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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4차 핵 실험 이후 한국의 외교 정책이 꼬이고 있다. 실질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주변 국가와의 외교적 공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로 돌아섰고 러시아도 우리 정부에다 인내와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B-52 전략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지만 복잡한 국내외 문제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의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를 철저히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는 새로운 세력균형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 군사, 경제 등 협력과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은 미국의 대 중국 압력에 대한 완충국가일뿐더러 주요한 우방이다. 북한이 친중파인 장성택을 처형하고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무역과 에너지 공급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 카드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으로 행사할 수 있고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외부 개입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미국 견제가 지속되는 한 북한 핵 문제는 현재와 같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답답한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최근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북 방송의 재개와 남북협력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라는 미국 부시정부의 대 중동정책을 북한에 적용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북한이 더 이상 경제제재로는 북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한·미 당국이 대북 전략 목표를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짐 체인지는 외부의 개입이나 혁명, 쿠데타 등의 내부적 요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말한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가 바로 이러한 레짐 체인지를 당했고 후세인, 가다피는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고 아사드만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레짐 체인지의 결과는 비참하다. 지금까지 이라크와 리비아는 효율적인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채 테러와 내전이 지속되고 있고 시리아는 이미 인간 지옥이 되어버렸다. 절망적 분열과 좌절 속에서 IS가 등장하여 유럽과 아시아에 자살 테러가 확산되고 있으며 난민은 유럽을 뒤덮고 있다.
레짐 체인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이야기할까? 김정은만 제거되면 절대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한국과의 평화적인 통일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바로 북한이 또 하나의 시리아가 되는 것이다. 아사드는 김정은이 되고 북한의 곳곳에서 반김정은 세력이 등장하면서 미국과 일본은 이를 지지하고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김정은 혹은 그 유지를 이은 세력을 지지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김정은 세력이 존재하는 한 북한을 그대로 한국이나 미국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간에 막을 것이다. 지금의 시리아처럼. 북한에서 내전이 격화되고 열강들의 개입이 본격화되면 한반도는 내전과 난민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갈등을 피하고 질서가 잡힐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단순한 폭력과 억압만으로 지탱되는 정권이 아니다. 종교에 가까운 주체와 수령 사상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김정은과 운명을 같이하는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세력은 백만 명이 넘는다. 반면 반김정은이라고 할 수 있든 대안 세력이나 야당은 전무하다. A. Przeworski는 동유럽의 민주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인민들이 권위주의체제와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시기는 대안세력이 등장하였을 때라고 지적한다. 김정은 없는 북한,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는 또 하나의 인간지옥인 시리아를 만들뿐이다.(윤성학 객원논설위원, 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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