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일본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혈액검사만으로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의 발병 가능성을 30년 전에 정확히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진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 그림. 사진: aap
호주-일본 공동연구... 혈액 0.5cc만으로 치매유발 물질 유무 가능
호주와 일본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혈액검사만으로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발병 가능성을 실제 발병 30년 전에 정확히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주 금요일(2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 보도에 따르면 일본 ‘시마즈 제작소’(Shimadzu Corporation)와 호주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이 0.5cc의 혈액만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물질의 유무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 지난 1일(목) 저명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연구결과 내용을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Kiochi Tanaka) 시마즈 제작소 선임연구원의 주도로 진행됐다.
이로써 앞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치료 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며, 궁극적으로 병의 진단 및 정기검진에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물질은 베타 아밀로이드(amyloid beta)로, 이 단백질 덩어리가 뇌 속에서 끈끈하게 엉켜 독성 물질을 배출하고 염증을 일으켜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개발된 질량분석 기술은 혈액 속에 베타 아밀로이드와 관련된 특정 펩타이드(peptide. 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 분자로 이뤄진 화학 물질)를 검출한다. 펩타이드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 속에 축적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생체지표로,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면 혈액 속 특정 펩타이드가 감소하게 된다. 즉, 질량이 다른 각각의 펩타이드 중 특정 펩타이드를 구별해 내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을 포함해 가벼운 인지능력 저하 증상을 가지고 있거나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호주인 및 일본인 각각 252명과 121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혈장 샘플을 채취, 심각하게 낮은 밀도를 보이는 펩타이드를 분석했다.
이 혈액검사를 통해 뇌 속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가 축적돼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해냈고, 진단 정확도는 90% 이상이었다.
이번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멜번대학교(University of Melbourne) 플로리 연구소(Florey Institute)의 콜린 마스터스(Colin Masters) 교수는 “드디어 알츠하이머를 진단할 고성능 혈액검사 기술을 개발했다”며 “엄청난 성과”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연구를 통해 검출해낸 펩타이드는 알츠하이머를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전까지는 보통 30년가량 진전되어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스터스 교수는 1987년 베타 아밀로이드와 관련된 특정 펩타이드를 발견한 연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들의 인지능력 저하 속도를 예측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미래 알츠하이머 치료 방법의 효과를 관찰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의약품을 투입해서 진행하는 기존의 방법과는 달리 이 기술은 비외과적인 검사를 통해 비정상 단백질의 축적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가격만 비싸지 않다면 비용대비 더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현재 베타 아밀로이드의 축적여부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아밀로이드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가 있다.
PET 스캔은 환자에게 방사성 의약품을 주입해 뇌를 촬영하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로, 이 방사성의약품이 뇌에 축적된 베타 아밀로이드와 결합하면 붉은색으로 보이게 되는 점을 이용해 분포 부위를 영상화 하는 방법이다. 이는 고가의 장비로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에게서도 베타 아밀로이드가 발견되기도 하는 등 정확성이 부족해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권장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의약품을 투입해 진행하는 기존의 방법과는 달리 비외과적인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비정상 단백질의 축적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과 고가 장비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위한 혈액 채취. 사진 aap
뇌척수액 검사의 경우 척추 아랫부분에서 추출해낸 척수액을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의 유무를 검사한다. 이 또한 척수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부담과 높은 비용으로 대중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스터스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으나 추가적인 연구와 확인을 거쳐 향후 50세 이상 환자 및 조기 환자들의 1차 진료 과정에 혈액검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당 기술은 앞으로 1년 간 아직 외상적인 증상은 없으나 잠복기 단계의 임상 시험 참가자들을 걸러내는 데에만 사용될 예정이라고 연구진은 전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료에 대한 연구는 심각하게 느린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스터스 교수는 “알츠하이머에 관한 연구가 지난 몇 년간 심각한 차질을 겪어왔으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세 가지의 치료약물들이 모두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전체 치료 과정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신약개발 또한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호주 치매협회(Dementia Australia)에 따르면 70세 이상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들의 40%가 뇌 속에 축적된 베타 아밀로이드가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이며, 2016년 호주의 치매 환자는 35만4천 명으로 집계됐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