼핑몰 키오스크에서 모자에 수를 놓는 일을 하던 그녀에게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한 변호사가 그에게 TPS란 법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인도해 준 것이다. 이 법은 불체자를 정치 소요나 자연 재해가 있는 나라로 추방하는 것을 막는 인도적 차원의 프로그램으로 1990년 이래 중남미인 35만명이 혜택을 받았다.
TPS는 연방 의회가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으로 켈시는 운전면허증, 소셜번호, 주내 거주 등록금 자격 등을 획득했다.
켈시는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에서 장학금으로 학비는 해결했지만 법대 진학을 위한 연방 보조, 학생 융자 등은 여전히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의 공동서명으로 10만불 학생융자를 얻은 버크는 올랜도 소재 플로리다 A&M 법대 분교에 등록했다.
켈시에게는 공부가 끝나도 그녀의 희망대로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1996년 클린턴 행정부는 복지 개혁법(Welfare Reform Act)을 만들어 난민이 특정 전문직 라이센스를 획득할 수 있게 했지만 켈시의 신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켈시는 2011년에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신분 문제로 자격증을 거절당하자, 대법원의 입김으로 추방유예 신분에서 변호사가 된 멕시코 출신 호세 곤디네즈-삼페리오의 사례를 주목했다. 그는 주 의회 로비를 위해 직접 텔러해시를 방문하고 히스패닉 방송에 출연했으며 신문에 칼럼을 올리는 등 갖은 애를 썼다.
결국 2014년 주 의회는 켈시와 같은 사례에도 변호사 자격을 허락하는 법을 제정했고, 켈시는 웨스트 팜 비치의 로펌에 상해 전문 변호사로 취직됐다.
망명 승인 신청 기간 노동 허가서 이용
현재 미라마 소재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에서 회계일을 보고 있는 윌프레도 노구에라는 2013년 부인과 두 어린 자녀를 데리고 방문 비자로 미국에 들어왔다. 그는 방문 당시부터 미국에 정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노구에라와 같은 일부 남미인 방문자들은 망명 승인을 받아 영주권 취득을 희망하고 입국한다. 윌프레도 역시 3년전에 망명 신청을 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윌프레도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불법 체류가 아니라 ‘합법 체류가 아닌 상태’로 정의한다. 합법 체류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실제로 윌프레도는 법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에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년 노동 허가증을 갱신해 가며 일도 할 수 있다.
만약 망명 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윌프레도는 현재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체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내일 일을 생각하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대다수 불법 체류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기를 두려워 하는데 케네디와 같은 사례는 매스컴에 사진까지 공개한 특이한 경우다. 그는 이민법 개혁과 같은 이슈 앞에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렵다고 피하면 바뀔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10월께에 불체자들을 꼬집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반대 운동에 적극 뛰어들 참이다.
공화당 후보중 선두 주자인 트럼프는 멕시칸 특정 이민자들을 마약상이나 강간범으로 특정짓고, 모슬림은 미국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