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1890~1918)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전시는 10월 3부터 시작해 2019년 1월 14일까지 열린다.
에곤 실레는 클림트, 코코슈카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세기말 3대 화가이고, 장 미셀 바스키아는 낙서 화가하면 떠올릴 정도의 대표적인 작가다. 두 예술가는 28세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는 기존 시스템을 거부하고 새로운 작품세계로 주목받았던 공통점을 가진 실레와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을 기획해 예술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이끌고 있다.
에곤 실레와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세계
에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났다. 실레는 16세이던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1907년부터 새로이 등장한 아르누보 양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구스타프 클림트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클림트는 실레의 드로잉에 반해 그의 후원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실레는 뚜렷하게 클림트의 영향을 알아볼 수 있는 우아한 장식요소가 담긴 그림을 그렸다. 1909년 보수적인 학풍과 교수들과 마찰을 빚으며 학교를 그만두고 몇몇 친구들과 신 예술가 그룹’을 결성했다.
이때부터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표현주의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1910년부터는 누드화를 연습하기 시작해 1년 만에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여인과 소녀를 그린 누드화는 에로티시즘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면서 1912년 미성년자 유인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24일 동안 옥중생활을 했다.
1913년 클림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예술가 동맹’의 회원으로 빈 분리파 전시회에 참여했다. 1915년 에디트 하름스(Edith Harms)와 결혼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군에 징집되기도 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그림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 기간에는 풍경이나 군장교와 같은 이들의 초상화와 자신의 자화상을 주로 그렸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유럽의 주요전시회에 참가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18년 클림트가 세상을 떠나자 실레가 그 자리를 채우며 빈 분리파 전시회를 이끌었고, 전시는 성공을 거두며 경제적, 예술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가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한 후에 에곤 실레도 독감으로 아내와 아기 곁으로 떠났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실레는 20세기 초 비엔나의 시대상을 그만의 특유의 시각으로 담아내며 표현주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메마르고 병색이 짙은 표정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의 그림으로 그리고 작품의 배경은 고독과 단절감을 표현하기 위해 여백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
바스키아는 196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비장을 제거해야만 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때 바스키아 어머니는 바스키아에게 ‘그레이의 해부학’ 책을 선물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던 그에게 어린 시절 본 해부학 책이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대안학교인 시티애즈스쿨을 다니면서 낙서화가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낙서그룹 SAMO(Same Old Shit)를 조직하고 그래피티(graffiti, 스크래치 또는 스프레이로 그린 그림 혹은 낙서)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서 낙서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스키아의 작품은 주목받기 시작해 1980년에 첫 그룹전시 ‘타임스 스퀘어쇼’전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1981년 21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최연소 화가로 카셀 도뮤멘타, 휘트니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전해갔다. 그러나 유명세에 따른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슬럼프 등으로 마약을 남용하다가 28세에 코카인 중독으로 요절했다.
바스키아는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천재로 백인우월주의, 해부학, 흑인영웅, 만화, 낙서, 바스키아 자신의 이야기 등을 만의 시적언어로 기호, 문자, 선, 색 등으로 표현하여 동시대의 중요한 미술을 구축했다.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미술의 표현주의 대표적 작가로, 바스키아는 미국미술의 신표현주의 및 신 구상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시대 예술 작품을 남긴 두 작가가 각각 그려낸 선이 지닌 실존주의적 특징을 주요 주제로 삼아 두 작가의 초기작품이 주를 이룬다.
에곤 실레전에는 초상화와 누드화를 중심으로 하여 드로잉, 수채화, 회화 등 다양한 작품 12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비엔나레오폴드미술관 소장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 프라하 국립미술관 소장의 ‘임신한 여자와 죽음(1911)’, 뉴욕 모건 도서관 & 박물관소장의 ‘화가 아내의 초상) (1917)’등 실레의 역작도 볼 수 있다.
장 미셀 바스키아전은 1980년부터의 초기 작품부터 세상을 떠나던 1988년까지의 작품까지 10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전시를 보기 전 혹은 전시를 본 후에는 줄리언 슈나젤 감독의 영화 ‘바스키아’와 디터 베르너감독의 영화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을 보면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천재화가들을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장소 :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개관시간 : 월, 수, 목 11~20시. 금~일 11~21시
주소 : 8 avenue du Mahatma Gandhi
– Bois de Boulogne – 75116 Paris
문의 전화 : +33 (0)1 40 69 96 00
예매 : www.fondationlouisvuitton.fr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