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주한인 상의총연 ‘매관매직’ 논란
- 이사장 놓고 지역협의회 인사들간 물밑 협의가 빚은 촌극
- 감투싸움 한인사회, 오명 언제까지 써야 하나
[i뉴스넷] 최윤주 기자 editor@inewsnet.net
매관매직. 벼슬을 돈으로 사고 판다는 뜻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관직을 사고 파는 행위는 여지없이 횡행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관직을 파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은 다 아는 얘기다.
매관매직을 통해 관직에 오른 사람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가 됐다.
국가의 근간인 백성들의 핍박이 커지고 관료체체가 붕괴되다보니 매관매직은 망국으로 치닫는 원인이 됐다. 고려말 권문세족, 조선말 세도가문의 매관매직이 횡행했던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돈을 내고 자리에 오른 현대판 매관매직은 정계, 학계, 경제계를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정치권의 돈 공천, 기업의 입찰 비리, 학계의 교수직 돈 상납도 변형된 형태의 매관매직이다.
상의총연 강영기 회장, 매관매직 논란
5월 13일(토) 출범한 제26대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회장 강영기)가 매관매직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9일(일) 애틀란타 모 일간지는 “미주한인상의총연 ‘매관매직’ 논란”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미주상의총연 강영기 회장이 “이사장 직위 임명에 앞서 발전기금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직위를 팔고 사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달라스 한인사회 인사에 의해 미주한인단체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이처럼 자극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취재거리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순기능이 결코 좌시해서는 안될 사안이기도 했다.
활자화된 기사를 중심으로 사실 파악에 나서고, 사건이 불거진 애틀란타 임시총회 정황과 수면 아래에 얽히고 설킨 관계의 역학을 풀어가다 보니, 결국 취재의 끝자락에서 만난 사건의 민낯은 매관매직이 아닌 ‘자중지란’이었다.
매관매직? 본질은 “자중지란”
자중지란. 같은 무리나 같은 패 안에서 의견이 엇갈려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일컫는다. 흔히 쓰는 말로 내분, 내홍이다.
“직책에 해당하는 회비(후원금)은 10일 이내에 보내주셔야 유효합니다”(이사장 수락서 Form 내용중)
“수락서에서 약속하신 10일 이내 회비 납부 내용이 진행되지 않아 (홈페이지) 조직표 디자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명확한 입장을 알려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2017.5.30 총연 전송메일)
발단은 여기서 시작했다.
총연으로부터 수락서를 받은 애틀란타 김모 씨는 ‘회비(후원금)’를 거액의 후원금으로 받아들였고, “돈과 시간이 기대만큼 부응하기 힘들다” “이사장직을 돈으로 샀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사장직을 거절했다.
그러나 이메일을 보낸 상의총연 사무국은 문자 그대로 ‘직책에 해당하는’ 회비를 의미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회원이 회비를 납부해야 회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듯, 미주상의총연 정관이 정한 이사장 회비를 납부해야 이사장 자격이 유효함을 알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의총연 이사장 회비는 5천달러다.
이사장직 수락서가 오고 간 메일 중에 문제가 되고 있는 ‘발전기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메일은 애틀란타 모 일간지 기사가 보도했듯이 ‘강영기 회장이 보낸 이메일’이 아니라 이사장직을 거절한 김 모씨가 상의총연에 보낸 메일이다.
내용 또한 면밀히 살펴보면 김 씨가 애틀란타 지역 관계자와 ‘발전기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정황은 포착되지만, 강영기 회장이 직접 기금을 요구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결국 매관매직 의혹은 이사장 배출의 욕구가 컸던 지역협의체의 몇몇 인사들이 물 밑에서 발전기금 기탁을 협의하다가, 상의총연에서 보낸 이메일의 ‘회비(후원금)’이라는 단어를 ‘자리 대가성 요구’로 잘못 해석해서 벌어진 촌극으로 보인다.
상의총연 내부갈등 표면화
문제는 이면이다. ‘매관매직’이라는 자극적인 용어가 도출되자, 이미 여러 차례 분열과 내홍을 겪으며 얽혀버린 관계의 씨줄과 날줄이 드러나고 말았다.
편을 갈라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오는 날선 언어 속에 사태의 본질은 어느덧 뒷전에 밀린 모양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의혹을 부추키며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실체인 ‘자중지란’이 기지개를 편 셈이다.
모든 건 상의총연 집행부의 몫이고 과제다.
전국조직을 관할하는 총연합회다운 조직 장악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불협화음이고, ‘발전기금’을 운운한 일부 지역협의회 관계자의 ‘왜곡된 충정’이 독이 된 사례다.
진의야 어쨌든간에, 달라스 한인 경제인협회 회장 공석에 따른 빗발치는 책임론까지 감수하면서 미주한인 상의총연 회장을 선택한 강영기 회장이 출범 두 달 만에 ‘매관매직’ 의혹을 전해온 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언제까지 ‘난장판 한인사회’ 오명써야 하나
미국내 한인 인구가 25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민역사가 1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해가 바뀔 때마다 미주 한인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감투 싸움과 주도권 다툼은 신물이 날 정도로 여전하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중지란하는 모습을 보이니 부끄러움을 넘어 개탄스러울 지경이다.
결국 이번 사건도 상의총연 뿐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 전체가 넘어야 할 산이고, 극복해야 할 숙제다.
언제까지 ‘난장판 한인사회’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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