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중해변도시 제노바에서 지난 8월 14일 발생한 모란디 고가다리 붕괴사고는 프랑스 교량들의 안전점검실태를 전면적으로 표면화시킨 계기가 됐다.
한 주요일간지 시사만평에서는 운전자들이 다리건너는 것이 무섭다며 머리 위에 자동차를 이고 다리 밑으로 걸어 통과하는 모습을 풍자만화로 그려내기도 했다.
3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제노바 고가다리 붕괴는 잘못된 교량설계와 관리부실로 인한 인재로 부각되어 큰 충격을 안겨줬다. 최근 5년 사이 이태리에서 발생한 11번째 다리 붕괴사고인 것으로 전해진다.
제노바 참사는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무서운 사례라고 프랑스 교통부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을 냈다. 마침 모란디 고가다리와 같은 사장교 건축양식으로 파리근교 마를리-르-르와에서도 길이 300m 고가다리 건설공사가 착공된 시점이라 관계자들의 간담을 더욱 써늘케 했다.
▶ 프랑스 국도교량 7% 붕괴위험
과연 프랑스 교량들은 안전한가? 라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이자벨 보른 교통부장관이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아베롱 산간지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 A75의 4차선 미오 고가다리(Viaduc de Millau)를 모범 케이스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첨단화된 자동감시장치 시스템들이 곳곳에 부착되어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오 고가다리는 원탑과 교량상판을 부채꼴 케이블로 연결하는 전형적인 사장교 건축양식으로, 10년간의 치밀한 설계연구와 3년 공사 끝에 2004년 개통됐다. 길이 2,460m, 프랑스의 4번째 긴 다리로 간주한다. 다리 몸체를 떠받드는 원탑의 최고 높이는 343m에 이르며, 이 분야교량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둥이다. 프랑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첨단기술, 모더니즘, 예술성을 과시하는 교량설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교량에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다. 최근 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가가 관리하는 국도 교량들은 12,000개에 이르며, 이들 중 33%가 노화되어 보수공사가 불가피한 상태이다. 7%는 붕괴위험마저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8년 국가예산에서 교량 안전점검과 이에 따르는 보수공사비로 8억 유로가 투입됐는데 2017년보다 1억 유로가 더 증가한 투자이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교량관리를 위해서는 연간 13억 유로가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이다.
▶ 서해안지대의 주요 사장교들
영국해협이나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강 하구의 주요 다리들에 대한 안전관리도 자연스럽게 뜨거운 감자로 대두됐다. 바람과 습기, 바다안개, 소금기를 담은 공기 등 기후요소가 다리부품의 부식과 훼손에 크게 영향을 미치며, 교량도 자동차처럼 노화된 부품은 바로 교체하고 새로운 페인트칠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들 주요 교량들이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조형예술품이면서, 동시에 지역경제활동에 크게 이바지하는 교통요충지라는 점도 간과되지 않는다.
서해안지대 5대 사장교로 간주되는 리르와즈 다리(Pont de l’Iroise)는 브르타뉴 지방 엘로른(l'Elorn) 강물에 드리운 길이 800m 교량이다. 이 지역의 주요항구도시 브레스트로 통하는 관문으로, 1994년 개통된 이래 하루 평균 45,000대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민간업체가 안전관리를 담당하며 2015년에 안전점검을 거쳤다고 밝혔다.
대서양을 향해 엘로른 강과 가까운 거리에서 평행으로 흐르는 론(L'Auln)강의 테레네즈 다리(Pont de Terenez)는 이전의 콘크리트 다리가 낙후되어 붕괴 위험성이 있자, 그 옆에 나란히 새로 세운 교량이다. 2011년 개통 이후 매년 안전검사가 실시되며, 하루 24시간 작동하는 자동 안전장치가 부착되어있다. 항간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사장교로 간주하는데, 길이 815m의 아담한 자태는 세련된 곡선형을 이룬다.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인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노르망디 지방 센 강에 떠있는 탕카르빌 다리(Pont de Tancarville)는 길이 1,420m, 유료통행이다. 1959년 개통된 이래 1996년과 1999년에 걸쳐 원탑과 교량상판을 연결하는 케이블 전체가 교체되었다. 교량관리는 전문민간업체가 맡고 있으며, 자동안전장치도 부착되어 있다.
▶ 노르망디의 교통혁명 일으킨 노르망디 대교
센 강과 영국해협이 만나는 넓은 강 하구에 7년간의 공사 끝에 1995년 개통된 노르망디 대교(Pont de Normandie)는 서해안 지대의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명물로 손꼽힌다. 길이 2,143m에 이르는 다리는 관광명소 옹플레르와 프랑스 제2의 항구도시 르아브르를 연결한다.
유료통행이지만,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에게 일종의 ‘교통혁명’을 일으킨 다리로 간주된다. 가령 르아브르에 사는 한 주민은 노르망디 다리가 개통된 이후부터 센 강 건너편 휴양도시 트루빌의 일요장터에서 장보기를 즐긴다고 전했다. 차량으로 30분 소요거리이나, 노르망디 다리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리 개통이전에는 100km가 넘는 시골길을 구비 구비 돌아 탕카르빌 다리를 통해 센 강을 건너야했다.
높게 솟은 노르망디 대교는 바람에 민감하여 악천후에는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철근원탑 높이는 212m에 이르며, 온도, 풍향, 습도를 측정하는 자동장치가 부착되어 통행금지 여부를 결정한다. 해마다 교량몸체 25%씩 교대로 정밀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 프랑스에서 가장 긴 다리, '생-나제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는 르와르 강 하구(la Loire)의 생-나제르 대교(Pont de Saint Nazaire)는 길이가 3,356m에 이른다. 프랑스에서 길이 3km가 넘는 유일한 교량이다.
서해안지대의 5대 사장교에 포함된 생-나제르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들 중에 하나로도 꼽힌다. 특히 해돋이나 석양이 질 때 드러나는 다리의 자태는 거의 환상적인 모습이다.
대교를 통과하면서 바라보이는 주변풍경도 독특한 편이다. 생-나제르의 르와르 강변에는 프랑스 최대의 조선소가 자리잡고 있다. 에어버스의 아틀리에를 비롯하여 거대한 선박들이 늘어선 정경이 내려다보인다. 즉 프랑스 경제활동의 부산한 분위기를 한눈에 감지할 수 있는 곳이다.
1975년 개통된 생-나제르는 3개월마다 부식우려가 있는 부속품들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되고 있다. 안전관리는 르와르-아틀랑티크 지역 도청관할이며, 관리비용만 연간 2백만 유로가 투자되고 있다. 통행료가 무료라는 점에서 이용자들에게는 은근한 즐거움을 하나 더 선사하는 교량이다.
프랑스에는 전국에 크고 작은 교량들은 무려 20만 여개에 이른다. 강물 위에 떠있는 다리(Pont), 야산 혹은 농작지대나 주택가를 거치는 고가교(Viaduc)들이 국토면적에서 치지하는 비율은 높은 편이다. 유럽에서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어 3위, 세계에서는 5위를 차지한다.
제노바 참사를 지켜본 프랑스 교통부장관은 올 여름바캉스 시즌이 끝나는 대로 다리, 고가교, 터널에 대한 안전보수공사를 최우선적으로 감행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모든 교량들이 빠짐없이 매년 정규진단을 받고, 3년마다 의무적으로 정밀검사가 실시되도록 새로운 법률안을 9월에 입법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병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