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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거북선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함선 에르미오느(L'Hermione)가 8만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4월 18일 대서양해변 로쉬포르(Rochefort)를 떠나 미국 대륙을 향해 출항했다. 현지에서 에르미오느의 출항을 직접 지켜본 프랑스대통령은 ‘역사적인 날’이라 칭송했고, 미국의 대통령은 ‘순풍, 잔잔한 바다, 좋은 항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친서를 보냈다. 


정확히 235년 전 에르미오느는 ‘자유, 평등, 정의’라는 깃발을 내걸고 로쉬포르 항구를 떠나 미국으로 출항했었다. 워싱턴 장군이 지휘하는 미국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해 라파예트(1757-1834년) 후작이 이 함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던 때가 1780년 3월이다. 18세기에 자유를 갈구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대서양을 건넜던 함선과 똑같은 쌍둥이 에르미오느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나 같은 여정으로 항해에 나선 것이다. 


일명 ‘자유의 함선’으로 일컫는 에르미오느는 길이 45m, 돛의 최고높이 54m, 닻줄길이만 무려 25km에 이른다. 


순조로운 항해라면 에르미오느 함선은 6월 5일 미국 요크타운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다. 1781년 10월 19일 미국 독립전쟁을 종결시킨 결정적인 요크타운 전투에서 라파예트는 미국독립군이 승리를 거두도록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 미국인들의 전설적인 영웅, 라파예트




라파예트(La Fayette)는 극히 익숙한 이름으로, 프랑스에서는 파리 명문 대형백화점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라파예트라는 이름을 지닌 도시가 무려 28개에 이르는데, 프랑스 후작은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간주된다. 


라파예트는 1776년 미국인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식민지인들의 편을 들어줬다. 그가 에르미오느 함선을 타고 1780년 6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에 도착했을 때, 훗날 미국의 초대대통령이 될 조지 워싱턴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16세 통치 하에 미국독립군에게 군대, 총기, 군복 등을 지원했다. 


라파예트는 생전에 몇 개 주로부터 미국시민권을 부여받았는데, 2002년 미국은 국가차원에서 라파예트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프랑스역사가들은 라파예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국독립전쟁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라파예트가 태어난 곳은 클레르몽-페랑에서 남동쪽으로 92km 위치한 샤바니악-라파예트 마을의 샤바니악 성, 이곳을 미국인들은 오늘날에도 하나의 성지순례지로 여기고 방문한다고 이 고장 관광안내소가 귀띔했다. 




▶ 20년의 집념, 에르미오느 복원




라파예트의 에르미오느 함선은 1793년 프랑스서쪽 크르와직 대서양해안에서 좌초됐다. 이 함선의 파편인 닻 1개와 대포 2개가 발견된 것은 1984년이다.


에르미오느를 복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에르미오느-라파예트협회를 결성한 것은 1992년. 1995년 로쉬포르에 에르미오느 제작아틀리에가 마련됐고, 치밀한 연구조사 끝에 함선제조가 착수된 것은 1997년부터이다. 


물론 함선복원작업은 초기부터 장벽에 부딪쳤다. 18세기의 선박제조용 거대한 떡갈나무를 찾아 운반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제는 거대한 제작비 마련이었다.


결국 20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거쳐 전설적인 에르미오느가 탄생된 것은 물신양면으로 지원한 8천명 회원들의 노고와 제작아틀리에를 17년에 걸쳐 방문한 4백만 시민들의 후원 덕택이라고 협회회장이 밝혔다. 민간자원봉사자들이 함선제작에 직접 손길을 도왔으며, 기업체들과 메세나들의 후원을 얻어 함선제작비로 총 2천 5백만 유로가 투자될 수 있었다.




▶ 후세에게 자긍심 안겨줄 미래의 유산




라파예트가 로쉬포르 항구에서 에르미오느 함선제작에 착수한 것은 1778년이다. 당시 2년에 걸쳐 제작된 함선이다. 2세기 후 쌍둥이함선을 다시 제작하는데 무려 20년이 걸렸다. 역사적인 증빙자료수집과 더불어 2세기라는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똑같은 함선을 제작하는 일은 그야말로 힘든 기술적인 도전이었다. 함선제작에 총 34만 시간이 소요됐고, 여기에 50여개 민간기업체가 참여했다. 


18세기 에르미오느는 242명 선원이 탑승했다. 21세기에는 80명이 탑승했다. 함선선장은 36년 선원생활동안 7번 세계일주 경력을 지닌 53세의 얀 카리우. 의사와 요리사들도 동반한다. 선원들은 베테랑급 프로 18명과 제분업자, 역사가, 실직자 등 선원경력이 없는 남녀자원봉사자 5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원자격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을 때 6백여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선원들은 항해 중에 속도를 내거나 줄이기 위에 직접 닻에 올라가 바람과 맞서야하는 까닭에 체력조건으로 닻에 올라갈 용기와 능력이 있는 이들이 선정됐다고 한다. 닻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현기증이 심한 지원자는 자동 탈락됐다. 체력이 튼튼할 뿐만 아니라 모험과 도전의식이 강한 지원자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다고 에르미오느 협회회장이 설명했다. 이들 지원자들의 평균연령은 25세이며, 이들은 출항하기 전 몇 개월 동안 선원으로서 맹훈련을 받았다.


18세기와 21세기의 에르미오느는 한 치의 다른 점이 없는 쌍둥이형제이지만, 21세기 현대인을 18세기 생활방식대로 살게 할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형 항해에 걸맞게 화장실 등 일부시설물에 현대적인 장비들이 추가로 첨가됐다. 18세기형 빗물받기용 커다란 나무통 옆에는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시키는 첨단장비가 가미되기도 했다. 


항해여정도 18세기와 똑같아 21세기 에르미오느는 12개 항구에 임시 정박한다. 6월 5일 요크타운에 도착하기 전 첫 기항지는 카나리아 섬, 이어서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에 정박한다. 에르미오느가 순풍을 달고 항해를 한다면 미국 독립기념일 7월 4일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날 미국의 수백 돛단배들이 프랑스 함선을 자유여신상까지 에스코트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21세기 에르미오느 함선의 대서양횡단에 소요되는 비용은 5백만 유로, 이중 반절은 미국 에르미오느-라파예트친선협회가 부담한다. 이 미국친선협회 명예회장은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다. 


에르미오느가 로쉬포르 항구로 귀항하는 예정일은 8월 28일. 이전에 라파예트의 발자취를 찾아 8월 10일부터 17일까지 브르타뉴지방 브레스트 항구에 정박하여 방문객들을 탑승시킬 전망이다. 라파예트는 1779년 미국과 프랑스를 한차례 왕복방문하면서 브레스트에 상륙했는데, 이때의 여행목적은 루이 16세가 미국독립군을 지원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21세기 에르미오느 함선은 먼 항해를 끝내고 로쉬포르 항구에 귀항하면 항해하는 해양박물관으로서 지속적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할 전망이다. 


전설적인 함선 에르미오느가 프랑스인들의 가슴을 여전히 뜨겁게 감명시키고 있는 이유는 바로 프랑스의 위대함을 되살려주는 유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에르미오느-라파예트 협회회장이 피력했다. 21세기 에르미오느 함선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긍지심을 안겨줄 프랑스의 새로운 유산물이 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프랑스인들의 긍지심을 싣고 출항한 에르미오느 함선의 항해를 www.hermione.com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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