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3-114
미국이란 손님을 평화의 세계로 안내하는 운전자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내가 진정 두려운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내 자신에 분노해왔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나를 길 위에 나서게 하였다. 길 위를 달리는 시간, 오직 심장 박동 소리만 들리는 이 순간 내 안의 연탄불 같은 뜨거움이 밖으로 분출(噴出)되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푸르붉은 뜨거움이 나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지배한다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
밖이 어디든 이제는 부화(孵化)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래 알 속에 갇혀있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더 준비해서 떠나라고 했지만 나는 박차고 길 위로 나섰다. 알 속에 안주할 때가 있고 알을 깨고 나올 때가 있다. 알 속이 편하기는 하지만 알 속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뒤뚱뒤뚱 그렇게 느리게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내 발자국이 찍어낸 그 점들이 나를 놀라게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자동차로도 이 거리를 달려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이 그럴 때이다. 껍질 안에서 숙성할 때가 있고 그 껍질을 깨고 나올 때가 있다. 미국이라는 두꺼운 알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올 때이다. 제때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 알은 썩어버린다. 껍질 속에 머물러 있는 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미국은 도무지 우리가 알에서 부화해 훨훨 하늘을 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게다.
지금 지나는 타이항(太行) 산맥 서쪽은 황토고원지대이다. 비가 조금만 와도 곱고 가벼운 황토가 패여서 협곡은 깊고 아슬아슬하다. 사람들은 어디에고 그곳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적응하며 살았다. 이곳에는 계단식 밭이 많이 있고, 낮은 산간지역에는 전통적인 동굴식 주거인 요동(窯洞)을 많이 볼 수 있다. 요동이란 간단히 말해 이 지역에 흔한 토굴식 주거이다. 이곳의 황토는 굴을 파기 쉽고 반면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요동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토굴식 주거이다. 그 요동들은 지금은 거의 비었지만 중국인민들이 농공민으로 도시로 다 빠져나가 시골지역이 공동화(空洞化)가 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요동이 밖에서 치장하는 것이 한계가 있어 가장 신경 써서 단장하는 곳이 입구이다. 대부분 입구는 돌로 아치형으로 쌓아서 장식을 하여 아주 원시인들의 거주지 같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까지 보인다. 자세히 보면 굴뚝도 한쪽으로 보인다. 이 요동에도 빈부격차는 있어 가난한 집은 그저 입구를 거적때기로 가려 바람을 막은 흔적이 있다.
이곳 산시 성(陕西省) 션무(神木)에서 푸구(府谷) 그리고 강을 건너면 성이 바뀌어서 산시 성(山西省) 바우더 시가 되는데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매장량이 가장 많은 석탄광산 지역이다. 기찻길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기차가 석탄을 실어 나르고 찻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퀴 22개가 달린 괴물 같은 트럭들이 석탄을 싣고 달려간다. 이 지역의 바닥은 황사로 덮여있는데 황사는 분가루보다 더 곱고 가벼워서 콧바람으로도 한국까지 날아갈까 봐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져 뒹구는 석탄은 뒤에 따르는 트럭에 밟혀 가루가 되고 이것이 황사와 섞여 다시 그 뒤를 따르는 바퀴 22개 달린 괴물이 지나가면 검은 먼지버섯구름이 일어나 내 몸에 뒤집어씌우기를 반복한다. 흐르는 땀을 휴지로 닦아내면 휴지는 검정 숯으로 변해버린다. 이 트럭들은 14억 중국인민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간다. 이 트럭들이 베이징까지 이렇게 간다니 내 기관지와 폐는 그때까지 괜찮을까? 길가에 피어난 접시꽃의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저 앞에 식당이 보인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점심이다. 이렇게 달리다보면 제때 식당을 만나 점심을 먹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늘은 그래도 이렇게 트럭들이 많이 다니니 뜨문뜨문 식당들이 보인다. 식당 앞에 젊은 아낙이 목장갑을 낀 손으로 석탄을 바구니에 담고 있다. 주방에서 쓸 석탄인 모양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나이는 좀 들은 것 같은데 화장을 진하게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메뉴를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온다.
사진이 있는 메뉴라 나는 망설임 없이 하나를 골랐다. 같이 있는 운전도우미 장용씨가 당나귀 고기인데 괜찮으냐고 물어본다. 인적이 드문 곳의 식당에 개고기도 있고 염소고기, 토끼고기, 등 메뉴가 다양하다. 나는 개고기는 안 먹지고 일부러 당나귀고기를 시켜 먹을 의향이나 호기심은 없지만 이왕 주문한 것이니 그대로 먹기로 했다. 맛은 소고기와 별로 차이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비탈길을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자니 발길에 석탄 부스러기가 계속해서 차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싯구절을 중얼거려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이미 지나버린 어린 시절 연탄불 위에다 고구마를 구워 뜨거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기며 먹던 기억이 난다. 가래떡도 그 위에 구워 설탕이나 조청을 찍어 먹으면 그 왕성하던 식욕도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라면은 구공탄에 끊여야 제 맛이었다. 거기에 파 송송 썰어 넣고 계란 한 알 깨 넣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아버지 월급날 하루 정도는 온 식구가 모여앉아 돼지고기를 구공탄에 구워먹으면 다른 게 평화가 아니었다.
광부들이나 막노동 하던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삼겹살이다.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하루 종일 일을 하며 기관지를 통해서 목구멍까지 내려간 먼지와 탄가루가 부드럽게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뭐 과학적 근거까지 있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없는 살림이지만 고기 한 점 먹어야 또 내일 그 거친 일을 다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으리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길에는 타고 남은 연탄재를 뿌리면 출퇴근 길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나다니곤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길은 아직도 눈이 와 미끄러운 비탈길과 같다. 지금 가슴에 푸르붉은 싱싱한 불꽃을 피우면서 달리는 이유는 나도 한번쯤은 한겨울 아랫목처럼 주위를 뜨겁게 달구고 싶었다. 그렇게 다 태우고 나면 연탄재처럼 아직도 미끄러운 평화의 비탈길에 뿌려져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녔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의 역할은, 짧은 역사에 한 번도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미국이라는 손님이 가자는 대로 운전만하는 택시운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라는 손님을 평화의 세계, 평화의 파라다이스, 평화의 무릉도원으로 안내해서 평화의 가치가 자국 이기주의에 비할 바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운전자가 되어야겠다. 이 미끄러운 평화의 길 위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지지 않고 세계 사람들이 평화의 길을 잘 다닐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려면 이제는 스스로 알을 깨고 부화하여야 하겠다.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처음부터 플랜B는 없었다
조국의 울혈을 풀어주는 길
애당초 내 머릿속에는 제 2안은 없었다. 오로지 하나, 그것은 북을 통과해서 신의주(新義州)에서 시작해서 평양(平壤)을 거쳐 판문점(板門店)을 통과하여 남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하여 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나는 1만 3천km를 달려서 이제 중국의 심장 베이징(北京)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단지 남북의 막혀버린 체증을 뚫고자하는 열망으로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고난도 두 눈 부릅뜨고 맞서서 이겨냈다. 그런 내게 처음부터 제 2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거침없는 발걸음은 이제 산시 성의 마지막 도시 광린에 도착하였다. 산시 성과 허베이 성을 나누는 타이항 산맥을 넘어 이제 내일이면 베이징을 품은 허베이 성에 진입하게 된다. 이제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는 나의 마음은 지금 바람보다도 빨리 한반도의 평화의 봄을 향해 질주해간다. 나의 뜀박질은 호기심을 채우는 두레박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채운다. 무엇보다 축복은 달리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 안으로 달려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도 내 모든 사고의 두레박은 내 안에 깊은 샘 속에 흐르는 그 신비한 생명수를 길어 올린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서 달렸지만 이젠 삶에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려고 달리고, 자신감을 더 얻고, 지혜를 얻으려고 달린다. 매일매일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달리는 것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다짐이기도 하다.
아주 멀리 가고 싶은 욕망은 아마도 아주 어린 소년소녀시절부터의 모든 이의 막연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멀리가면 아직 만나지 못한 귀한 그리움을 만나리란 막연한 상상과,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리란 기대. 그래서 1만 3천km를 달리면서 더 깊은 호수의 전설과, 더 오래된 숲속의 이야기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신비와 꿈자락처럼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더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았다. 그런들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아버지의 고향, 내 마음 속의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면.
1년을 새벽 4시면 일어나 준비하고 6시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하루 42km를 꾸준히 달려왔다. 지난 9월 1일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하여 낙엽이 뒹구는 독일의 시골길을 달려왔고 눈 내리는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가까스로 피해왔지만 터키와 그루지아의 코카서스 산악지역을 지날 때 손과 귀가 어는듯한 추위도 이겨내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중국의 신장위구르의 사막에 달릴 때 정수리에서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넌더리를 치며 헤쳐 나왔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흑해와 카스피 연안을 지나 사막과 사막으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를 다 지나 텐산 산맥을 넘어 신장위구르 지역의 중국공안의 장벽도 넘어서 된장냄새, 고추장냄새 푹푹 풍기는 나의 땀방울들을 유라시아를 가로지르고 쏟아내며 체증(滯症)처럼 막혀있는 남과 북의 길을 뚫어보려 달려왔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의 길은 압록강을 건너는 길 이외에 우회하는 길이란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 위장병을 달고 사셨다. 나도 위가 별로 안 좋은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달리면서 위장도 튼튼해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다 튼튼해졌다. 체했을 때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깨 쪽부터 손으로 쭉쭉 훑어서 마사지를 하며 손까지 피를 모은다. 그리고 실로 엄지손가락 피를 안통하게 해준 다음 바늘을 촛불에 달구어 소독을 한 다음 아랫부분을 감아 엄지손톱 모서리 끝부분을 바늘로 콕 따주셨다. 그러면 검은 피 한 방울이 솟구쳐 오르고 막혔던 울혈(鬱血)이 풀려 체증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어깨 쪽부터 손으로 쭉쭉 훑어서 마사지를 하며 손까지 피를 모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따서 막혔던 울혈을 풀어주지 않으면. 유라시아대륙을 힘들여 뛰어온들 무슨 소용 있으랴? 내가 압록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피 한 방울 뽑아냄으로서 막혔던 체증을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편리한 민간요법인가. 내 유라시아 달리기가 한반도의 73년 묵은 체증을 뚫어내는 민간요법이 될 수 있다면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명의도 치유하지 못한 한반도의 체증을 치료하는 화타(華佗)가 되는 일인데 여기에 멈출 수가 없는 이유이다.
화타는 주나라 때의 전설적인 의사 편작과 더불어 명의(名醫)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약물 처방뿐 아니라 외과 수술에도 정통한 그는 ‘최초의 외과의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어 사용했다고도 전해진다. 화타는 약과 침, 뜸 등에 모두 정통했고, 침과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했는데, 창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창자를 잘라 씻어내고 봉합해 고약을 붙이면 4〜5일 만에 고통이 없어지고, 한 달이면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를 73년 동안 시름시름 않게 한 병은 다른 병도 아니고 체증이다. 돌팔이 축에도 못 끼는 내가 한반도의 끝부분에 피 한 방울 내고 울혈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내가 그 정도 결기도 없이 이 험한 길을 나섰을 리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좋아지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강이 흐르고 남과 북이 만나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며 그리워하면 그 사이에 평화의 물길이 트인다. 그 물길을 따라 온갖 생명이 자라고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필코 압록강을 넘어 평양을 거쳐 광화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나쁜 피 한 방울 뽑아 우리나라의 울혈을 풀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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