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크로스(Kings Cross)는 호주의 가장 유명한 유흥지구로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또한 음주폭력 발생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킹스크로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코카콜라 사인.
업소들, 줄어든 매출로 ‘고통 호소’... 거주민들은 ‘환영’
지난 2월 NSW 주 정부가 음주폭력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드니 도심 및 킹스크로스 등 유흥지구의 클럽, 호텔, 바 등을 대상으로 새로운 음주관련 규정을 발효하면서 직접적인 대상 업소는 물론 주변 업소들마저 줄어든 매출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해당 지역 거주민들은 한결 조용해진 밤 풍경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주 정부가 내놓은 이 규제는 그 동안 음주폭력 사건 발생 빈도가 높은 클럽 등을 대상으로 오전 1시30분 새 고객의 출입 금지, 오전 3시 업소 내 고객에 대한 주류제공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강화된 법안은 킹스크로스(Kings Cross)에서 18세의 두 청소년이 술에 취한 사람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자 주 정부가 새로운 대책으로 마련, 시행한 조치이다.
주 정부는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다음 달, 시드니 도심(Central Business District) 지역을 대상으로 추가 규제조치를 발효한다는 방침이다.
주 정부의 음주 관련 규제가 시행된 이후 해당 지역 거주민들, 경찰과 의사들은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지만 주로 야간 손님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업소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화된 규제로 손님들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킹스크로스 찾던 이들,
서리힐 등으로 이동
지난 16년간 킹스크로스에서 테이크어웨이(takeaway) 숍을 운영해 왔다는 닉(Nick)씨는 ABC 라디오 702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출 감소로 업소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문을 닫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런 상태에서 3~4개월이 계속된다면 거의 모든 소규모 사업자들이 이 지역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새로운 음주 관련 규정이 시작된 이후 40% 이상 매출이 줄었으며 이로 인해 4명의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그들 모두 가족이 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인데, 당사자는 물론 가족이 겪을 고통은 얼마나 크겠는가”라며 “나 역시 현재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없다”고 말했다.
새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24시간 영업을 하던 닉씨의 가게는 이제 새벽 4시에 문을 닫고 있다. 밤새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사설 경비원(security guard)으로 27년간 킹스크로스에서 근무했다는 조지(George)씨는 새로운 음주법 시행 이후 관광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유령촌은 아니지만 오전 1시30분 이후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한다”고 말하는 그는 “늦은 밤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이곳 주민이 아니라 시드니를 찾은 해외 관광객들”이라고 덧붙였다.
“시드니는 아주 대중적인 관광도시이며 특히 킹스크로스는 전 세계에서도 특히 유명한 곳”이라는 조지씨는 “새 음주법이 시행된 이후 이곳을 순찰하는 경찰도 더 늘어났다”면서 “음주폭력 사건이 줄줄이 발생하기 전에는 왜 이처럼 순찰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이에 대해 킹스크로스 경찰서 관계자는 “순찰 인력은 (새 음주법 시행) 이전과 동일하다”면서 “다만 순찰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킹스크로스의 유명한 월드 바(World Bar) 대표인 스티브 워드(Steve Ward)씨는 새 규정으로 이 지역 비즈니스가 여러 부문에서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은 유흥문화라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 유흥업소는 보통 밤 10시에 업무를 시작해 다음 날 새벽 4시경 마무리되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새 음주법으로 유흥업소의 영업시간이 변경되데 대해 킹스크로스를 찾는 고객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밤 여흥을 즐기려는 이들은 여전히 킹스크로스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는 서리힐(Surry Hills) 또는 뉴타운(Newtown)으로 이동하고 있다.
워드씨는 이어 “우리 업소(월드 바)를 찾는 이들도 시간이 되면 파티를 계속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주류 판매 시간을 제한했지만 밤 여흥을 즐기려는 이들은 다른 곳을 찾아서라도 여흥을 계속한다는 얘기다.
새 음주법 시행 이후
폭력사건 응급 환자 크게 줄어
반면 킹스크로스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새 음주법 시행을 환영하고 있다. 이유는 이 지역이 이전과 달리 북적거림이 줄고 한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포츠포인트(Potts Point) 거주민이자 이 지역 시민단체인 ‘Darlinghurst Residents Action Group’의 헬렌 크로싱(Helen Crossing)씨는 “새 법령 시행 이후 소음이 줄고 평범한 주거지역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새 음주법이 이 지역 문화를 변질시켰다는 불평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만취한 사람들이 매주 2만 명에 이르는데, 우리는 이런 이들을 만들어내는 이 지역 유흥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킹스크로스 지역에서 발생된 폭력사건 등의 피해자는 대부분 세인트 빈센트 병원(St Vincent’s Hospital)로 이송된다. 이 병원 응급실 의료책임자인 고디언 펄드(Gordian Fulde) 박사는 음주 관련 사건이나 사고로 심각한 중상을 입고 치료를 위해 응급실로 실려 오는 이들이 두드러지게 줄었다고 말한다.
“술 취한 상태에서 소위 ‘원 펀치’ 공격을 받고 상해를 입거나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폭행을 당한 이들, 중환자실로 가야 할 만큼 위급한 환자들이 크게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펄드 박사는 이어 “(제도적인 힘으로) 비뚤어진 음주문화를 결코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폭력사고를 줄일 수는 있다”고 진단하면서 “새 음주법 시행은 큰 성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