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그것은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전쟁이었다. 대화와 소통을 하면 할수록 평화는커녕 뜨악해지는 문제였다. 어쩌면 침묵과 냉전이 최소한의 평화를 위한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린 속살을 찢고 나오는 가시같은 대화가 매일 아침 반복됐다.
“좋은 그릇에 뜨거운 죽 많이 담으면 깨져요.”
“뜨거운 죽 많이 담는다고 깨지면 좋은 그릇이 아니지.”
남자는, 아니 남자의 위장은 오트(귀리)를 사랑했다. 몇 년째 오트죽으로 아침 식사를 해오고 있었다. 죽을 끓여도 오돌도돌 씹는 맛이 살아 있는 스틸컷(steel cut) 오트를 선호하지만 시간이 없으면 롤드(rolled) 오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세 영국에서는 오트를 말 사료로 썼다는 말을 듣고는 그 말들을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는 얼마 전 물혹 하나 없이 깨끗하게 나온 위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다 오트를 장복한 덕분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남자는 오트와 콩, 퀴노아, 치아시드, 블랙 라이스 등 잡곡들이 작은 냄비에 담긴 채 바글바글 끓는 소리를 좋아했다. 냄비가 눋지 않도록 가끔 숟가락으로 저어주기만 하면 건강은 식은 죽 먹기였다.
문제는 죽을 담을 그릇이었다. 양념이나 간을 전혀 하지 않는 무미(無味) 죽이라 되도록 품격 있는 그릇에 담고 싶었다. 여자가 애지중지 하는 빌레로이앤 보흐(Villeroy & Boch) 그릇 세트 중 하나를 무단으로 차출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이국적 동화 그림 문양이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비록 중세에는 가축 식량이었는지 모르지만 오트는 이런 그릇에 담기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자신이 아끼는 그릇 하나를 쑥 뽑아 마구 사용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못마땅한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불안했다. 아침마다 무지막지하게 끓어대는 오트죽을 보면서 자신이 아끼는 그릇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걱정됐다. 여자는 20년 넘게 부부지정을 나눈 남자의 건강보다 그릇의 안위를 더 염려하고 있었다.
“혹시나 깨지지나 않을까? 색이라도 바래면 어떡하지?”
여자는 참다못해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막그릇도 많은데 하필이면 내가 아끼는 그릇을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 내용물에 걸맞는 그릇이 따로 있는 법인데 오트 잡곡죽 따위가 넘볼 물건이 아니라고…
여자의 불같은 불만은 오트를 숭상하는 남자의 마음을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혔다. 내용물이 중요하지 그릇은 형식일 뿐이다. 먹을 수도 없는 그릇 따위를 영험한 효력을 가진 곡물과 비교하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릇 하나를 둘러싸고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은 두 자루의 비수처럼 끝과 끝을 마주한 채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어느날 남자의 죽그릇을 유심히 살피던 여자는 문득 가느다란 실선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이 묻었나 싶어 자세히 보니 흐릿한 금이 아닌가. 손끝으로 살짝 문지르니 분명 미세한 홈까지 감지됐다. 그토록 불안했던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함부로 뜨거운 죽 담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했건만 소중한 금 같은 그릇을 끝내 금 간 그릇으로 만들어버렸다. 여자는 자신의 심장에도 날카로운 금 하나가 그어진 듯 비통해 했다.
“멀쩡한 그릇을 찐따로 만들고 나니 속이 시원해?”
여자의 금 간 가슴 속으로부터 몇 년간 축적된 분노의 마그마가 분출했다.
남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뜨거운 죽을 자주 담아도 본차이나 도자기 그릇에 금이 가다니. 혹시 짝퉁 아냐? 이런 불경한 말이 불쑥 나오려다가 쏙 들어갔다. 성난 용가리가 된 여자의 머리 위로 휘발유를 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울했다. 오트죽과 그릇의 금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온통 불바가지를 뒤집어 쓴 셈이다.
남녀관계는 과학과 논리가 아니라 의심과 속단이 지배한다. 항변과 설득보다 냉소와 포기가 평화를 향한 유효한 수단일 때가 많다.
불바람이 한번 지난 다음에도 남자는 끄떡없이 금 간 그릇으로 오트죽을 담아 먹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완벽한 그릇 세트가 망가진 아픔을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다.
완벽은 그 완벽이 깨어지는 순간 분노를 촉발한 후 그 분노가 식으면 증오가 되고 증오가 깊어지면 포기를 거쳐 무관심을 낳는다. 금 간 그릇에 대한 여자의 마음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한동안 격동의 시간을 보내더니 나중엔 구출을 포기한 아군 포로처럼 그릇을 바라보는 눈길이 냉정해졌다. 뜨거웠던 열정이 좌절과 버무려져 차가운 외면으로 바뀐 것이다.
여자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동안 금 간 그릇에 대한 남자의 실효적 지배는 공고해졌다. 더 이상 여자의 것을 빌려 쓰는 처지가 아니라 온전히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생겼다. 그릇에 자리잡은 희미한 금마저 영광의 흉터로 보였다. 금 간 그릇은 매번 펄펄 끓는 오트죽 공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남자의 내장이 황금의 승리를 거두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또한 부부간에 벌어진 세계관 전쟁에서 남자가 힘겹게 판정승을 거둔 사실을 확증하는 전리품이기도 했다.
금 간 그릇은 오늘도 금 그릇의 위용으로 남자의 아침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