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더욱 파리답게 해주는 세느강은 한강의 규모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자주 되뇌는 말처럼 세느강의 명성은 그 유구한 역사에 달려있는 것이지 그 크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파리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탄생시킨 세느강, 그 위에는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다리들이 역사의 산 증인이 되고 있는데, 파리를 가로지르는 13km의 세느강 위에 걸쳐져있는 다리 수만 해도 무려 35개에 이른다. 


버스나 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치는 이 다리들은 어떤 얘기를 숨기고 있을까? 


햇살이 환히 비추이는 날,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다리를 따라 세느강 산책에 나서보자.






노트르담 교 (Pont Notre-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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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Notre-Dame 성당 근처에 있는 다리이다. Notre-Dame 옆에 있는 Hotel Dieu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는 rue de la cite를 따라 Chatelet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나게 된다.


1413년 샤를 6세에 의해 건설된 이 다리는 1421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의 유행에 따라 다리 위에는 동일한 모델의 집들과 (양쪽으로 30채씩, 모두 60채) 서점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499년 갑자기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 위에 있던 집들까지 모두 무너져 내린 대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돌로 된 새 다리가 건축되고 그 위에 다시 68채의 집들이 세워졌다. 


이 집들 문가에 처음으로 금으로 된 숫자가 새겨졌는데 파리 역사상 처음으로 집 번호가 매겨지게 된 이 집들은 한 쪽에는 짝수, 한 쪽에는 홀수로 되어있어 현재 파리 주소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우아한 장소로 알려졌던 이 다리는 1660년 루이 14의 아내가 될 Marie-Therese d'Autriche의 파리입성을 기념하여 새로 재건되었다. 이후 Haussmann에 의해 파리가 대대적으로 새로 재건될 당시 근처의 St-Martin 거리와 Rivoli 거리의 높이가 낮추어지면서 새로운 다리의 필요성이 부각되어졌다. 그리하여 5개의 아치로 구성된 다리가 기존의 다리 위에 새롭게 건설되었는데 이 5개의 아치로 인해 이 다리 밑을 지나가는 배들이 충돌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pont du diable (악마의 다리)’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결국 1919년, 중간에 위치한 3개의 아치가 철로 된 하나의 아치로 바뀌면서 현재 모습의 새로운 다리로 생겨나게 된다. 


▶ 길이 106m, 폭 20m, (M)Cite


 


퐁뇌프 다리 (Pont Ne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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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tte Binoche가 주연한 영화 "Les amants du Pont Neuf"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 다리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제로는 파리근교에 임시로 설치된 pont neuf 모형 위에서 촬영되어졌다.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과는 반대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에 속한다. 157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607년 앙리 4세에 의해 준공된 이 다리는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인 다리였다.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우선 그때까지 나무로 지어졌던 다리와는 달리 처음으로 돌로 지어졌다는 점, 처음으로 나무 위에 집을 건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로소 세느강과 근처의 루브르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진흙과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 계단 높이가 높은 보도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처음으로 반달 모양의 넓직한 발코니를 군데군데 두어 산책객들이 쉬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 등에서 다른 다리들과 차별됐다. 


이 다리 위에는 또한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져있는데 처음으로 공공장소인 다리 위에 이런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동상은 1792년에 파괴되고 왕정복고 시절(1815-1830)에 지금의 동상으로 대체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안에 나폴레옹이 손수 쓴 수사본과 나폴레옹의 작은 동상, L'Henriade의 서사시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 pont neuf는 지금까지 오랜 기간을 별 커다란 보수 공사없이 지탱되다가 1990년대 후반에 대공사를 진행했는데 다리의 돌 하나하나를 다 뜯어 전체를 새로운 돌로 대체해 말 그대로 21세기를 맞아 완전히 새로운 다리로 다시 태어났다. 공사가 얼마나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되는지 2년만에 겨우 아치 2개를 완성시켰고 다른 아치 2개도 2004년에 와서야 완성했다고 한다. 분명 이런 식으로 지어졌을 다리이기에 400년이란 긴 세월을 굳건히 지탱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길이 238m, 폭 20m  (M)7, Pont Neuf




로얄 교 (Pont Ro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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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Pont Neuf, Pont Marie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중의 하나이다. 1632년 Sieur Barbier 백작이 나무로 된 다리를 짓게 했는데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동물을 포함한 모든 통행자들에게 통행세를 부과시켰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이 통행세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 한 통행인이 세를 받는 사람을 검으로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1642년 이 다리는 홍수로 인해 무너져 내려 1651년 새로운 다리가 건축되었으나 1654년에 화재가 발생하고 1656년에 다시 홍수로 무너져 내려 1660년에 다시 건축되었으나 1684년에 새로이 발생한 홍수에 의해 다시 붕괴되는 등 수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보다 못한 루이 14세가 돌로 된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로 작정하여 1689년에 새로운 다리가 세워졌는데 그때부터 pont royal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다. 


기복이 심했던 이 다리 위에서는 당시에 많은 굵직한 행사들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Elisabeth de France와 스페인 왕자의 결혼식에 50만명이 초대되는 성대한 행사가 치뤄지기도 했다. 


1804-1814년 사이에 pont des Tuileries 라고 명명되어지기도 했던 이 다리는 나폴레옹이 Tuileries 궁전을 지키기 위해 대포를 설치해 두던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Louis-Philippe 왕은 1832년 11월과 1836년 12월, 이 다리 위에서 두 번씩이나 습격을 받는 불상사를 당했는데 다행히 매번 무사히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다리 밑의 양쪽 강가에 위치한 마지막 교각에는 또한 수면측정대가 마련되어 있기도 한데 지금까지 파리에 심한 홍수가 났을 때의 세느강의 최고수면을 표시해 놓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 길이 133m, 폭 16m, (M) Rue du Bac


 


콩코드 다리 (Pont de la Concorde)








1772년 지금의 콩코드 광장인 루이 15세 광장이 만들어지면서 그 옆에 같은 이름인 루이 15세 다리를 만들기로 계획했으나 공사자금이 부족하여 1788년 8월에 와서야 겨우 초기 공사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는데 우연찮게도 파리혁명의 도움을 받게된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면서 애국자 Palloy가 무너져 내린 바스티유 감옥의 일부의 돌을 이 다리 건축에 사용한 것이다. 이유인즉슨 “모든 애국자들이 매일 이 가혹한 요새를 구성했던 돌 조각을 발로 짓밟으며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1791년 마침내 다리가 완공되고 1792년 혁명다리로 명명되어지다가 1795년 다시 콩코드 다리로 불리어지게 된다. 복고왕정시대에 다시 잠깐 원래의 이름인 루이 15세 다리로 불려지다가 루이필립왕에 의해 다시 콩코드 다리라는 이름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이름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던 이 다리의 장식 또한 수많은 변화를 거쳐야 했다. 1810년 나폴레옹에 의해 설치되었던 8개의 장군동상이 몇 년 후에 루이 18세에 의해 흰 대리석으로 된 12개의 동상으로 대체되었는데 장관과 군인, 해군 각각 4명으로 구성된 이 동상으로 인해 다리의 균형이 깨어지고 너무 무거운 인상을 준다는 세간의 평에 의해 루이 필립 왕에 의해 이 동상들이 베르사이유궁으로 옮겨지게 된다. 


▶ 길이 153m, 폭 35m (M)1. Concorde




예술의 다리 (Pont des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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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궁전과 프랑스 학사원(Institut de France)을 이어 주는 철제 다리로 카루젤 다리(Pont du Carrousel)와 퐁 네프 다리(Pont Neuf) 사이에 있다.  


19세기 초반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로 만들어졌으며 당시에는 지나는 이들에게 통행료를 징수 받았다. 


프랑스 건축 기술자 루이 알렉상드르(Louis-Alexandre de Cessart, 1719~1806)가 설계와 시공을 맡아 건립되었지만 세계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폭격 등으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오늘날의 다리는 1981년과 1984년 공사를 통해 대대적으로 확장 보수된 것이다. 센 강에 있는 다리 중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로 예술의 다리라는 명칭답게 화가,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퐁네프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해 이곳 난간에 기대어 퐁뇌프 다리를 바라보는 연인들이 많다. 또한 퐁네프를 화폭에 담기 위해 많은 화가들이 즐겨 찾는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붉게 물든 퐁네프의 환상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퐁데자르는 퐁네프를 돋보이게 하는 다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퐁데자르 자체도 무척 아름답다.


때문에 연인들이 자물쇠를 채우며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파리를 방문한 커플들이 반드시 찾아오는 명소로 알려지면서 이곳 난간에는 사랑의 자물쇠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155m 길이 난간 전체가 자물쇠로 채워지자 파리 시민들은 다리 훼손 가능성이 있다며 2014년 초반 자물쇠 제거 청원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청원 서명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다리 난간이 '사랑의 자물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파리시는 자물쇠 해결 방안 모색에 착수했지만 현재까지 난간 보수나 자물쇠 철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사랑의 자물쇠는 파리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물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파리뿐만 아니라 사랑의 자물쇠로 명소가 된 모든 장소에 해당한다.


무거운 자물쇠 때문에 공공 시설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데다 자물쇠가 녹슬면서 미관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서명운동을 벌였던 환경단체에서는 최근 사랑의 자물쇠 대안으로 연인들의 커플촬영으로 대신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 길이 155m, 폭 11m (M)1. Louvre-Rivoli




알렉상드르 3세 다리 (Pont Alexandre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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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젊음을 되찾은 파리의 19세기 정신을 완벽하게 반영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파리 센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다리로 손꼽힌다. 


다리는 1896년~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서 당시로는 최신식의 등과 천사 등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명칭은 프랑스-러시아의 공조를 1892년 성사시킨 러시아의 알렉상드르 3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다리의 초석을 내린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던 니콜라스 2세였다.


다리의 건설은 19세기 기술이 결집된 것으로서 6미터의 높이로 지어져있다. 철제 다리로서 아치 형으로 뻗어 있으며, 다리가 샹젤리제와 앵발리드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축이 고려되어 단일 구간으로 된 107m의 다리의 높이는 고작 6m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너에 있는 17m 높이의 네 개의 화강암 기둥 덕분에 먼 곳에서도 눈에 들어오는데, 이 기둥들 꼭대기에는 각각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와, 과학, 예술, 산업, 상업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금박을 입힌 조각상이 얹혀 있다. 다리의 양쪽 면을 장식하고 있는 램프, 아기 천사, 님프들도 역시 발전과 성취를 표상하는데, 이들은 함께 중세, 르네상스, 루이 14세, 그리고 현대의 프랑스를 상징한다.


프랑스 내에서도 역사적인 기념물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 이 다리는 앵발리드를 그랑 팔레, 프티 팔레와 연결해 주는데,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 당시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다리의 완공식이 열렸으며 예술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프랑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최고 기량을 보여 주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오늘날 이 다리는 낙관주의적이고 심미적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아름답고 우아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파리의 연인'에 김정은이 자전거 고장으로 이동건과 만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관심을 모았다. 


▶ 길이 107m, 폭 19m (M)Invalides


 



【한위클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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