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영국 BBC방송이 2년 전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소개했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란 뜻이라며 “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긴다”는 해설까지 달았었다. 영어 ‘adultism(the power adults have over children)’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 ‘요즘 젊은이들 안 된다’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고 하니 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꼰대’는 있었나 보다.
두 달 전 한국 제1야당 대표에 30대 중반 정치인이 당선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에 발을 들인지 10년 정도 지났으나 국회의원 경험이 없어서 ‘0선(選) 중진’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여러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패널을 하면서 토론에서 남다른 실력을 선보였다.
그는 20~30대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투표를 한 20대 남성 4명 중 3명이 그가 속한 ‘국민의 힘’ 후보를 찍었다. 그는 사회 현상에 불만이 있으나 참여할 길을 찾지 못하던 20~30대를 정치의 장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특히 20~30대로부터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던 ‘국민의 힘’으로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같은 세대이자 그들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는 30대 당 대표를 환영했다. 그가 당선된 후 ‘국민이 힘’은 정당지지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여당인 민주당을 앞섰다.
그에게 연일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여당 내부도 술렁거렸다. ‘우린 왜 30대 대표를 만들지 못하나.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독주가 심한 것 아니냐’ 등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청와대 청년비서관(1급) 자리에 민주당 소속 20대 최고위원을 임명한 것도 30대 야당 대표 등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등장은 기존의 여의도 정치에 변화를 예고했다. 당장 그가 맡은 당 대표도 그동안과 달랐다. 그는 선거 때 캠프를 만들지 않았다. “캠프는 당선되면 자리로 보답해야 하는 부담”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대표 수행도 한두 명이 고작이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움직일 때 전현직 국회의원이 대거 몰려 있는 모습과 비교됐다.
연설문도 직접 작성한다.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거친 생각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이란 유행가 가사를 패러디한 연설은 화제가 됐었다. 이런 건 직접 써야 가능하다. 현역 국회의원 중 연설문은 물론, 국정감사장에서의 질문 내용을 직접 쓰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또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이 정치라고 주장한다. 당 내부는 물론 여당이나 청와대와의 관계에서도 협치를 강조했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상대가 있는 것인 만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자세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협상도 당 내부에서 말이 많았으나 타결됐다.
반면 그의 ‘변화에 대한 거친 행보’에 대한 당내 반발도 적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 유력 야권 후보에 대한 그의 말과 생각들이 가장 큰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처음에는 그 후보의 ‘국민의 힘’ 입당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있었다. “경선 버스 출발 전에는 타야 한다”는 말로 후보를 압박하자 후보 측은 물론 당내 지지자도 반발했다. 그 후보의 ‘전격 입당’ 후에는 당내 경선 과정을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다른 후보들도 대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표가 선거에 나가는 게 아니니까 조용히 있으라”는 게 요지다. 이에 대해 대표는 “후보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니까 내가 나서는 게 아니냐”라고 대응하고 있다.
정권교체가 목표이다 보니 유력 후보와 맞서는 대표가 못마땅해 보일 수 있지만, ‘과거 당 대표’였다면 이 정도일까 싶다. 오히려 30대 대표의 덕분으로 당 지지율이 오를 때 감춰왔던 ‘꼰대’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30대 대표에게 과거 대표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꼰대’의 전형이다. 지금의 대표가 30대이면, 그에 맞는 생각과 주문을 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여권 후보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야권 후보들이 지금처럼 역동적이지 않아선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20~30대의 표 없이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보들은 대표와 힘겨루기에만 몰두하는 분위기이고 1위 후보는 당내 경선에 이어 여당 후보와의 본선도 통과해야 하는데 전투력이 보이지 않는다.
세대 차이는 당연하다. 어릴수록 불과 몇 살 차이에도 생각이 다르다고 한다. 십대 후반이 초반에게 ‘꼰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 ‘꼰대’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꼰대질’이 문제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는 30대 야당 대표 흔들기는 여의도 정치에 매몰돼 있는 정치인이나 주변인의 ‘꼰대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김인구 gginko78@naver.com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한국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