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조국순례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의기양양하게 성인봉 정상에 올라 인증사진 찍고 도동항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웠지만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3분의2 정도 하산했을 무렵 갑자기 왼쪽다리가 꼬이는 느낌에 이어 뒤로 넘어졌다. 머리로는 자신이 있는데 다리가 좀체 움직여 주지 않는다. 급기야 몇 발자국 가다 넘어지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70평생 처음 겪는 일이다. 평소 매일 10킬로 이상 걸어 걷는 데는 자신만만했던 내가 갑자기 서 있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신기한 것은 상체는 멀쩡한데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치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 같은 기분이다.
요하킴과 여선생도 당황했다. 여선생은 내 배낭을 받아 짊어지고 요하킴은 나를 부축했지만 역부족이다. 나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등산용 스틱이 두 동강나고 말았다. 나는 가끔 글에서 “다리가 풀렸다“ ”다리가 꼬였다“라는 표현을 보고도 무슨 뜻인지 실감하지 못했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70세 노인이 산에서 조난(遭難)당해 마을까지 밤새 기어서 도착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부상당해서 그랬거니 생각했는데 내가 겪고 보니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분도 다리가 풀린 것이리라. 이때부터 우리들의 필사적인 하산노력이 시작되었다.
나는 요하킴 부축을 받아 서너 걸음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30세의 요하킴은 50파운드가 넘는 배낭을 지고 한 손으로 나를 부축하느라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30대 후반 여선생도 등에는 내 배낭을 짊어지고 가슴에는 자신의 작은 배낭을 안고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노인 한 사람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남겨두고 3시간이 지나서야 산 입구 시멘트 길에 도착했다. 여선생이 휴대폰으로 택시회사를 호출했으나 급경사로 올 수 없다는 답변이다.
그때 퍼뜩 도동 성당에 계시는 박필립 수녀가 생각났다. 박 수녀는 나의 트친이기도 하다. 전화를 받은 박 수녀는 성당 사무장과 경차를 몰고 10분 만에 도착했다. 드디어 사지(死地)에서 벗어난 것이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수녀의 소개로 식당을 찾아 허기를 채웠다. 수녀는 숙소까지 잡아주었다. 사정을 알길 없는 요하킴은 한국 교회의 서비스 네트워크가 놀랍다며 감탄했다. 이날 밤 나는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다.
이튿날은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이날도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고 한다. 요하킴으로서는 대단히 나쁜 뉴스다. 늦게까지 잠을 잔 우리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웠다. 박필립 수녀는 다리가 불편한 나를 위해 자동차로 울릉도 상수원인 봉래폭포와 독도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박물관에는 독도에 관한 역사자료들이 전시되어 요하킴도 흥미 있게 관람했다. 점심식사는 짜장면(Black bean noodle)을 먹고 싶다는 요하킴 말에 중국집에서 했다. 식사 후 우리는 울릉도 역사문화체험센터를 방문했다. 등록문화재인 문화체험센터는 일본식 2층 목조건물로 일정시대 울릉도 나무를 벌채(伐採)하고 고리대금으로 주민을 착취하던 일본인 사카모도 나이지로가 해방 때까지 살던 곳으로 문화재청이 매입해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관리하면서 도서를 전시하고 전통차를 판매하고 있었다. 센터 매니저에게 요하킴을 네델란드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하자 대단히 기뻐하면서 연주를 부탁했다. 2층 홀에서 즉석으로 꾸며진 콘서트에는 10여 명이 참석했다. 요하킴은 비록 전자건반이지만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모짜르트와 자신의 재즈곡을 연주했다.
저녁에는 수녀의 안내로 내수전 일출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는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는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상조건이 완벽하게 맞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날 육안(肉眼)으로 관찰하는 행운을 누렸다. 처음 손톱 만하게 보이던 독도를 망원경으로는 손바닥 크기로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배로 독도까지 관광할 수 있는데 며칠간 풍랑으로 독도출항이 금지되던 중이었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수녀로부터 내일 오후 배가 출항하는데 며칠간 밀린 승객이 많아 배를 타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요하킴은 반드시 내일 육지에 도착해야 주일아침 부산에서 비행기로 떠나 일본공연에 지장이 없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요하킴을 떠나보내야 했다. 요하킴에게 사정을 알리고 일출도 볼 겸 5시30분 일어나자고 연락하고는 잠에 들었다. 울릉도 탈출기가 시작된 것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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