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사회가 이민 축소 논쟁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도시 인구급증에 따른 사회적 우려의 불똥이 이민정책으로 튀면서 정치권은 연일 이민 축소 공방을 펼치고 있다.
당장 지난 회계연도 동안 호주의 영주 이민자 유입량은 10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호주 정착을 꿈꾸는 해외 이민 희망자들의 수는 여전히 증가일로다. 한국인 역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수의 한인들이 호주 영주를 꿈꾸며 내무부의 이민국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인 이민 희망자들에게 돌파구는 존재할까?
지난 해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이민 사기 피해를 당한 한인 일가족이 추방 직전 이민 장관의 재량권으로 영주권을 발급받으며 큰 화제가 됐다. 영주권 신청 및 이민재심재판소 소송, 장관 탄원 등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추방 통보를 받은 일가족의 사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온라인 서명 운동이 전개됐고, 연방 정치인의 관심을 끌었다. 멜버른 연방하원의원의 노력과 빅토리아 주 카톨릭 교회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호주 정착이 허용되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꿈은 현실이 됐다.
호주는 이민 국가이기에 해마다 이민 쿼터는 존재한다.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 차근 차근 ‘도전’을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물론 이민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톱 뉴스는 한인 이민 전문 변호사와 특집 시리즈 인터뷰를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하고 극적으로 호주 영주권의 문턱을 뛰어넘은 한인 이민 성공 사례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성공 사례의 기틀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2부 이민성공사례]
“작은 노력들 헛되지 않아”
임현호 Senior Estimator, 건축회사 Every Trade
‘영어’ 미리미리 준비해야
“잘 모르면 찾아보면 되지” – 자신감 갖고 덤벼”
주정부 후원 기술 이민으로 성공
일자리 찾기 - ‘이력서’ 작성부터 세심하게 신경써야
‘이민’은 한 사람의 삶에선 ‘도전’이다. 받기까지, 또 받고 나서 ‘정착’하기까지 수 없이 넘어야 할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건축회사 에브리 트레이드(Every Trade)에서 시니어 에스터메이터(Senior Estimator)로 일하고 있는 임현호씨는 영주권을 받고 시드니에 온 게 지난 해 3월이었다.
이민을 결심하고나서부터 새로운 경험들이 축적됐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인터뷰에 응한 그는 “미루면 미룰수록 더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면 이민을 하려 할 때 맞춰야 할 조건들이 더 많아진다”며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에서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11년 간 일했다. 호주 ‘이민’에 있어 큰 걸림돌인 ‘영어’는 우연찮게 시작했다. 회사 내 MBA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토플에 뛰어들었다. 회사가 끝나면 2-3시간 공부를 했다. 집으로 가는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니 아예 회사 근처서 공부를 하고 밤 늦게 집으로 가는 일을 반복했다.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일단 영어가 필요하니 열심히 했어요.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게 제 삶의 버팀목이랄까요. 잘 모르면 찾아보면 되지, 물어보면 되지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주눅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MBA 프로그램은 회사 사정 상 유보가 됐다. 그때는 영어로 시간과 돈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영어가 빛을 발한 건 2년 뒤였다. 취미 삼아 자신이 사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직접 했는데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부부가 구경을 하러 오면서 호주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내와 호주 이민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호주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아내에게 호주는 낯설지 않았죠. 회사 선배 중에 호주로 이민을 간 선배가 있어 바로 연락을 해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그렇게 호주 이민이 시작됐다. 영어 점수와 경력을 인정받고 기술 심사를 받았다. 주정부 후원 기술 이민(190비자)으로 NSW주에서 영주권을 받았다.
“영주권이 나온 그 날을 잊지 못해요. 굉장히 기뻤어요. 얼떨떨하기도 했고요. 회사에 사표를 낸 게 2016년 12월 말이었고, 그 다음 해 2월 회사를 그만뒀죠. 그리고 3월 가족들은 놔 두고 호주에 먼저 왔어요.”
두 달 뒤 아내와 아이들이 호주로 왔다. 영주권을 받기까지 기다림이 끝나자 이번엔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기다림이 존재했다.
“지난 해 6월부터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2주 동안 이력서를 쓰고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연락이 아무데서도 안 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힘들어졌어요.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빨리 일을 구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상당했죠.”
영어는 현실의 문제가 됐다. 전화를 받는 게 ‘공포’였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 이력서를 만들어 무조건 넣었다. 첫 직장은 호주 타일 회사. 그 곳에서 견적 프로그램과 현지 도면을 접했다. 한 달 후 그 회사의 계열사인 상업시설 건축회사로 발령을 받아 견적 일을 본격적으로 했다.
“마침 그 회사가 확장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상업 시설 공사 쪽으로 견적 작업을 하게 된 거죠. 한달 동안 견적을 내는 일을 했는데, 그걸 따게 됐어요.”
그는 서류 작성에서부터 공을 들였다.
“저만의 장점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PT(파워포인트) 만드는 건 자신이 있었어요. 입찰을 할 때 계획들을 PT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성장(?)을 거듭해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겨 둥지를 틀었다. 전 직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이곳으로 옮겼고 그의 소개가 고리가 됐다. 신생 기업이라 회사도, 그도 함께 커 가는 ‘보람’이 있다.
현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문은 ‘영어’. 부딪히면서 배웠다. 동료들이 쓰는 표현법을 외웠고, 전문 용어들을 익혔다. 반복이 되다 보니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에 영어가 힘들어 말로 표현을 완벽하게 못하면 서류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작전으로 세웠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제 장점을 살려야 하니까 일을 할 때 서류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게 어느 정도 통했어요.”
이민은 그의 일상을 바꿔놨다. 새로운 환경의 적응은 ‘도전’이었지만 자녀들과 함께 매일 저녁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됐다. 이른 바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룬 셈이다. 아버지와 가져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유대감을 지금 아이들과 매일 매일 쌓고 있다.
“돌아보니 작은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삶에 어떤 도전들, 시험을 봐야 한다거나 또는 어떤 결과를 기다려야 하면 그 스트레스가 굉장한데, 할 수 있는 부분들부터 하면 그 산을 어느 순간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영어’는 기본적으로 이민에 있어 조건이 돼야 하는 부문. 바쁘다고 미루기 보다 시간을 쪼개 영어 점수부터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바쁘다고 ‘영어’를 미루다 보면 시작부터 할 수가 없어요. 일단 영어 점수를 받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건넨 마지막 조언은 ‘이력서’였다. 현지에서 일자리 찾기의 시작은 ‘이력서’다.
“하루에 한 줄을 쓰더라도 현지에서 쓰는 용어로 자신의 경력을 말하는 게 중요해요. 기본적인 이력서 쓰는 법, 거기에다가 플러스가 있어야 해요. 한국에서의 여러 경력들 또는 본인의 강점을 알릴 수 있는 걸 첨부 파일로 붙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고요. 그래야 연락이 옵니다.”
http://www.topdigital.com.au/node/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