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수해지역 방문기]
집 안은 앙상한 뼈대, 집 밖은 쓰레기 더미
휴스턴 한인사회, 합심으로 위기 대처
긴급대책본부 활동으로 인명피해 Zero
[i뉴스넷] 최윤주 기자 editor@inewsnet.net
대표적인 침수지역인 메모리얼 파인 아파트.
2주만에 다시 찾은 집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수마가 머물다간 자리에 남은 건 긴 한숨 뿐, 숟가락 하나, 밥그릇 하나까지 모두 버려야 하는 처참함의 극치다.
대표적인 침수지역이었던 메모리얼 파인아파트에 거주하는 한인 A씨는 아파트 거주 한인 중 가장 먼저 구조신청을 한 후 휴스턴 한인 구조팀에 의해 구출됐다.
다행히 사업체인 뷰티서플라이에는 피해가 적었지만, 다시 찾은 보금자리는 폐허 그 자체였다.
“무엇 하나 건질 게 없어요. 다 버려야 해요. 물에 젖은 앨범만이라도 살려볼 생각입니다.”
손에 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삶의 추억만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애처로운 말 한 마디가 안타까움을 극대화시킨다. 애써 웃음을 짓는 A씨의 미소에는 이미 너무나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아파트는 온통 쓰레기 천지다.
아파트는 온통 쓰레기 천지다. 불과 2주전만해도 삶에 안식을 주던 가구들이 흉물이 되어 바닥에 뒹굴고 수마에 씻겨 삶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집 앞마다 가득하다.
물에 젖은 바닥과 벽까지 모두 뜯어낸 아파트 내부. 여전히 물이 고여있다.
쌓인 쓰레기 더미를 보며 무거웠던 가슴은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갈갈이 찢어진다. 불보다 무서운 게 물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듯 물이 파괴한 B 씨의 집 안 내부는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1시간 반밖에 안 걸렸어요. 일요일 새벽 5시까지도 멀쩡했는데 6시 30분이 되니 주차된 차의 절반이 물에 잠길 정도로 수위가 올라왔습니다. 정말 삽시간이었어요.”
온 가족이 무사히 구조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살림살이와 흔적없이 사라진 집안 내부를 보면 앞이 깜깜할 뿐이다.
메모리얼 파인 아파트는 한인 피해자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이다. 침수다발지역이었다면 사전에 대비라도 했겠지만 이 곳이 침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수지 방류로 인해 강이 범람하면서 생긴 침수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진 비가 채 빠지기도 전에 물이 불어나자 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아파트 1층이 대부분 잠겼다.
대책본부이자 대피장소의 역할을 톡톡히 한 휴스턴 한인회관.
휴스턴 한인사회, 긴급대책본부 사전 구성
발빠른 대처로 인명피해 막아
지금까지 보고된 사망자는 최소 47명.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한인 인명 피해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인 인명 피해가 나지 않는 건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휴스턴 한인회 김기훈 회장은 공관과 한인 단체가 하나된 마음으로 긴급상황에 대처한 것이 인명피해를 막았던 가장 큰 요인이라 평했다.
휴스턴 한인회 김기훈 회장
사실 휴스턴 한인회는 1년 전부터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한국정부에 요구해 재난구호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받고, 허리케인 하비가 상륙하기 이틀 전부터 긴급대책본부를 구성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1년 전부터 한국 정부에 요구해 올해 초 재난구호와 관련한 지원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한인회관을 대피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간이침대 10개와 담요, 비상식량, 랜턴, 보조 발전기까지 구비했고, 허리케인 하비가 휴스턴에 상륙하기 이틀 전 휴스턴 총영사관과 한인단체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본부를 결성해 대피소 운영과 구조팀 운영 등 상세한 매뉴얼을 기동력있게 마련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전에 긴급상황을 대비하고,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일사분란하게 구조활동으로 전환한 휴스턴 대책본부는 100명 이상의 한인들을 구조하며 ‘인명피해 Zero’의 신화를 창조해낸 것.
한인들의 자발적 지원도 한 몫을 했다. 구조팀원 중 한 명은 1주일동안 휴가를 내어 구조활동에 매진했고, 교회는 피해현황 취합과 구조물품 배분, 복구지원 활동에 힘을 보탰다.
현재 24시간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인명구조에 전력을 다했던 휴스턴 대책본부는 구조활동에서 복구활동으로 전격 전환, 1가정에 10~15명이 복구 지원을 나서고 있다.
구조요청 해놓고 구조 거부
황당했던 순간도 태반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휴스턴을 관통하는 I-10과 I-610이 침수될 정도로 심각했던 도로 상황에서 구조활동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 가정을 구조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운 좋으면 2시간, 길게는 4~6시간.
차로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까지 들어가도 고무보트를 멘 채 물에 잠긴 도로를 3마일 이상 걸어야 했다. 왕복 6마일의 물길을 걸어야 한 가정을 구출해낼 수 있었던 것.
구조요청이 와 어렵게 찾아간 집에서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구조를 거부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기껏 구조해내오니 “집에서 가져올 물건이 있다”며 다시 들어가주기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어 구조팀을 애 먹이기도 했다.
현재 24시간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인명구조에 전력을 다했던 휴스턴 대책본부는 구조활동에서 복구활동으로 전격 전환, 1가정에 10~15명이 복구 지원을 나서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합심으로 재해를 이겨내는 휴스턴 한인사회의 모습이 미주 한인 동포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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