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헨리 나우엔 신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작은 책자에서 미래의 그리스도인 지도자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한 미래의 지도자란 이끌리는 지도자이다. 생각을 해보자. 아니 상상을 해보자. 지도자라는 단어와 이끌린다는 말이 어우러질 수가 있는가. 우리의 사고로는 이끌리는 지도자를 상상할 수 없다. 지도자는 이끄는 사람이라는 확고한 이해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끌리는 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안에 이끌리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지도자 이해는 더욱 공고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안에 없는 지도자의 상을 수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안의 모든 비극의 근본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알지 못한다. 먼저 이끌리는 지도자라는 이해를 사람들에게 알린 헨리 나우엔 신부의 경우는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보자. 나는 그의 다른 책 <아담>을 통해서 지도자로서 이끌리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아담은 그가 지도신부로 있었던 데이브레이크라는 장애인 공동체에서 그가 직접 돌보던 중증 장애인이었다. 아담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는 단지 끙끙거리는 정도의 신음 같은 소리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우엔 신부는 그런 아담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말을 한다. 그의 그런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나우엔 신부와 같이 중증 장애인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끌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장애인 공동체에서 신부라는 직업 혹은 직위는 거의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직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우엔 신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장애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신부라는, 세속적인 의미의 ‘성직’을 이해시키거나 그에 합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외부로 강의를 나갈 때 공동체 안의 여행이 가능한 장애인들 가운데 한 사람과 동행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미래의 지도자를 주제로 한 강의를 갈 때도 한 장애인을 대동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과 함께 온 장애인에게 자기소개를 하게 하였다. 데이브레이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동행했던 장애인은 “우리가 잘 했지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나우엔 신부의 이 모습이 바로 이끌리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강의는 나우엔 신부가 했지만 그 일은 동행했던 장애인의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그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이런 이야기로 이끌리는 지도자에 대한 해설을 해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이끌리는 지도자를 이해할 수 없다. 내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 지난주 가족여행을 하면서 나는 이끌리는 지도자를 생각했다. 주님이 나를 이끌리는 지도자로 만드셨다는 생각을 하게 하신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끌리고 있었지만 지도자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끌리는 지도자들이었다. 우리 모두를 이끄는 사람은 손자 녀석이었다. 녀석은 막무가내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나가자고 하기도 하고, 응가를 해놓고도 우리가 치우도록 만든다. 녀석이 배가 고프기 전에 우리는 녀석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다른 모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녀석을 먼저 고려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녀석에게 이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끌리고 있는 우리 모두는 바로 성서가 말하고 나우엔 신부가 이해한 이끌리는 지도자들이었다. 특히 내 경우는 이끌리는 지도자가 무엇인지를 더욱 확연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오래 전에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지금도 내 수입은 기초연금 삼십만 원이 전부이다. 돈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권위는 사라진다. 나는 그렇게 권위가 없는, 혹은 힘이 없는 가장이 되었다. 여기서 멈춰 잠시 생각을 해보자. 당신은 힘없는 지도자를 상상할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혹자는 신부님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분들의 월급이 팔십만 원(오래 전 내가 알던 신부님의 월급이 팔십만 원이었다.)밖에 안 되는데도 그분들은 권위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성직이라는 권위가 힘으로 주어진다. 또 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급이 팔십만 원이지만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주어지고 있다. 병원비는 물론 학비나 심지어 그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 돈은 그분들이 해결할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만 하자. 그분들은 힘없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지도자들이다. 어쨌든 세상에는 돈 없이 힘을 가질 수 없고, 힘이 있으면 돈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선교? 그거 다 돈입니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이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한 베드로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구걸을 해야 했던 그 사람이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이 없었기 때문에 걸인은 일어나 걸을 수도, 뛸 수도 있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 돈 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는 오래도록 돈 없이 살아야 했다. 지금은 기초연금이라는 내 돈이 매달 생기지만 이전에는 내 돈이란 애초에 한 푼도 없었다. 아이들이 생일에 주는 돈이 내 일 년 용돈이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의 전부였다. 나는 그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일 년간 잘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의미하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처럼 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귀중한 하나님의 학교였다. 그 상황은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내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줄 수 있었고, 특히 딸들이나 손자를 섬기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희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희생만으로 인정을 받는 전혀 새로운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다른 식구들은 그런 내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가장으로서의 나를 존중해주었다. 나는 이런 일이 가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끌리는 지도자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나는 희생을 섬김의 도구로 삼고 그것이 권위가 되는 과정을 연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권위가 내겐 전혀 없었지만 내겐 그와 다른 권위가 주어졌다. 물론 희생하고 섬길 수 있는 권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돈을 가졌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권위와는 전혀 다른 권위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런 권위가 가족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을 의탁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주님의 양 때를 먹여야 하는 베드로는 더 이상 이끌지 않고 이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렇게 이끌리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섬김과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다. 나우엔 신부가 그것을 미래의 지도자라고 말한 것은 현재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그런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그렇다. 베드로처럼 이끌리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처럼 “은과 금”을 버려야 한다. 또한 교리와 가르침과 의식((Litergy))으로 지배하려는 사고 역시 버려야 한다. 예수님의 본을 따른 베드로처럼 섬김과 희생으로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지도자가 될 때, 다시 말해 이끌리는 지도자가 그리스도교 안에 다시 자리할 수 있을 때 지리멸렬한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다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명실상부한 그리스도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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