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5개국을 순방중인 가운데,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을 잇따라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프로세스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대북제재 완화에 이어 비핵화 유인 조치 카드도 꺼내 들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이번 유럽 순방 행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북 제재 완화’ 거론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처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며 프랑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비핵화 진전을 위한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를 프랑스에 요청한 데 이어 17일에는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유인 조치”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천 조치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이어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및 발사대 폐기를 약속했고, 미국의 상응조치 시 국제적 감시 속에 대표적 핵 생산시설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이 폐기될 경우 비핵화는 상당부분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하도록 국제사회의 격려 및 유인 조치가 필요하며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이 이를 적극 지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콘테 총리는 “문 대통령께서 진행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매우 중요하며 역사의 한 장을 쓰고 있다”고 평가한 뒤 “이탈리아 정부는 항상 지속적으로 완전하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일”이라며 “기필코 분단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청이 마련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미사’ 뒤 기념 연설에서 남북이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청이라는 상징성 높은 장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독 면담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교황의 평양 방문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 평화 무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잡혀 있다.
이 자리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EU 핵심 국가들의 지지를 요청할 예정이다.
EU 국가들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CVID)을 공동 외교정책으로 채택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대북제재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촉진을 위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에 더해 프랑스, 영국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북미관계에서 미국의 제재완화 입장을 끌어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미국 주도의 정책에 매몰될 경우,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도식에 모두가 빨려드는 잘못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는 비핵화가 촉진되기는 커녕 오히려 장애물에 부닥치기 쉽다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되, 한반도 운전자로서 북한의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방안을 한 발자국 앞서서 제시하고 관련국들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때문에 이번 유럽순방길에서 EU의 한반도 평화 지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지혜로운 출구 전략으로 보인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